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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Jul 09. 2019

당신이 떠나고
내 시간은 텅 비었어요.

지난주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회사-집을 반복하며 지내면서 나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대학생이 된 이후 내 주변에는 끊임없이 누군가 있었고, 특히 최근 4년간은 전 애인과 함께였다. 긴 연애를 끝내고 나니 “영화 같이 보러 갈래?‘ 라고 물을 사람도, 온 몸에 힘이 빠지는 날  따듯하게 감싸줄 사람도,  고단한 하루의 끝 일상을 공유할 목소리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사람이 습관을 굳히는데 짧게는 100일이 걸린다고 하던데.  4년이란 시간 동안 매일 반복되었던 습관을 지우는 데도 100일이면 충분할까. 습관을 만드는 일과 습관을 지우는 일은 같은 속도로 이뤄지는지 궁금했다. 


구름이 높이 둥실둥실 떠올랐던 저녁들이 이어졌다. 

6시 5분 회사에서 나와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나는 날이 맑은 만큼 우울했다. 이렇게 날씨가 좋으면 어디를 걸어도 좋을텐데, 오늘 같은 날씨에는 크림 파스타가 먹고 싶어, 아니 그냥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날씨 참 좋다. 뭐하고 있었어?”라고 묻고 싶다. 4년이란 시간은 참 무서워서  나는 매 순간 누가 옆에 있는게 당연해져버렸다. 머리를 굴려 연락할 친구가 없나 떠올려보지만 당장 전화할 수 있는 친구도 없다. 덴마크에서  날 찾던 연락들을 읽씹하고, 긴 연애동안 내 모든 곁을 전 애인에게 주었던 나의 선택들로 만들어진 결과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밥을 해먹고 먹은 걸 치우면 9시. 그 이후의 시간 대부분은 핸드폰을 보며 술을 마신다. 가끔은 글을 읽다, 졸다가, 침대에 눕는다. 반듯이 누워 바라본 천장에서는 노란 야광별이 전등에서 총총 빛난다. 처음 이 집에 이사온 날, 동생이 "언니 방에 어린 애들이 살았었나봐. 전등에 곰돌이랑 불가사리가 붙여져 있어" 라며 내 손을 끌었다. 떼어낼 까 고민했지만 어차피 3일뒤 출국이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 누웠을 때는 나는 여전히 같은 흐린 빛을 내는 별들을 보면서

 다른 건 몰라도 너는 여전하구나 하는 마음에 

그 촌스런 별들을 떼어낼 수 없었다. 



야광별을 보고 있다보면 바닷 바람이 차갑던 덴마크의 밤으로 돌아간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같이 짙은 남색에 노란 유화 물감이  번져있는 하늘이었다. 나는 파티 중간에 나와 서늘하게 맑은 2월 밤 공기를 맡으며 담배를 피고 있었다. 담배가 중간 쯤 사라졌을 때, D가 나왔다. D는 나를 보고 말갛게 웃더니 마트 같이 갈래?라며 웃었다. 

 

 마트로 가는 길가에는 새 한마리도 없었다. 마치 남색 배경의 영화 세트장 같았고 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웃었다. 오늘 파티에서 본 취한 친구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흉내내고, 가끔씩 우리의 폭력적인 부모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막상 마트에 가서는 무엇을 사러 왔는지 기억나지 않아 또 웃었고, 손에 와인 한 병을 들고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 앞에는 학생 한 무리가 담배를 피고 있었다. 우리는 그 속에 껴서 다시 하하 웃었다.


아쉽게도 밤의 사진은 없네요. 

  

센 바람이 불어 귀가 시렸다. 나는 파카 모자를 두손으로 꼭 쥐어 시린 귀를 감쌌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과 덴마크어로 이야기하던 D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오더니 영어로 

"그러면 얼굴이 안보이잖아"

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이런 챙김을 받는게 너무 오랜만이라 놀랐다. 덴마크에서 지내면서 나는 나보다 언어 장벽을 겪고 있거나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챙기는데 익숙했다. 물론 덴마크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것은 '생존'에 관한 도움들이었지 정서적인 보살핌은 아니었다. 


그 파티 이후의 일상에서 D는 다른 사람들 속에 있다가도 내 옆에 와 덴마크어를 영어로 통역해주곤 했다. 2층 카페 문을 슬쩍 열어 친한 친구들이 없으면 조용히 문을 닫고 방으로 돌아가던 나를 붙잡는 것도 D였다.  D의 시선이 항상 나를 찾거나 기다리고 있다는 걸 나는 눈치챘다. 


D의 소중하고 따듯한 마음을 알게된 후 나는 D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곳에서 여전히 나의 전 애인을 그리워하고 있었고 그리움만으로 버거웠다. 정신없이 청소를 하다가 도 문득 시간이 멈춘 시계에 약을 넣고 작은 태엽을 감아 시간을 맞추듯 그와 나의 관계도 다시 흘러갈 수는 없는 걸까 고민하는 나날이었다. D는 특별했지만, 그 특별함을 마음껏 좋아해 줄 자신도 없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D는 3일간 내 선물을 만들었고  내가 떠나는 날  참 많이 울었다. 그때  나는 이 모든게 부담스러웠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받아들이지도 내치지도 못하는 그런 형편없는 마음으로 나는 그 섬을 떠났다. 




시간이 흐른 지금, 희미한 야광 별을 바라보면서 D를 떠올린다.

그 이후로 나는 그처럼 따듯한 마음을 본 적도, 스스로 가져본 적도 없다. 그때 그와 함께 더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던 걸까 생각이 들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D는 어떻게 그렇게 형편없는 마음을 가진 나를 좋아해줬던, 아니 용서해줬던 걸까. 

코펜하겐 공항에서 받았던 D의 메세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너는 나에게 용기를 주었고, 다른 삶을 보여주었어"


아무것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어 나는 그저 진심으로 D의 안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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