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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Jul 14. 2019

물총축제 속 여성의 젖은 몸은 어떻게 성적도구화 되는가

신촌 물총축제 주최측은 언제까지 성희롱 문제를 외면할거죠?

지난 주 토요일 오전 누워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물총 축제에 가기로 한 친구가 감기 걸려 오지 못하게 되었다며 땜빵으로 오겠냐는 거였다.  나는 일정도 없었고 심심했지만 잠시 생각해보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친구도 없는 주제에 생각해 보겠다고 한건, 신촌 물총축제를 둘러싼 여러가지 논란들 때문이었다. 

1) 젖은 몸의 축제 참가자들이 옷을 말리지도 않고 가게에 들어가 주변 상권들에게 피해를 준다.

2) 이 축제는 신촌 상권을 살리기 위해 기획되었지만, 축제장 내 부스들로 인해 가게 간판이 가려지고 사실상 축제기간 내 평소 주말 대비 매출 감소를 경험한 상점들이 있다. 

3)  정액-사이다를 물총에 넣어서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뿌린다는 소문은 여성 참가자로써 불쾌하다.

4)  나는 비참가자로써 축제 당일  길을 지나다가 물총을 맞아서 쌍욕한 적이 있다. 


 얼마 전 실시한  애니어그램에서 나는 의무와 당위로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니, 친구에게 생각해보겠다 말한 뒤 1시간 30분 동안 나의 윤리와 가치관, 신념, 내가 꿈꾸고자 하는 사회상 등 온갖 것을 다 들먹이면서 축제를 갈지 고민했다.  그 긴 고민 속에서 이번 물총 축제를 가면 지역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개인의 오락만을 우선하며 더불어 여성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단체에 힘을 실어주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러자 행동을 중시하는 나의 mbti가 말했다. 아니지, 가보지도 않고 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이번 기회에 논란들이 실제하는지 직접 경헝해보면 좋잖아. 


결국 친구에게 전화해 2시 30분에 신촌 나뚜루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꽤 오래된 축제여서 그런지 신촌 물총축제는 물품보관함과 같은 편의시설흐 잘 구비해놓고 있었다. (물품 보관함 이용을 위해서는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우리는 한 초등학교에 짐을 맡기고 우비를 입고 살이 보이는 모든 부분에 선크림을 열심히 발랐다.  분홍색, 파랑색 우비를 각각 입으니 초여름 한낮에 사이버 펑크같은 옷차림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막상 총을 드니 꽤나 비장해졌다. 서로를 놓치지 말 것을 약속하며 우리는 한 줄로 물총 전투현장에 합류했다. 처음 물총놀이를 할 때는 마냥 재미있었다. 신촌 한 가운데서 낯선 이들에게 물을 쏘는 행위는 짜릿했다. 나는 대부분 집중 공격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나 혹은 나를 먼저 공격한 사람을 향해 물총을 쏘았다. 날은 더웠지만 물은 차가웠고, 우리는 홀딱 젖은 몸으로 신촌 대로를 열심히 뛰어다녔다. 




이상함을 느낀건 맥도날드 근처였다. 


물총축제에는 물을 충전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는 물 호수 근처에 상주하면서 바가지 혹은 플라스틱 커으로 물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다. 근데 맥도날드 근처에서는 물을 충전하는 곳 만이 아니라, 물총을 쏘고 있는데도 누군가 아주 가까이 내 머리에 물을 쏟는게 느껴졌다. 복수는 물총놀이의 기본 작동 원리이기 때문에 나는 물벼락을 뿌렸을 만한 사람을 열심히 찾아봤지만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 놀았고 그 뒤로도 비슷한 물벼락을 몇번 더 맞았다. 


그때, 내 친구가 한 남성에게 집요하게 추적을 당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어떤 덩치 큰 남자가 내 친구에게 내가 당한 것과 같은 물벼락을 뿌렸고 운좋게 누군지 발견한 친구가 그 사람을 향해서 물총을 쏘자 (다시한 번 말하지만, 공격과 복수는 물총 놀이의 기존 원리이다) 그 사람은 기분이 상했다는 듯이 돌아가더니 다시 내 친구에게와 더 큰 물벼락을 뿌렸다. 이건 물총놀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 서로를 공격하고 웃으며 헤어지고는 다른 사냥감을 찾고 또 물총을 쏘곤 하는 데 이렇게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공격하는 건 이상했다. 친구도 처음에는 장난으로 받아들이다가 그 남자가 너무나 집요하게 본인맞 찾아서 물을 뿌리자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친구과 다른 이들과 물총놀이를 하고 있을 때도, 잠시 쉬고 있을 때도 다가와 물을 뿌리니 친구는 정신이 없었고 물벼락을 맞자마자 물총을 쏘면 너무 불쾌해 하는게 보이니 당황스러웠다. 


결국 우리는 그 장소에서 도망쳤는데, 도망치면서  왜 우리가 도망을 가야하는 건지 속상했다. 하지만 신촌 물총 축제에서 물을 어떻게 뿌려야 한다 - 예를 들어 서로 사이 좋게 한번씩 물을 맞아야 한다- 는 규칙이 없으니 욕을 하기도 애매했다.
불쾌하지만 어쩔수 없이 감수해야 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잠시 쉬었다가 들어가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길 밖에서 물총 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나는 분한 마음에  친구를 괴롭힌 그 남자를 눈으로 찾았다. 그러다 놀라운 걸 발견했다. 

그 사람은 오로지 여성들을 상대로만 물을 뿌리고 있었다. 

컵에 물을 받고, 주변에 여자를 찾고(여자가 없으면 기다린다), 큰 덩치를 이용해 여자 위에서 물을 뿌리고 빠르게 사라진다. 여자가 누군지 못 찾으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하지만, 만약 여자가 발견해 본인에게 물을 쏘면 째려본다. 그리고 다시 그 여성에게 가 물벼락을 뿌린다. 


나는 당황해서 친구에게 

"야 저사람 여자한테만 물뿌려..."라고 말했고 

친구는 "뭐?"라며 나와 같은 걸 목격하고는 "와 정말 미친 놈이네" 라고 말하며 어이 없어했다. 

그 뒤 친구는 "저런 미친 놈 신경쓰지 말고 우리끼리 재밌게 놀자"며 내 팔을 끌었다. 



친구는 그 남자를 잊었는지 다시 신나게 물총 놀이를 했지만, 나에게는 자꾸만 그 장면이 남았다. 그 장면이 생각날 때마다 물총놀이에 집중할 수 없었고 주의를 의식하게 되었다. 결국 친구에게 나는 잠시 쉬겠다고 말한 뒤 축제장 밖에서 물총 놀이하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이 물총으로 열심히 쏠 때마다 귀여웠고, 같이 온 친구들 끼리 웃으며 물총을 쏘는 장면은 파랗고 노란 예쁜 빛을 내는 것 같았다.  그래- 아까 그 놈이 그냥 미친 놈이었던 거지 하면서 나는 축제 인파가 비교적 없는 곳 옆에 앉아 물을 말렸다. 


그때 보고 말았다. 우비를 입지 않은 여성 두분이 지나가는 데 어디선가 물줄기가 날아오는 것을.

그리고 그 물줄기가 정확히 여성들의 가슴을 겨냥하는 것을. 


처음에 길 옆에 앉아서 그걸 보았을 때는 "어휴 저분들 재수도 없지 하필 저기를 맞았냐"라는 생각에 넘어갔다. 그런데 그 길에 우비를 입지 않은 여성들이 지나갈 때마다 그 짓이 반복되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 20분간 앉아 있었고, 정확히 

1) 우비를 입지 않은

2) 여성들로만 구성된 무리가 지나갈 때 

3) 여성들의 가슴에 물줄기가 꽃히는 것을 발견했다. 


근데 주의를 둘러봐도 누가 쏘는 건지 알수가 없었다.  아마도 축제장과 인도 경계선의 현수막 뒤 혹은 앞에 숨어서 쏘는 모양이었다. 그 근처로 가서 누군지 살펴볼까 하다가, 내가 지금 여기 순찰 나온 것도 아니고 뭐하는 걸까 싶어 고민이 들었다. 무엇보다 애매했다. 내가 이 사실을 주변 스태프에게 말하면 스태프는 내 말을 믿어줄까? 고의가 아닌 우연일 수도 있다고 하면 나는 뭐라 답해야 할까? 




구글에 신촌 물총축제 여자라고 구글에 검색하면 머리는 물에 젖고, 젖은 옷 뒤로 비치는 브레지어를 강조하는 사진들이 검색된다.  물총축제 남성이라고 검색했을 때 나오는 파티분위기의 물총놀이 현장과는 매우 다르며 이미지들이 보여주는 내용은 동일하다. 바로 젖은 여성의 섹시한 몸. 


매년 물총축제가 이뤄지는 시기에 커뮤니티에는 관련 게시글이 올라온다. 여성을 향해 쏘는 남성의 환한 웃음을 '발정난'것으로 보며, 맘에 드는 여성에게 물총을 쏘면 그날밤 '질싸'가 가능하냐는 얘기까지. 게시물 작성자는 신촌물총축제에 참여한 여성들을  동등한 참가자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출처 디시인사이드. 사진은 스포츠투데이
디시인사이드 캡쳐



여성들의 몸은 고의적으로 젖는다. 

커뮤니티 에서는 흰면티를 입은 여자만 죽어라 쏘겠다는 다짐이 난무하고, 기사에서는 가슴에 물이 맞아 불쾌했다는 인터뷰 기사가 실린다. 여성의 브레지어를 보기 위해 물총을 쏘고, 그 모습을 보며 '발정난다'고 말하는 것. 이것이 커뮤니티 속 신촌 물총축제를 둘러싼 이야기들이다. 


국민일보 기사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507710 





물총축제에서 여성들의 몸이 젖는 것은 당연하다.

물놀이를 즐기기 위해 참가한 여성들의 몸이 젖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즐기지 못했다는 뜻이고 참가자들은 신촌 대로에서 온 몸이 흠뻑 젖기 위해 기꺼이 돈을 내고 축제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성의 젖은 몸을 도구화 하는 성차별적인 시선들이다.

여성의 젖은 몸이 음란한게 아니라 젖은 몸의 특정 신체 부위를 강조 하고, 사진을 찍고 물총을 쏘는 행위가 성차별적인 것이다.  짧은 바지를 입든, 흰 티를 입든, 상의탈의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 것을 바라보는 성적대상화된 시선이 문제인 것이다. 

 

여성들의 젖은 몸이 음란한 것이 될 때,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선택권을 박탈당한다. 그 지점은 내가 이번 물총놀이에서 느꼈던 불편함과 맞닿아 있는데,  물총놀이 주최측이 방치하는 교묘한 성차별 속 결국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여성의 몫이 된다. 누군가 내 가슴에 물총을 쏴도, 여자들만 겨냥해 몸이 젖게 해도, 내 몸의 특정 신체부위를 찍어서 업로드 해도 제지할 방법이 없는 현실 속에서 여성들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단속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몸을 단속 한다는 것은 돈을 내고 즐기러 간 물총축제에서 자신의 몸이 얼만큼 젖었는지, 브레지어가 얼마나 비치는지, 주변에 수상한 남자가 없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정말 궁금하다. 신촌물총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해 온 주최측 '무언가'는 신총 물총 축제를 둘러싼 이러한 성희롱적인 담론에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지금까지 교묘히 수많은 인파에 가려서 이뤄지고 있었던 성희롱이  대놓고 수면위로 떠오를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혹시 신촌물총축제를 검색하면 나오는 이 수많은 성희롱 게시글들을 오히려 신촌물총축제의 마케팅으로 활용하고 있는건 아닌가? 


그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분명있다. 적극적으로 성희롱 방지 안내 멘트를 하고, 혹시나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을 때 참가자들이 안전하게 신고할 수 있는 부스를 마련하고, 스태프가 상주해 애매한 상황을 방지하고. 사실 몇만영이 참여하는 축제가 갖춰야할 기본 조치들이다. 




나는 앞으로 신촌물총축제를 가지 않을 것이다. 한 여름 신촌에서 시원하게 젖는 것은 좋았지만 나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공간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2015년 무언가 한길우 대표의 인터뷰 글을 보니 물총축제로 신뢰를 쌓아 섹스 페스티벌도 기획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던데, 지금 신촌물총축제 수준의 성관념을 가지고 어떤 섹스페스티벌이 나올지 벌써 끔찍하다. 






@표지사진은 신촌물총페스티벌 공식 페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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