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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Oct 03. 2023

안드라스 쉬프와 뵈젠도르퍼

23년 10월 3일 공연이 끝나고

쉬프를 대단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이 유명 연주자는 칠십 세에 접어들었다. 작년에도 내한했으니 직접 연주 들을 기회가 언제 있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런데다 뵈젠도르퍼를 직접 들을 기회이기도 했다. 프로그램은 럭키백처럼 당일에 열어봐야 알지만 바흐, 모차르트, 하이든, 슈베르트, 베토벤 중에서라면 대개 무엇이든 럭키일 것이었다.


그래도 첫곡이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프렐류드라니. 아 이건 이미 럭키백 당첨이다. 게다가 다음 곡은 바흐의 사랑하는 형과의 이별에 부치는 카프리치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를 떠오르게 하고야 마는 반가운 곡이 이어졌다. 모차르트의 소나타도 나를 웃게 했지만(그런 모차르트를 듣다 1악장 중간에 지루함을 느꼈다는 게 오히려 탐구해볼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프로그램은 슈만의 다비드 동맹 무곡. 1부는 프로그램만으로도 큰 기쁨을 주었다.


이 대가는 곡과 작곡가들에 대한 설명을 말로써 직접 전했다. 비밀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하는 사명이라도 띤 사람처럼. 그래서 공연은 다중을 상대로 한 마스터 클래스 같기도 했다. 그중에는 인상깊은 통찰도 있었다. 모차르트는 노래하고 하이든은 말한다라든가, 오페라 작곡가였던 모차르트의 경력을 생각해볼 때 피아노 소나타에서도 무대에 사람들이 등장해 움직인다고 상상해볼 수 있다는 말 같은 것이 그랬다. 바흐는 과학자인 동시에 예술가인데,  지적이면서도 시적이라는 해석에는 이보다 더 동의할 수 없다. 아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한편 1부 중 연주한 하이든에는 장송행진곡의 모티프가 있다고 했는데 2부에서는 D단조만을 세 곡 연주하겠다고 밝혔다. 그 스스로 밝히듯 D단조는 고통과 슬픔의 조성이다. 왜였을까? 이번 내한, 이 연주장의 어떤 면이 그로 하여금 고통과 슬픔, 죽음의 감각을 떠오르게 한걸까? 바흐와 멘델스존, 베토벤을 들으며 줄곧 생각했다. 답을 구할 길 없는 질문이었다.


두통 때문인지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 음향의 특색인지 연주회 중반부터는 귀가 피곤한 한편 소리는 자주 뭉개지듯 들렸다. 어쩌면 그저 평범한 저녁의 피로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통영에서의 완벽한 음향, 소리가 아래에서 위로 뾰족하게 떠오르는 대신 부드러운 담요처럼 내려앉던 내 궁극의 음향을 몇 번이나 떠올렸는지 모른다. 통영 국제음악당이 지척에 있었으면, 바라면서.


어쩐지 연주 자체에 대한 느낌이 없는 기이한 후기가 되었다. 오늘밤 꿈에서는 통영에서 연주하는 쉬프를 마주하고 싶다. 우리는 거기서 청동빛 D단조(쉬프는 조성에서 색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에게 D단조는 브론즈라면서)가 아닌 금빛 D장조(이건 내 조성 팔레트다)를, 고통과 슬픔이 아닌 우아한 기쁨을, 더 내밀하고 아름답게 나누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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