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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Sep 12. 2020

기안84 <복학왕> 논란 이후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래 글에는 최근 기안84의 <복학왕>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기안84의 작품을 직접 보고 싶지는 않지만 최근 바뀐 게 있는지 궁금하신 분들에게는 딱일 테지요.



기안 84의  웹툰 <복학왕> 속 여성 혐오적 대사와 설정 논란이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다.

논란된 내용을 정리하자면, 기안84가 네이버에 연재 중인 웹툰 <복학왕> 속 캐릭터인 봉지은은 대기업 인턴이지만 일을 잘하지 못해 정규직 전환이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회식자리에서 조개를 깨고 정규직으로 채용된다. (문장이 이상하지만 이게 사실입니다) 후에 정규직 채용이 결정된 날 봉지은이  40대 팀장과 사귀기로 하며 잠자리를 가진 것이 암시된다.

웹툰 이용자들은 위 내용이 채용 과정에서  여전히 성차별이 만연한 현실을 외면한 채 여성은 직장 상사와의 잠자리를 통해 일자리를 쉽게 얻는다는 여성 혐오적인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몸'을 팔아 쉽게 돈을 번다는 꽃뱀 프레임을 재생산한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기안84가 소수자를 향한 혐오 내용을 그리는 것이 끊임없이 문제 되어 왔음에도 아무런 개선 없이 애매한 사과문과 <나 혼자 산다>에서 풀 죽어 앉아있는 모습으로 사건을 무마해왔던 것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었다.


기안84의 연재를 중단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10만 가까이 이뤄졌고, <나 혼자 산다>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기안 84의 하차 요청이 줄지어 이어졌다.  기안84는 몇 개의 대사를 수정하고 사과문을 올렸지만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하고자 했다는 작가의 변명에, 사람들은 도대체 기안84가 생각하는 '이런 사회' 란 무엇이길래 저것이 현실을 반영한 풍자라고 보는 것인지 더 분노했다.


여기까지가 논란이 되었던 시기의 이야기다.  

이 글에서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현재 <복학왕>은 계속 연재되고 있다.
최근 회차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봉지은과 연애를 시작한 팀장은 기안84와 우기명과 봉지은이 과거 연인 사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우기명에게 과한 업무를 부당하게 부여한다. 팀장이 이토록 봉지은과의 연애에 집착하는 이유는 팀장이 과거 "성적표가 바뀌면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는 말"을 믿고 성공을 위해 노력했으나 성공한 이후 만난  예쁜 여자들의 "불꽃은 이미 다 타버렸"고 이미 "이 놈, 저 놈과 사랑이라는 불장난은 태울만큼 태운 거"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40대 팀장은 20대 봉지은에게 몇 명이냐 만났고 그들과 어디까지 갔냐고 닦달하자 봉지은은 헤어지자 말한다. 이에 팀장은 "네가 이 회사에 누구 때문에 들어왔는데"라고 분노한다. 팀장이 지시한 과한 업무를 수행하던 우기명은 광어인간이 되고, 최신 회차에서 봉지은 또한 광어인간이 되는 것으로 암시된다. 


우기명이 광어인간이 되는 것,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창작의 범위니 문제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웹툰에서 "성적표가 바뀌면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며 여성들의 순결을 포함한 첫 경험에 집착하는 40대 남자 캐릭터를 지켜보는 것은... 징그러웠다.

한 달 전 기안84가 논란이 되었을 때 내가 처음 느꼈던 감정은 지겨움이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것이 여성 혐오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도대체 왜 이 수많은 사건을 거치면서도 기안84는 나아지지 않는 걸까.


아래 기사는 기안84가 그동안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왔던 이유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기안84는 자신이 겪은 대상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무지하거나 별 다른 관심을 주지 않는다. '노병가'에서 의경 부대 내에서 일상적인 폭력이 가해지는 것을 세밀하게 그렸지만, 동시에 작가는 극 중에서 의경 기동대가 시위 현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강한 부정과 혐오의 감정을 투사하여 그려냈다. 이러한 표현은 처음에는 '지속적인 억압과 폭력에 익숙한 기동대가 시위대에 느낄 자연스러운 심리 묘사'처럼 여겨졌었지만, '패션왕'을 거쳐 '복학왕'을 연재하는 지금에서는 결국 그 묘사의 진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기안84에게 자신이 공감하지 않고,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대상에 비추는 시선은 너무나도 얇다 못해 전형적이다. 한국 사회 주류가 지니고 있는 혐오와 차별, 편견을 그대로 가져와 자신의 작품에 그대로 쏟아내기에만 여념이 없다. '복학왕'이 '패션왕'보다도 더욱 큰 논란이 되었던 것은 기안84가 '나 혼자 산다' 등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지닌 것도 있지만, '복학왕' 작품 내부에서 우기명을 대하는 자세와 그 이외의 캐릭터, 특히 소수적 위치에 놓인 캐릭터를 그리는 표현법이 천양지차 수준으로 달랐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 미디어오늘, 성산민 문화평론가의 글,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006/0000104176?cds=news_edit




지금까지 정리된 논란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쏙 빠져있는 게 있다. 바로 네이버다.

웹툰 내용의 책임은 1차적으로는 작가에게 있겠지만, 중간에서 웹툰을 소비자와 연결하고  이 웹툰을 통해 돈을 버는 곳은 "네이버"다.

하지만 네이버는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여전히 아무런 해명 및 개선 요구를 밝히고 있지 않다.

최근에는 청소년 관람불가 웹툰인 헬퍼 2가 팬 커뮤니티 중심으로 논란이 되었다. 웹툰 속 아동 성착취, 여성 강간 폭력 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팬들이 직접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네이버는 "독자의 반응을 지속적으로 살피고 있다"라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


네이버는 그동안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로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한 '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수많은 콘텐츠가 포털 등의 플랫폼으로 중개되는 상황에서, 그리고 그 중개화 과정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는 플랫폼들은 이제 공공성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특히 정보화 시대에 모두가(어린아이들도 포함해)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황 속 플랫폼은 커져가는 영향력에 대해 고민해왔고, 더욱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안84가 봉지은을 그려내는 방식이 그저 창작의 자유로 남을 수 있을 때는 여성이 성별을 이유로 취업 시장에서 차별받는 현실이 없어졌을 때, 여성은 남성에게 몸을 팔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김치녀, 꽃뱀과 같은 남성 중심적 성규범이 잘못되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혔을 때일 것이다.

그렇지 못한 지금의 한국 현실 속에서 기안 84가 그려내는 여성은, 그저 기존의 여성 혐오적인 고정관념을 강화할 뿐이다.

나는 기안 84가 사과문에 적은 "이런 사회를 풍자하고" 싶었다는 말이, 여성이 섹스어필을 통해 취업에 성공한다는 게 현실이라고 믿는 그의 인식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꽃뱀. 김치녀, 된장녀와 같은 프레임이 미디어 속에서 반복될 때 그것이 차별임을 인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나는 기안84가 연재 중단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반복되는 혐오 논란에도 기안84가 전혀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진심으로 안타깝고,  <나 혼자 산다>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답답하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러한 사태를 계속 방치하고 묵인하는 이 모든 논란에 창작자를 앞서서 비난받게 하는 네이버 웹툰 측에 더 화가 난다. 창작자 개개인의 문제로 돌리기 전에 네이버 웹툰은 이젠 정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네이버는 혐오표현이 재생산되는 데에 책임감을 가지고 소수자를 향한 혐오표현을 방지하는 내부 가이드라인 등을 정립해야 한다.




** 글 제목에 쓰인 사진은 복학왕 포스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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