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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Sep 14. 2019

오늘은 추석이니까
사랑이 필요해

추석 연휴 전날 과장님의 배려(?)로 일찍 퇴근 한 나는 회사 빌딩 앞에서 모든 게 막막해졌다. 앞으로의 4일 동안 아빠의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니.  4일이 끝나 있을 때 둘 중 하나는 온전치 못할 거야.  명절이 되면 밀어놓았던 가족갈등이 마감이 닥친 것처럼 다가오는 기분이 든다. 아, 집 나가고 싶다. 하지만  돈이 없는 걸. 그리고 엄마는 추석 때 가족끼리 단란한 시간을 못 보낸다는 현실에 또 울겠지. 이런저런 생각해 답답해지니 답은 하나,


 술


그렇게 그날 난 내가 껴서는 안 될 술자리에 끼게 되었다. 6명이 모인 술자리였고, 심지어 그들은 셰어하우스 메이트들이었기에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여서 나만 혼자 낯선 이었다. 그들의 집에 나를 초대한 친구는 내가 어색하지 않게 노력했지만, 역시나 나는 이방인이었다.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이야기에 끼지 못할 때마다 술을 마시니 어느 순간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취해 있었다. 


평소라면 혼자 나가서 피는 담배를 좋아하는데, 그날은 꼭 누군가와 함께 나가고 싶었다. 함께 나가서 곧 가득 차게 될 달을 바라보고 싶었다. 담배를 피우고 달을 바라보는 순간 누군가 내 옆에 있었으면 했다. 나는 너무 막막하니까. 모든 게 너무 버거울 때면 쓸쓸해진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 오로지 혼자 서있는 기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 우리 집의 명절은 차가운 송편 같아. 먹을 때마다 목이 메고, 누구 하나 따듯하게 데울 방법을 모르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자꾸만 어려워지는 것 같아.


내 마음을 모두 내어준 사람은 나를 떠났고, 나를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은 나를 힘들게 해. 사랑은 어렵고, 빠질 자신도 없어지는데 외롭긴 싫어. 그러니 쉽게 따듯해지고 싶어. 그런 생각에 휘말려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몇 번의 담배를 더 피니 어느 순간 나는 누군가에게 키스하고 있었다. 담배 피우러 나갔었는데, 그를 벽에 몰아넣고 키스하고 있었다. 키스 몇 번을 하다 더 이상 그 사람이 원치 않아 키스는 거기서 끝이 났다. 그 사람은 나를 택시 태워 보내기 전, 좋은 친구로서 남고 싶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나는 '내가 너에게 그만큼 성적으로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야기잖아'라고 되물었다. 그는 맞다고 했고, 나는 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  처음부터 솔직히 말해주면 더 좋을 텐데, 난 착한 척하는 사람 싫단 말이야. 


택시를 타고 한강을 지나며, 나는 덴마크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모두가 새해 복을 빌고 있을 때 나를 원치 않는 사람에게 키스하고 싶다고 말했었지. 그리고 그 장면을 나를 정말 좋아해 줬던 D가 모두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D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그에게 갔었다. D는 너무 따듯한 사람이어서, 내가 그 온도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따스함에 조금이라도 상처를 주기 싫었다. 


하여튼 나는 내 삶을 꼬이게 하는데 재주가 있고, 술 먹고 한 짓은 늘 감당이 안된다. 그 사람에게서는 다음 날 잘 들어갔냐는 연락이 왔고, 나는 '잘 것도 아니면서 챙기는 척하지 말아요'라고 보내려고 하다, '응 괜찮아 고마워'라고 짧게 보냈다. 그에게서는 역시나 답이 없었고 나는 조금 더 쓸쓸해졌다. 


복잡한 마음과 아빠 때문에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어 공원을 나가 걸었다. 술 먹은 나는 인간이 아니 다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걷고 있는데, 구석 한가운데서 울고 있는 한 여성분을 발견했다. 그는 아무 소리도 없이 모은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는데, 떨리는 몸 때문에 멀리서 봐도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옆에 다가가 조용히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나도 그 기분을 잘 안다고, 명절 정말 거지 같지 않냐고, 혹시 외로우시다면 제가 옆에 있어드릴 수 있는데, 저도 지금 엄청 외롭거든요. 그 많은 말들을 삼키고 그가 나의 존재를 인지하게 전에 얼른 그곳을 빠져나왔다. 우리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온도는 늘 너무 뜨겁거나 차가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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