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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Sep 14. 2019

여성들이 AOA의 '너나 해' 무대
에 열광하는 이유

하나의 위로가 된 그들의 무대 

퀸덤 3화 AOA의 <너나 해> 무대가 화제다.


9월 12일 방영한 3화 퀸덤의 주제 '커버곡 대결'에 AOA는 마마무의 '너나 해'를 편곡했다. 

방송이 나간 이후 무대 영상은 유튜브 실시간 인기 동영상 5위 내에 진입했고 커버곡은 멜론 100위 내에 진입했다.  AOA 보다는 다른 걸그룹이 더 주목받았던 퀸덤 초기 1-2화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르며, 방송 후 브이 라이브를 통해 멤버인 설현은 "이렇게 사람들이 좋게 봐 주시는 건 정말 처음이어서"라며 기쁨을 드러냈다. 


트위터 @missmisbehaved 계정 출처 



나는 져버릴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 


너나 해 무대 도입부는 지민의 랩으로 시작한다. 


THIS IS AOA 
(중략)
솜털이 떨어질 때 벚꽃도 지겠지
나는 저버릴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


어린 나이일수록 주목을 받고, 나이 든 걸그룹은 점점 메인에서 밀려나는 현실 속에서 2012년 데뷔한 걸그룹 AOA는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그룹이다. 7년 차 걸그룹은 AOA는 대중이 걸그룹에게 기대하는 '풋풋함' '귀여움' 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으니까. 그 고민의 끝, 지민은 무엇이 AOA인지 말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보이는 꽃, 누군가 쉽게 꺾을 수 있는 꽃이 아닌 시간이 지날수록 푸르러지는 나무가 되어 무대에 계속 서고 싶다고. 


이번 AOA 너나 해 편곡 무대에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제시했던 사람은 AOA의 리더이자 래퍼인 지민이었다. 그리고 지민은 이 무대가 보여주고자 하는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 사람들이 AOA를 정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스스로 AOA를 정의하겠다고. 



@출처 엠넷



짧은 치마에서 슈트로, 하이힐에서 구두로 


퀸덤 2화에서 AOA에는 히트곡 경연으로 '짧은 치마'를 무대를 보였다. '난 아직 쓸만한데 너는 왜 날 헌신짝 보듯이 하냐며' 슬퍼하는 가사 속 AOA는  '아찔한 나의 하이힐 (하이힐) 까만 스타킹 (스타킹)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을걸 (말리지 마)'라는 가사에 맞춰 치마를 찢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남성의 눈길을 받기 위해, 아직 내가'쓸만한 존재'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 영상을 본 다른 가수들이 '너무 섹시해'라며 소리칠 정도로, 수위가 높은 섹시 퍼포먼스였다. 


@엠넷


그리고 AOA는 커버곡 경연에서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한다. 마마무의 노래를 찾아보며 선곡을 고심하던 중 지민은 본인이 생각해놓은 슈트 시안과 댄서들이 있다며 마마무의 '너나 해'를 멤버들에게 설득시킨다. 그리고 '너나 해' 무대에서 멤버들의 의상과 표정 무대매너 모든 게 바뀐다. 짧은 치마에서 슈트로, 하이힐에서 구두로 바뀐 의상 콘셉트에 맞춰 멤버들은 귀여운 표정이나, 섹시한 표정을 전혀 짓지 않은 채 '넌 너만 생각해 그럴 거면 너나 해'라고 말하며 카메라를 응시한다. 


@엠넷


그리고 무대 중반부 AOA가 이전 무대에서 입었던 것과 비슷한, 몸에 쫙 달라붙는 의상을 입은 남성 보깅 댄서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섹스어필이 노골적으로 섞인 보깅 댄스를 추고, 그에 비해 AOA의 춤은 움직임이 절제되어있다. 기존의 젠더 롤을 전복시킨 구성인 것이다. 여성은 노출이 드러나는 의상에 섹스어필이 가미된 춤을 추고, 남성은 여성의 움직임에 반응하되 절도 있게 무대의 권력을 소유하는 기존의 무대 구성을 대놓고 뒤집었다. 마치 무대에서 수동적인 보여지는 존재로 서는 건 '너나 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것 또한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섹스 구분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지점 또한 있었다. 단순히 기존의 '여성'과 '남성'의 규범을 전복시켜 남성들에게 '여성스럽다'라고 여겨지는 옷을 입히는 것은 오히려 여성성을 고착화시킨다는 주장의 맥락이다. 


하지만 이번 AOA 무대가 주목받는 이유는 젠더 전복의 재현이라는 페미니즘 논의 외에도, 

이 같은 젠더 전복의 무대를 구성한 팀이 바로 'AOA'이기 때문이다. 




여자 후배를 위해 합성사진을 유포하고 음란 메시지를 보낸 악플러를 고소한 설현, 

페미니즘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던 유나 


설현 입간판(등신대) 대란을 일으켰을 정도로 설현의 몸은 늘 성적 대상화되어 왔다. 설현의 가슴과 엉덩이는 확대되어 유포되었고, 설현은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자세를 원하는 광고주들의 일관된 요구에 지쳐갔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지큐에서 슈트를 입고 화보를 찍었을 때, 설현은 시안을 받는 순간부터 설레었다고 말하며 대중이 기대하는 모습과 진짜 자기 모습 사이에서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http://www.gqkorea.co.kr/2018/12/24/%EC%84%A4%ED%98%84%EC%9D%98-%EA%B2%B0%EC%8B%AC/  (아래 인터뷰는 모두 이 기사 출처) 


저는 더 탐험하고 싶어요. 설사 대중 분들이 좋아하지 않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다양한 모습을 탐구하고 보여줘야 하는 게 배우이기도 하고요.


이 인터뷰에서 설현은 데뷔 초 신체 일부분만 집요하게 확대한 ‘움짤’과 같은 수많은 성희롱과 성추행을 본인은 겪었지만 후배들은 안 겪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합성사진을 유포하고 음란 메시지를 보낸 악플러를 선처 없이 고소했다고 말한다. 


데뷔 초에는 신체 일부분만 집요하게 확대한 ‘움짤’이라든지, 말할 수 없는 것도 되게 많았어요. 우리, 그리고 지금 활동하는 친구들이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똑같이 겪고 있는 거예요, 지금도. 그들도 그런 일들이 불합리하고 불쾌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바꿔나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는 비록 그런 일을 겪었지만, 앞으로 활동할 친구들을 위해서.


다른 멤버 유나는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있다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tVN ‘차이 나는 클래스’에 출연해 “‘페미니즘 편’을 재미있게 봤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발언으로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메갈' 낙인을 받았는데, 사실상 유나 또한 백래쉬를 예상했을 것으로 보인다. '메갈'과 '페미'가 '김치녀'를 대신하는 새로운 여성 혐오 단어로 쓰이고 있는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 속 성차별을 감안할 때, 현직 여성 걸그룹이 페미니즘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따라서 여성들이 이번 AOA 무대에 열광하는 것은 

그간 AOA 멤버들이 보여왔던 용기 있는 선택지들의 맥락 속에 존재한다

구설수에 오를 수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아니 더 나아가 '남성'팬덤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소신 발언들을 해왔던 멤버들의 그간의 노력이 완벽히 빛난 무대가 바로 '너나 해' 무대였던 것이다. 




 AOA의 이야기이자, 대상화된 존재로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는 단순히 AOA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자의 나이는 크리스마스와 같아서 25세가 넘으면 '꺾인다'는 진심이 담긴 농담을 드는 현실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더 짧은 치마를 입을수록 남성들의 시선을 받는다는 사실을 미디어를 통해서 습득한 여성들은 본인의 '쓸모'를 입증받기 위해, 아니 그저 사랑받기 위해 기꺼이 하이힐과 짧은 치마를 선택해왔다. 


그래서 본인이 꽃이 아닌 나무가 되겠다는 지민의 랩, 그간 무수한 성적 대상화를 감당해야 했던 설현의 '너나 해' 무대 속 당당한 표정은 하나의 위로가 된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보이는 존재가 아닌, 우리 스스로의 존재로 지내도 괜찮지 않겠냐는. 나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고, 앞으로가 무섭지만 그럼에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나 갈 테니 서로 지지해주자는 메시지. 


응시하고, 서로를 믿고, 다시 앞으로 나가는 것. 

이게 내가 이번 AOA의 무대를 몇십 번 돌려본 뒤 얻은 소중한 메시지다. 


@출처 엠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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