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위에 완두콩 하나를 놓고, 그 위에 요 수십 개를 깔고 자라 했더니, 한 잠도 못 잤다고 말하는 여자 얘기 나오는 거"
"응, 그 후 어떻게 됐는데?"
"왕자는 불편해서 잠 못 잤다는 여자가 공주 맞다며 결혼했다잖아"
"그래서?"
"예민한 게 뭐가 좋다고 결혼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데... 그런 여자와 살면 좋은 거야?"
"음, 내 생각엔 그 여자가 딱딱한 바닥에서도 쿨쿨 잘 자는 평민이 아니라고 판단해서가 아닐까? 푹신한 침대에서만 귀하게 자란 공주"
"어~ 그런 거야? 나는 몰랐는데"
"그 얘기 듣자마자 바로 그렇게 생각되던데?"
나는 공주의 예민한 성격에만 매달려 이해가 어려웠다. 아내는 전체를 한눈에 알아차린다. 나보다 직관이 발달했다.
직관적 사고는 다르다. 그냥 사진 찍듯이 한눈에 알아본다. 보는 것이 아는 것이다. 시작과 끝이 따로 없다. 섬광처럼 빠르다. 눈치도 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직관이 발달한 사람은 상황 파악이 빠르다. 부럽다.
-논리적 사고와 직관적 사고
나는 가끔 단순하고 모자라 보인다. 논리적인 뇌를 주로 사용한다는 핑계를 대지만, 느리고 덜 떨어져 그렇다.
논리적 사고는 생각의 끄트머리를 잡고 가야 한다. 개미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어야 한다. 결론에 이르려면 시간이 걸린다. 생각을 억지로 시작하지 않아 결론에 도달하지 않으면, 알아낸 것이 없다. 일부러 생각을 해야 하니, ATP 에너지 소모도 많다. 그래서 나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별로 없다. 치열함만 있다.
논리에 의존하면 순차적 생각을 주로 하게 돼 굼뜬다. 그래서 나는 자주 형광등이다. 어떨 땐, 아주 그 자리에서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꼬리를 놓쳐 이해를 못 할까 봐 무섭기도. 소설도 잘 보지 못한다. 읽다가 여기저기 질퍽거리면 어떡하지? TV 드라마 저 사람들 왜 그래 하고 묻는다. 아내에게 띨띨하다는 소리도 가끔 듣는다.
상황 파악이 완벽히 되지 않으면, 돌아가서 처음부터 필름을 다시 돌려 봐야 한다. 사실 대학교 수업도 강의실에서 많이 못 알아들었다. 집에 가서 복습해야 이해 됐다. 그래서 나는 묵상(默想)이란 말을 쓴다. 개미 꽁무니를 따라가듯 묵상해 보아야 비로소 알게 된다. 추억도 그렇게 묵상한다. 곱씹으며 따져봐야 조금이나마 알게 되니까.
-도를 아십니까
장점도 있다. 묵상으로 생각의 구조를 만들면 나만의 틀이 완성된다. 그러면 기쁨에 휩싸인다. 어둠 속에서 헤맸는데, 알게 되면 환한 빛이 보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듣고 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편견에 불과하지만.
나름의 이론이 완성되면 아내에게 도(道)를 전했다. 입을 여는 순간 교탁에 섰고, 산속 고승도 되었다. 수염을 허옇게 기르고 도통한 깨달음을 설파했다. 아내는수십 년간 신기한 듯내 얘기에 귀 기울였다. 묵묵히 들어주던 아내는 이제 그 입 다물라고 한다. 가르치지 말라고 한다. 똑같은 얘기에 귀가 아프다고 한다. 고요함을 깨지 말라고 한다.
게다가 반박을 한다. 반드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니, 단정하지 말라. 어디 가서 그렇게 자기만 옳다고 말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