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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May 25. 2019

덴마크 생활을 정리하며

계속되는 시간의 기울기로부터 잠시  


아시아인. 여성. 한국 대학 사회과학 전공 학사. 25, 덴마크어 불가능. 한국어 모국어

 

내가 가지고 있는 조건들을 펼쳐보았다.  한국에서는 유용이 쓰였을 나의 학벌, 대외활동 등이 쓸모없게 되니 나에게는 딱 이 정도의 조건만 남겨져있었다. 한국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한 (만) 25살의 덴마크어는 불가능하고 한국어가 모국어인 아시아인 여성.  


 그런 조건을 가진 나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코펜하겐에서 한식당 또는 카페에서 일을 하다가 7-8월 이 섬의 요가센터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는? 아무도 모른다.   '이거 붙으면 여기 남는다!'라는 마음으로 코펜하겐 대학의 아시아 관련 학생 아르바이트에 지원했지만 불합격 메일을 받았다.  덴마크 국민수가 적으니 경쟁률이 좀 낫지 않을까라고 낙관했던 내가 바보였다. 떨어진 건 떨어진 건데, 1명의 공석에 97명이 지원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게 신기했다. '원래 지원자 수를 이렇게 알려줘?' 라며 친구들에게 물었는데 '당연하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덴마크에 대한 호감이 상승해 서울로 돌아가기로 한 결심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영화 <브루클린>에서 에일리스(시얼샤 로넌)는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떠난다. 에일리스는 대서양을 건너는 배에서 우연히 만난 이민 선배에게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편지가 오는 데에 오래 걸리나요?"라고 묻는다. 그녀는 "처음에는 오래 걸리다가 나중에는 금방 받게 돼"라고 답하고 이는 그대로 실현된다. 바에서 맥주 한잔 시키는 것 마저 힘들었던 에일리스는 공부와 사랑을 해나가며 브루클린에 점차 적응해 나간다. 


처음 덴마크 학교를 다녔을 때, 그리고 이 섬에 처음 왔을 때 나는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들을 하지 못한 채 할 수 있는 말만 했다. 영어로 말하는 건 힘들었고  사람마다 다른 영어 억양을 이해하는 것도 힘겨웠다.  그리고 말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농담인지 아니면 진심인지가  헷갈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그럴듯하게 써먹을 수 있는 웃음을 연습하는 것이었다. 마치 에일리스가 불쾌한 농담을 던지는 바텐더에게 애매한 웃음을 지었던 것처럼. 


하지만 내뱉지 못한 말들은 마음속에 쌓여 나는 이 블로그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듯이. 어느 날은 작인 손 반지를, 어떤 날은 긴 목걸이를 엮어내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느새 구름을 보고 그 날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게 되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장소를 가지게 되었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한국에서 '덴마크'는 여전히 삶의 불행 끝에 국가가 든든하게 지켜주는 이미지인가 보다. 덴마크를 방문하거나, 덴마크인을 인터뷰하면 꼭 나오는 문장이 있다. 


 “덴마크에서 좋은 점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향해 걸어가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만약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국가가 있으니까요.” 


나는 이 블로그에서 한국인이 덴마크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을 깨부수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이 언제나 믿을 수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생물학적으로 '덴마크인'이 아닌 사람들을 얼마나 배척하는지. 그들에게 '가장 행복한 나라 중 하나에 사는 게 어때?'라고 물었을 때 '그런 개소리는 집어치워'라는 답변들이 왜 나오는지. 한국인 여성으로서 내가 그곳의 길거리에서 어떤 차별들을 당했는지. 


  한국으로 돌아와서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은 덴마크에 대한 욕과 칭찬이 뒤섞인 나의 후기를 듣더니 마지막에 꼭 이런 질문을 던졌다. 


친구: 그럼 그 모든 걸 고려했을 때, 다시 태어나면 한국인으로 태어날래 아니면 덴마크 인으로 태어날래? 

나: (진지하게) 백인에 파란 눈을 가진 덴마크인으로 태어나 아니면 다른 인종의 덴마크인으로? 

친구 : 백인?

나: 그럼 덴마크인으로 태어날래! 

친구 : 다른 인종으로 태어난다면?

나 : 그럼 그냥 안 태어날래. 


만약 내가 푸른 눈의 백인 덴마크 인으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덴마크인이 되겠다. 안정적인 복지, 열린 교육, 유럽을 어디든지 편히 다닐 수 있는 위치, 매우 우수한 화폐 경쟁력, 안정적인 집세. 구린 날씨? 그 정도야,  너무 구리면 스페인을 가면 된다. 덴마크 친구는 말했지, "1달러? 그거 우리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나 미국 가서 돈 쓸 때 백만장자가 된 느낌이었다니까?" 하지만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이라면 그건 싫다. 내가 미래를 보는 능력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세계 경제가 힘들어지고 이처럼 민족주의가 극성을 부린다면 덴마크에서 다른 인종으로 산다는 건 늘 배척받는 삶일 테다. 


 덴마크 섬에서 만났던 말레이시아 친구가 1달 뒤 덴마크를 떠나라는 통보를 갑자기 받았다고 한다. 이유는 '당신의 삶과 덴마크 커뮤니티의 깊은 connection을 찾을 수 없다' 덴마크에서 약 5년을 지내고, 덴마크 남자와 결혼해서 이혼까지 한 그녀다. 만약 한 달 이내에 덴마크를 떠나지 않으면, 그녀는 바로 불법 이민자가 되어버린다. 그녀는 당장 말레이시아로 갈 돈도 없고 덴마크에서 새로운 영화 프로듀싱을 맡기로 약속한 상태다.  학교에서는 그 '깊은 connection'을 증명하기 위해 친구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덴마크에서 이민자로 산다는 것은, 마음속에 언제든지 추방당할지도 모른다는 폭탄을 안고 사는 삶이다. 



 

아니 에르노는 '글쓰기를 멈추는 것은 당신 없이도 계속되는 시간의 기울기와 속도에 다시 빠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기울기에 잠시 멈춰 설 수 있게 하는 힘일 테다. 나에게 덴마크에서의 시간은 글쓰기와 같았다. 덴마크에서 나는 한국에서 26- 27살인 내가 거쳐야 했던 시간에서 살짝 비켜서서 내가 지내왔던 삶들을 되돌아보았다. 덴마크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새로운 주제들을 던져 주었고, 그 들을 통해서 나는 내 삶의 조각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수영장 레일 앞에 서있는 기분이다. 물이 얼마나 깊을지, 차가울지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모르겠다.  락스 냄새가 폴폴 나는 물에 뛰어들기 전, 나는 하나 둘 하나 둘 깊게 숨을 쉰다.  힘들면 언제든지 다시 나와도 돼. 

그 마음을 먹는 데 1년 2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다시 시간을 돌린다.


 시간은 다시 기울고 이제는 들어갈 시간. 


- 덴마크에서 당신에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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