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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May 12. 2019

너의 뺨을 때리는 상상을 하곤 해

너를 우연히 마주친다면


서울로 돌아왔다.


가족 전부가 공항에 마중을 나왔다고 했다. 출입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수십개의 카메라에 깜짝 놀랐다. 정확히 3초 뒤 카메라 플래시들이 미친 듯이 터지기 시작했고  옆에는 내가 모르는  남자아이돌이 인파에 둘러 쌓여 지나갔다.


엄청난 인파에 가족과 나는 서로를 잃어버렸고 동생은 그 남자 아이돌이 누군지 알아보기 위해 눈 앞에 있던 나를 지나쳐 인파를 향해 돌진했다. 동생아. 나는 오랜만에 가족 본다고 경유했던 중국 공항에서 렌즈도 끼고 옷도 갈아입었단다. 참 우리 가족다운 인사였다.      


나는 길가의 모든 사인과 간판들을 읽고 말에 목말랐던 아이처럼 빠르게 한국어를 내뱉었다. 서울은 여전히 높았다. 집에 오니 누군가의 눈치 보지 않고 언제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전기포트와 화장실이 있다. 우리 집 소파는 덴마크 가정에 있는 소파처럼 예쁘지는 않지만 200만 원만큼의 실용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밥은 고소하고 건강하다. 너무 맛있다.      




 지근 나는 덴마크에서 서울로 돌아갈 결심을 했을 때 내가 예상했던 감정들을 그대로 느끼고 있다. 덴마크가 잔잔히 그립고 서울은 아직 낯설지만 그 낯섦이 묘한 흥분으로 다가온다. 집은 편하지만 가족과 함께 지내는 건 나의 자유를 침범당하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예측하지 못한, 아니 예측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감정이 나를 강하게 휘감아 당황스럽다. 나는 요새 서울의 길을 걷다가 나의 전 애인을 우연히 마주치고 그의 뺨을 때리는 상상을 자주 한다.


 나의 전 애인. 4년을 만났고 두 번 나를 떠나간 사람. 어떤 수식어로도 설명이 안돼서, 그의 이별 통보를 받고 나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이게 다예요’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너처럼 될 수 없다는 것, 그게 내가 아쉬워하는 그 무엇이지”
-마르그리트 뒤라스-      


덴마크에서는 그와 마주칠 가능성이 없었는데, 서울로 오니 온 공간이 지뢰밭이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는 그가 소개해준 곳이고, 좋아하는 작가의 낭독회에 가고 싶지만 나의 소개로 그 사람도 이 작가를 참 좋아했던 게 생각난다. 좋아하는 게 비슷해서 더 좋았던 사람인데, 헤어지고 나니 같이 좋아했던 것들이 힘들게 한다. 요즘 나는 공간을 들어갈 때마다 입구에서 내부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이렇게 피해 다닐 수만은 없으니까 마주칠 경우를 미리 대비하기로 했다. 그를 만나면 피할까, 난 너 없이도 이렇게 잘 살고 있어! 를 보여줄까, 아니면 물을 뿌려버릴까. 이 모든 상상이 부질없을 것을 알면서도,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이 여전히 그에게 마음 쓰고 있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새로운 사람과 새 시작을 했는데 나는 왜 자꾸 그에게 집착하는 건지 화가 나면서도, 나는 그 상상들을 멈출 수 없었다.      


그와 우연히 재즈바에서 마주치는 상상(그는 재즈를 매우 좋아했으니까)
 : 나는 멀리서 그를 알아본다. 그는 새 애인과 같이 있다. 나는 조용히 바에 가서 가장 센 위스키 샷을 주문한다. 샷을 받아 들고 그에게 다가간다. 아무 말하지 않은 채 그의 앞에 선다. 그리고 위스키를 그의 머리에 부어버리고 자리를 떠난다. (그 자리에 머물렀다가는 우는 모습을 들킬 것이다)


카페에서 마주치는 상상 (그는 카페인 중독이었다)
 : 그가 나를 먼저 알아본다. 그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를 보고 놀라고, 하지만 침착해야 해 기다려온 순간이야 라고 다짐하며 그의 뺨을 때린다(근데 사람 뺨을 때려본 적이 없어서 팔을 어느 높이로 얼마만큼의 힘으로 때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애매하게 때리면 망하니까 잘 때려야 한다. 그리고 나는 말한다. “그렇게 비겁하게 떠났으면서 나한테 인사는 하고 싶니? 내 인생에서 꺼져줬으면 좋겠어”


 이런 상상들에 하염없이 빠져들다가, 그 상상에서 깨어나면 길 위에 나는 혼자다. 정말 사랑했던 사람인데, 이제는 뺨 때리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그런 상상들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비참해진다.



얼마 전 티비에서 누군가 말했다. “ 제 전 남자친구는 환승했어요” 다른 사람을 좋아해서 떠난 사람을 환승했다고 표현하는 구나. 나는 그 표현의 진부함과 가벼움에 깔깔 웃었다. 그래. 그와의 지난 4년은 환승이라는 손쉬운 단어로 끝날 수 있구나.


그리고 그게 너무 슬펐다.

그렇게 나는 정말 서울로 돌아왔다.      


덧) 순간 그 친구가 이 글을 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럼 진짜 비참해질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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