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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Jun 17. 2019

회사 건물 옥상에서

나는 무탈히 잘 지내고 있어요


회사 건물 옥상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회사 옥상을 가야한다. 아주 어이없는 전제이지만 결코 만만한 전제는 아니다. 옥상으로 가는 길엔 3가지 결코 쉽지않은 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1) 나와 업무를 같이 하는 이가 나를 찾지 않을 10분을 노려야하고, 

2) 옥상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릴 때 누군가 ‘어디가?’라고 묻지 않아야 하며,  

3) 엘리베이터 안에서 위층회사 직원을 마주치지도 말아야 한다. (아무래도 이전 회사 상사가 위층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 같다. 젠장)  

이 세 가지가 딱 맞아떨어지는 날은 드물고, 

바쁘지 않은 오후더라도 옥상에 올라가야지 마음을 먹는 순간 일이 터지기도 한다. 


 회사는 서울 시내 한가운데 남산을 바라보며 위치해있어 얼마 전 일을 시작한 계약직 신분인 내 추측에 의하면임대료 값으로 회사 관리비를 유지하고 있는게 틀림없어 보인다. 회사의 풍수지리는 배산임물(물은 건물을 의미한다)로  뒤는 산이 감싸고 있고 앞은 도대체 어떻게 청소할지 감도 안 잡히는 푸른 유리빌딩들로 둘러쌓여 있다. 회사 건물과 남산 사이 에는 우리 회사 건물 보다 높은 건물이 없기에, 남산타워와 타워를 둘러싼 구름이 선명히  보인다.  


 그 풍경 좋은 옥상에서 스트레칭도 하고, 머리도 식히고, 좋은 필름카메라로 매일의 구름과 하늘을 기록하고...... 싶지만, 땅이 곧 돈인 나라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 답게 루프탑으로 꾸미면 어떨까? 도시텃밭을 만들면 어떨까? 옥상 테라스 카페? 수익이 얼마나 하려나 하는 속물적인 상상에 빠진다. 그러다가 어휴, 옥상에서도 돈생각이냐 라는 각성이 들고, 현대인 답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성찰하기 시작한다.  

왜 그 상사의 권위적인 말에 주늑들었지?  

왜 아까 친절한 나의 동료가 무언가 물어봤을 때 거들먹거렸지?

 방금 매니저랑 논의할 때 너무 재수없게 이야기하지 않았나? 와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왜 생각없이 사는게 가장 편하다고 하는지 알것 같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매일 헷갈린다.


분명 어제는 타인에게 공감을 잘하는 상냥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오늘 아침 상냥한데 마냥 문제 의식없는 사람을 보니 열불이 터진다. 세상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가도,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불의를 감수하며 버틴 ‘존버’들을 보면 감탄하게 된다. 어느날은 모든 일에 열정적으로 돌진하면서 상냥한 인품을 가질 수는 없는걸까 궁금해진다. 브로콜리 너마저가 그랬다. 세상은 둘로 나눠지지 않는다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게, 당신을 미워하는 건 아니라고. 



정세랑 작가의 옥상에서 만나요 소설에는. 회사 옥상에 후임자를 위해 편지를 남기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제 내가 있는 옥상은 뛰어내려도 살아남을 수 있는 높이야. 더는 뛰어내리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너는, 내 후임으로 왔다는 너는, 아마도 그 옥상에 자주 가겠지. 


내가 마지막으로 죽고 싶었던 순간이 언제였더라. 

최근까지 나는 높은 곳에 서 있을 때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떨어졌다가 죽지 않고 신체만 다치면 어떡하지, 여기서 죽으면 시신 환수 비용이 엄청날텐데(덴마크였다) 높은 곳에서만 누릴 수있는 전망과 온도를 느낄 겨를도 없이 나는 죽을 생각만했다. 그렇게 힘들었던 시간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자꾸 죽음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힘들어서, 슬퍼서, 무서워서, 지쳐서.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다.


가끔 나 혼자 이 풍경을 누리는게 아쉬워 내 사무실 친구 새세를 데려간다. 새세는 내가 키우는 홍콩야자 식물이다. 집에서 알라딘에 빠져 A whole new world를 매일 불러댔고, 소음에 짜증이 난 엄마가 새로산 화분 이름을 고민하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라고 해. 아주 맨날 노래를 불러대더만" 이라는 조언아닌 조언을 했고, 나는 그 조언에 깔린 비아냥은 깔끔히 무시한 채 "좋아! 새로운 세계를 줄여 새세라고 하겠어!" 라고 이름 지어줬다. 새세는  햇빛은 필요없어도 바람은 필요한 친구인지라 나는 주말마다 남들에게 들키지 않을 옥상 그늘진 공간에 새세를 숨겨 둔다. 


그렇게 금요일 퇴근 전 세세를 옥상에 두고, 월요일 아침 다시 찾아오는 일로 

 내 일주일의 끝과 시작이 이뤄진다. 

 



이렇게 안부를 전하고 싶었다. 옥상에 올라가는 일이 하루의 큰 미션이고, 옥상에서 마주하는 바람에 살짝 기분 좋아지며 내 작은 화분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나는 이렇게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여전히 당신이 그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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