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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Jun 26. 2019

싸움잘하는 부자가 될거야

대상화되어있던 몸에서 벗어나 나의 몸으로 

요즘 나의 사랑 검블유(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서 이다희는 말한다. 

꿈 생겼죠 싸움잘하는 부자.  

패고 싶은 놈들 패고, 합의하려면 돈이 많아야 하잖아요.  


주짓수 후 숨을 가쁘게 내쉬는 이다희의 대사를 들으니 나의 오래된 꿈이 떠올랐다. 어릴 적 나는 공상에 빠지면  전날 학교에서 왕따시키거나 말을 밉게 한 친구들을  혼내주는 장면을 그렸다. 교실 나무 책상을한 발로  밀치고, 의자를 뛰어넘어 친구의 얼굴을 정확히 과격한다. 마무리는 시크한 척 아무일도 없었던 척. 어느 날은 국가의 비밀 업무를 수행받은 닌자가 되기도 했다. 따듯한 봄날 나른하게 수업이 이뤄지고 있는데 갑자기 나쁜 무리가 교실에 들어온다. 나는 놀랄 친구들을 걱정해 빠르게 몸을 움직인다. 



이 꿈들은 실현될 가능성이 없어 보였는데, 나는 학교에서 악력 검사를 하면  꼴지를 하고 체육시간을 제일 싫어했던 학생 이었기 때문이다. 매년 체육대회날 아침에는 스트레스로 배가 아팠고, 체육 시간 수행평가는 쪽팔림의 연속이었다. 하필 번호도 여자 31번( 그때는 남자는 1번부터, 여자는 30번부터 시작했다)이여서 체육 수행평가 때마다 남자아이들의 관심속에 뜀틀, 멀리뛰기, 달리기 등을 수행해야 했다. 


무엇보다 운동을 잘 해야될 이유가 딱히 없었다. 체육은 내신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지도 않았고 여자 친구들과는 몸 보다는 대화를  통해서 우정을 쌓았으니까. 모범생인 나에게 체육은 내 헛된 공상을 제외하고는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어보였다. 


아무도 나에게 운동을 해서 몸을 건강히 유지해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쉬는 시간, 하교 길 운동장은 남자아이들의 장이었고, 나를 포함한 여학생들의 역할은 그늘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대신 사람들은 나의 피부, 종아리, 팔뚝살을 걱정해줬다. 


썬크림을 꼭 발라야 늙어서 기미가 안생긴데,

오래 달리기 하면 종아리에 알 생긴다는데,

무거운거 많이 들면 팔뚝에 알통 생긴다. 

나의 피부, 종아리, 팔뚝살은 내 몸을 움직이는데 필요하기 보다 보여지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좋아보이는 피부. 얇은 종아리, 쳐진살이 없는 팔뚝. 그렇게 타인의 시선에 맞춘  몸을 가꾸기 위해 지난 25년을 지내왔다. 



작년에 덴마크에 갔을 때, 인상깊었던 것은 여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축구 모임을 조직해 남학생들과 함께 축구를 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13년전과 마찬가지로 그 모습을 창문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는데, 승패에 상관없이 모두들 햇볕 속에서 몸을 부딪히고, 던지고 심지어 구르기까지 했다. 운동이  끝나고 그 모임을 주최한 독일 친구에게 "원래 운동을 자주해?"라고 물어보니 "응 어릴 때부터 운동시간이 많았고, 모임도 많았는데?" 라고 답을 했다. 


여성들의 운동 역사는 그 친구가 자고 나란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일본 여학생들의 경우 몸집은 왜소해도 힘은 정말 좋았는데, 어릴 적부터 운동클럽 가입이 의무였기 때문이다.  다들 수영, 테니스, 배드민턴, 등산 등 한가지 씩 꾸준히 한 운동이 있었다. 그리고 그 꾸준한 운동은 지금 그들의 체력의 뒷받침이 되어 주었다. 


나의 학창시절에서도 한반에 1-2명씩 운동을 잘하는 여학생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보통 '털털한 선머슴'의 이미지로 통일되었고, 조금 유별난 별종으로 취급되었다. 2017년에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한 인터뷰가 큰 이슈가 되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여학생들이 운동장을 갖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며 "운동장이 남자 아이들의 공간이 된 것에 어떤 교사도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는 환경에서, 지금은 활달하지만 성적인 사회화를 거쳐 그런 성격이 깎여나갈 여자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을 이야기 했다. (인용과 아래 사진 모두 오마이뉴스


@닷페이스_오마이뉴스 기사에서 재인용



덴마크에서 처음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주말 저녁 근처 공원을 나가 뛰었고, 플로어볼 이라는 새로운 운동을 남학생들과 같이 해보기도 했다. 플로어볼을 한 첫날 너무 힘들어서 길고 끈적한 침이 그냥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래도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열심히 뛰고 통유리로 된 큰 체육관 창문을 열어 밖으로 나가 바람에 땀을 식히는 그 순간이. 


 그 아쉬움 때문에 서울에 돌아와  회사 일을 시작하면서 회사 건물에 있는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새벽 7시 일주일에 2번. 필라테스가 처음이라 몰랐는데 같은 선생님한테서 저녁반을 배우는 직장 동료가 이 선생님 엄청 스파르타라고 알려줬다. 어쩐지 내가 tv에서 본 필라테스는 우아하게 몸을 잡아주는 거였는데, 새벽 7시 20분 나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다 못해 몸 속에서 기포가 터지는 느낌까지 들더라니. 나는 또 이게 마음에 든다. 나는 지금 몸을 예쁘게 만들려고 필라테스를 하는게 아니니까. 몸 속의 기본 근육을 만들어서 체력을 높이는게 우선이다.


조금 더 오만방자 해보자면 주말 러닝클럽도 가입하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배구를 직접 해보고 싶다. 지금은 배구 클럽에 가입하기 까지는 겁이나서  (내 키에 무슨 포지션을 맡아?) 여자 배구 경기를 열심히 보는 것에 만족하고 있지만. 언제가는 우리 동네 배구 클럽에 주전세터가 될지 또 누가알아? 


@스포츠 경향. 얼마전 끝난 VNL .너무 긴 일정이었는데 수고했어요 정말


나의 꿈이 하나하나 이뤄질 수록 나의 몸은 사회가 여성에게 허락한 몸과 멀어질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내 몸을 나를 위해 쓰고 싶으니까. 나의 몸을 타인의 시선에 맞추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내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여성의 몸을 억압해오던 사회에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 낼 것이다. 


PS. 아.  어제 필라테스 때문에 오른쪽 팔뚝 너무 아파. 불타는 것 같다고 정말 





@표지사진은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장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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