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기제 발동
세상에는 가지 각색의 사람들이 넘친다.
때로는 개성이라 하고 때로는 몰지각이라 하는 행동들을 거침없이 하는 이들. 그런데 같은 행동을 해도 어릴 적에는 어려서 그러려니 이해하지만 나이 들어서 하면 꼰대질, 주책이라고 한다.
나는 어릴 적에 사람이 나이가 들면 부처님 반토막은 아니더라도 반의 반토막은 될 것이라 착각했다.
좀 더 생각이 유연해지고 행동에 여유가 넘치는 인자함이 저절로 베어 나오는 어른.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아는 어르신 중에 뽀얀 얼굴에 눈웃음이 예쁘고 몸집이 작은 어머님과 큰 키에 체격은 좋지만 내성적인 어머님이 계시다. 두 분 다 몸은 불편하시지만 운동을 열심히 하셔서 기능 회복도 빠르시고 항상 고상한 어투와 잔잔한 미소를 짓으시며 예의가 참 바르시다.
어느 날 두 분 모두 연락 없이 결석을 하셔서 다른 분에게 안부를 물었다.
어머나 세상에~~
두 분이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욕하고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원인은 서로에게 생각 없이 던진 무례한 말과 행동들 때문이었다.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더 힘없고 거동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셨던 뽀얀 얼굴에 눈웃음이 예쁜 어머니. 참다못한 큰 키의 내성적인 어머니가 폭발하신 것이다. 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 장면을 연출하신 후 두 분 다 잠적하셨다.
노인이나 환자의 경우 평소에 온순하다가도 순간적으로 억제된 감정이 폭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이것을 '방어기제' 발동이라 생각한다. 본인의 무력한 상태를 감추려는 본능과 남한테 무시당하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 본능을 통제하는 능력은 살아온 세월과 비례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노인과 환자는 건강한 일반인보다 현실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지만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하거나 퇴물로 여겨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때때로 감정표현을 거칠게 하면서 상대를 제압하려 하고 자신을 과장되게 포장하려 한다. 또 쉽게 긍정하지 않음으로 쉬운 사람으로 취급되기를 거부한다..
얼마 전에 우울증과 인지기능 관련 설문을 한 적이 있다. 이때 어르신들이 나이가 들면서 가장 변한 부분을 성격이라고 하셨다. 화가 자주 나고 점점 말이 거칠어지는데 스스로 통제가 힘들다고 하셨다. 그리고 몸이 아프고 사는 게 재미가 없어서 그런가 보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셨다. 그럴싸한 이유이지만 반은 변명이라 생각된다.
그럼 본능을 조절,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교육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다스리는 법을 평생 배워야 한다. 그리고 배움을 실천하여야 한다.
실천이 없는 배움은 곧 망각될 것이다. 나이 들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대충하고 살아. 이젠 못 고쳐. 이런 생각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노인의 자리를 위태롭게 만들고 세대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노인도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젊은 세대에게 존경은 못 받더라도 경계와 질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교육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다스려 건강하게 노후를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야 한다.
뽀얀 피부에 눈웃음이 예쁜 하지만 싸움박질로 나를 놀라게 했던 어르신이 수일 후 수업에 나오셨다. 물론 싸웠던 상대도 나오셨다. 그렇게 되기까지 나의 노력과 체력이 대단히 필요했다.
눈웃음이 예쁜 어머님이 수업을 마친 후 나의 손을 붙들고 "선생님 내가 만든 건데 가져가! 좋지는 않지만 성의로 받아줘. 나 운동 가르쳐 줘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라고 하시며 터질 듯이 빵빵한 모 백화점 종이봉투를 안겨 주었다. 어찌나 감동인지~~~. 내 노고를 보상받는 느낌이랄까!
오늘 몸속에 기가 통째로 빨려 나가는 느낌이어서 집에 가서 홍삼 진액 한 숟갈 먹고 바로 쓰러져 쉬고 싶었는데 그분의 수줍어하는 얼굴과 멋쩍은 미소가 피로 회복제가 되었다.
남들 보기 전에 어서 가라고 하셔서 그 봉투를 아기 안듯이 꼭 껴안고 차에 탔다.
봉투를 열어 보니 손수 만드신 여름이불 3개와 베개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큰 종이에 예쁘게 쓴 '나를 걷게 해 주고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있게 해 준 선생님 감사합니다.
화해시켜줘서 고마워요'라고 파란색 글씨로 쓰여 있었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알고 고집을 버리고 스스로를 변화시킨 나의 제자에게 존경심마저 생긴다. 표현하기 힘든 뜨거운 기운에 목구멍이 딱 막혀 침을 넘길 수가 없었다.
'노인의 생각을 바꾸느니 세상을 바꾸는 게 더 쉽다'라는 누군가의 말을 '노인이 생각을 바꾸면 세상은 더 쉽게 바뀐다.'라고 덧붙이면 과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