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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Nov 20. 2019

한 시간 일찍 출근하기로 했다

겨우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를 집에서 멀리 다녔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새벽 6시 10분 학교 통학버스를  탔어야 했기에 아침마다 나는 하루에 16시간 앉아있던 몸을 간신히 일으켜, 아니 굴려서 버스에 타곤 했다. 고등학교를 떠올리면 버스 안에서 정신없이 3년의 시간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이후로도 나는 단 한 번도 집 근처 에서 학교, 아르바이트, 직장생활을 한 적이 없다. 걸어서 10분거리인 동네 학원에서 3년간 알바한 내 동생과 다르게  나는 출퇴근 시간 지하철과 버스에 갇혀있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잡을 손잡이가 없어 앞 사람과 뒷 사람 사람 내 온몸을 끼우고, 만약 버스가 급정거 하더라도 적어도 죽지는 않겠지 하는 체념하는 마음을 키워왔다. 가끔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겠는 방구 냄새를 맡고, 먼저 줄을 선 사람들을 밀쳐내고 버스나 지하철에 오르는 무례한 인간의 모습을 마주하고, 9호선 급행열차에서 분명 누군가 내 엉덩이를 고의적으로 만졌지만 돌아볼 틈도 없어서 가만히 있어야  했던 경험은 이 세상 전체에 대한 적의(다 망해 버려라) 를 불러일으켰다. 


 덴마크에서 지낼 때 ‘비었다’라는 감각을 자주 느꼈다. 지하철에도, 공원에도, 버스에도  자리가 자주 비었다.물론 코펜하겐 시내는 복닥거렸지만 특정 시간 대 뿐이었고, 특히 내가 지냈던 소도시는 오후 4시가 지나면 길가에 사람이 없었다. 특정 장소에 사람이 없다가 아니라 그냥 어딜 가도 사람이 없었다. 내가 평생 자라온 서울 에서는 늘 사람들 속에 끼어있는 기분이었는데 여기서는 넓은 회색 도화지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서울. 9시 출근 6시 퇴근을 시내로 하게 되었다. 몇 달간 출퇴근을 하면서  어느 순간 내가 그렇게 경멸했던 사람들과 같아졌다.  눈앞의 지하철을 놓치면 지각이 분명한 지금, 오늘 지각을 하게 되면 펼쳐질 일들이 내 눈앞에 파노라마 처럼 펼쳐진다. 우선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아야 하겠고, 오늘 부장님이 언제오시더라, 하필 사무실에 사람이 많은 날인데....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어느새 앞에 줄 선 사람을 밀치며 내 몸을 지하철에 우겨 넣고 있었다. 방구는...... 전날 삼겹살 먹었다가 다음날 실수로 지하철에서 방구 꼈는데 냄새가 너무 지독해 나도 지하철에서 내리고 싶었고. 아 하지만 성추행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다음에는 ‘ 어떤 새끼 가 엉덩이를 만지는 거야’ 라고 꼭 소리 지를테다. 


퇴근길, 하루종일 일한 무거운 머리를 이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넣으면 내가 부딪힌 사람들이 하루 동안 겪은 짜증과 피곤이 나에게 먼지처럼 붙는 것 같았다. 매번 집에 가자마자 외투를 탈탈 털어 베란다에 걸어 놓았지만, 내 몸은 탈탈 털 수도 없었다. 집에 도착하면 7시쯤. 밥을 차려서 먹고 치우기만 해도 9시. 두 눈은 꿈벅꿈벅 감겨오고 tv 좀 보다가, sns좀 하다가, 책을 읽으면 스르르 잠이 들면 하루 끝. 내가 워낙 27세 치고 일찍 잠드는 편이긴 하지만 그냥 하루가 너무 피곤했다. 


 어쨌든 6개월 넘게 나인투식스를 겪으며 나는 사람들이 왜 그리 무례한지 알게 되었다. 서울 초 집중화가 무례한 사람들을 만들고 있었다. 특별히 누군가 더 무례한게 아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좁은 공간에 모여있는 것. 내가 이기적으로 굴지 않으면 계속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수 밖에 없다는 경험치가 사람들을 무례하게 만들 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부동산문제부터...... 


당장 해결하기 힘드니 나는 나의 시간을 바꾸기로 했다. 마침 회사가 계약직에게로 탄력근무제를 적용한다 했고, 나는 얼른 8시 출근 5시 퇴근으로 옮겼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 대로 옮길 줄 알았는데 나 혼자 뿐이었고, 회의와 잦은 야근때문인지 10시-7시 퇴근을 택한 사람들은 몇 있었다.  처음으로 8시 출근을 한 날  아직 해가 뜨지 않은 7시 10분 집을 나섰고, 고요히 버스를 타고 2호선 지하철로 갈아탔다. 회사 까지 가는 50분은 고요했다. 사람들 사이에 뭉게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견디기 위해 핸드폰에 집중했던 9시 출근길과 달리 사람들은 대부분 가만히 눈을 감거나 멍 때리고 있었다. 나는 버스는 앉아갔고, 지하철에서는 2-3 정거장 뒤 자리에 앉았다. 지하철 안전문이 고장나 한 역에 5분간 정차해 있었지만 누구 하나 짜증내지 않았다. 


나는 왠지 아침의 사람들이 다정한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서로 당신도 이 시간에 나오셨군요. 고생이 참 많으셨어요 라고 서로를 토닥이다가 잠시 눈 좀 붙이세요. 라고 말해도 서로 어색하지 않을 사이 같달까. 무엇보다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9시 출근 6시 퇴근을 하면서는 일상적인 일기를 쓸 여유가 없었다. 솔직히 쓸 말이 없었다. 일 적응하느라 바빴고 직업이 글쓰기 인지라 집에오면 컴퓨터 쳐다보기도 싫었다. 내 이야기 말고도 쓸 글은 넘쳐났다. 하지만 근무 시간을 옮긴 지하철에서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제 내가 회의 중 느꼈던 찝찝함, 말을 잘못 한 것 같다는 후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들에 대해서. 


덴마크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때 학교에 놀러왔던 남자친구와 드디어 결혼을 한다는 소식. 그는 나의 일상을 묻는다. 너는 어때 잘 지내? 나는 잠시 생각하다 적었다.


응. 건강하게 내 자신을 보살피며 잘 지내고 있어. 

일은 대체로 지루하지만 재밌는 순간도 있고 가끔은 보람있기도 해. 

더 글을 쓰고 싶긴한데 시간을 내는 게 어려워. 하지만 다시 기록하기 시작했어.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데 누군갈 꼭 좋아하지 않아도 좋은 것 같아. 그렇게 잘 지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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