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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Jan 07. 2019

눈치 보지 않는 사람들

눈치라는 단어가 없는 세계에서의 대화 방법 

눈치
1)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 ex) 눈치가 없다 
2) 속으로 생각하는 바가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태도. ex) 눈치를 주다 


덴마크 국제학교를 같이 다녔던 한국인들은      


“쟤는 눈치가 없어”

“아니 눈치가 있으면 치워야 할 것 아니야”

“쟤는 왜 눈치 없이 저런 말을 하는 거야?”     


라고 학기 중에 자주 말했곤 했다. 타국가 학생들은 타인의 불편함에 무던했고,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걸 명확히 드러냈다. 본인이 그 말 또는 행동을 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불편할 것이라는 감각, 타인을 향한 조금 앞선 배려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불편함을 느끼면 해결해야 하는데, 문제는 “눈치”라는 단어가 정확히 번역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단 일본인 친구들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일본어에는 비슷한 어감의 단어가 있다고 한다) 


1) Sense, Wits:  배려의 어감은?

2) have no common sense: 눈치가 common sense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그저 플러스되는 요인정도.

3) too slow to get it: 느리다고 해서 무조건 눈치가 없는 건 아니지

 4) You don't take a hint:  hint의 어감이 아닌 상황도 있는데.. 내가 명확히 힌트를 안줬으면?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다

경험 1) 
학교에서는 3인이 화장실을 같이 썼다. 첫 주에 한국인 친구가 먼저 청소를 했다. 그리고 다른 2명의 친구들(다른 나라에서 온)이 “눈치껏‘ 다음 차례에 청소를 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들은 청소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한국인 친구가 ”지난주에 내가 화장실 청소했어 “라고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은 ’ 고마워!‘라고 말하고는 또 청소하지 않았다.  

한국인 친구는 당황했다. 그 친구는 아무 말하지 못한 채 혼자 청소를 하다가 결국 몇 주 뒤 폭발했다. “왜 너희는 한 번도 화장실 청소를 안 하는 거야!” 그러자 그 두 친구는 놀라며 말했다. “우리는 네가 청소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 우리한테 하라는 말이 없길래. 각자 청결도 기준은 다르니까 네가 그냥 도맡아서 하고 싶은 줄 알았지. 사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만 청소해도 된다고 생각했거든"
경험 2) 
룸메이트가 방에 남자를 데려오고 싶다고 말했다. 조심스럽게 말한 것도 아니고 너무 당당히 요구해서 솔직히 불쾌했다. 학교에 낯선 이를 방으로 데려오는 건 금지되어 있고, 무엇보다 낯선 사람과 공간을 나눠 쓰는 걸 불편해해서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친구가 얼마나 그 남자를 좋아했는지 사정을 알기에 “눈치”를 봐가며 다른 싱글룸 쓰는 친구에게 먼저 부탁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거절의 뜻으로 말한 거였는데 그 친구는 “눈치”없이 계속 졸라대었고 결국 나는 “낯선 이가 방에 들어오는 게 불편하다. 그리고 너의 부탁 방식이 무례하다고 느낀다” 로 직설적으로 말했다. 나는 룸메이트와 싸울 각오를 하고 용기 내서 말한 거였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룸메이트는 나에게 감정상 한 기색 없이 알겠다고, 미안했다고 말하며 쿨하게 자리를 떴다.      


위 경험들 속의 감정을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배려"했다? "소심" "답답"했다? 힌트라고 하기에는 그저 서로간의 예의에 더 가깝고 그렇다고 상식(common sense)의 정도까지는 아니다. 같은 한국인이라면 "뭐야 정말 눈치없는 사람이네" 했겠지만, 눈치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이들에게 내 감정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건지 곤혹스러웠다. 


위 상황들 외에도 처음에 “눈치”에 기대어 소통했다가 실패한 경험들이 많았다. 경험들을 통해 나는 눈치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나라 친구들이 나에게 정말 많이 했던 말이 있다.


말하지 않으면 당연히 모르지!


처음에는 뭐야 그럼 내 탓이라는 거야! 하면서 속으로 씩씩 거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친구들은 정말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걸 배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지 말로 내뱉어야 소통이 가능했다. 


눈치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유일한 대화 방법이 솔직하게 말하는 거라면, 나의 솔직함이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 범위는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  ‘눈치’를 보는 사회에서는 발화하기 앞서 타인의 기분을 해칠까 봐 조심하는데, 그렇다면 여기서는 어떻게 서로의 범위를 존중해주는 걸까? 


학교에서 학생회 회의가 열렸다. 몇몇의 행동이 나를 불쾌하게 했고, 나는 회의가 끝나기 직전 그 불편함에 대해서 말했다. 나는 불편함을 말하는 게 여전히 무서웠지만, 고심하다가 용기 내서 말했고 친구들은 금방 잘못을 인정했다.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회의 후 한 친구가 내 방에 찾아와서는,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고 싶은데 다음에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조언을 구해온 것이다. 나는 그날 깨달았다.


눈치가 없는 세계에서는 발화 이후의 상황이 더 중요하다


한국사회에서는 불편하거나 무례한 말을 들어도 우선 웃으며 좋게 넘기게 미덕이다. 학교나 직장에서 차별적, 성 혐오적인 언행을 수없이 들어야 하는 여성들은 그 자리를 최대한 빨리 끝내는 법을 터득한다. 우리는 말을 하기 이전에 조심하는 법(눈치)에 대해서는 능숙하지만, 잘못된 언행을 바로잡는 데는 미숙하다. 특히 눈치라는 행위가 권력관계의 발현임을 고려한다면 (상사가 부하직원의 눈치를 보는 경우보다 부하직원이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훨씬 많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권력자가 잘못된 발언을 했을 때, 바로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체널예스_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카드뉴스


나는 한국 사회에서 직설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 곳에 와서는 세상 얌전하고 배려 많은 사람이 되었다.한국에서 하듯이 기본적인 눈치만 봤을 뿐인데 말이다. 역시 사람에게 붙이는 수식어는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눈치를 보는 사회가 나쁜 사회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타인의 기분과 생각을 먼저 헤아려서 적정선을 유지한 채 진행되는 대화는 품격 있다, 하지만 상대가 나의 눈치를 보지 않을 때, 나의 불편함 말하는 연습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잘못된 발화가 이뤄졌을 때 진심을 담아 사과한 후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태도도!      


자유롭게 내 감정과 생각을 표출하되, 타인을 불편하게 했다면 언제든지 고쳐 나아갈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 경계가 움직일 수 있는 폭이 넓은 사람. 그리고 누군가 나의 경계를 넘는 다면 나 스스로는 보호할 수 있는 사람.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표지사진 출처: 지킬 님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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