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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Feb 11. 2024

장욱진 회고전-가장 진지한 고백

설 다음날 덕수궁 미술관을 찾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무료 관람까지 당첨이라니. 운인가 불운인가. 했는데 이제 보니 내일이 전시 마지막날이다. 미술관이 터지도록 인파가 몰렸지만 이건 무조건 행운이었구나. 대신 시기 순으로 구성된 4개 전시실 중 1 전시실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2층 3 전시실에서 관람을 시작했다.

원작을 꼭 봐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컵, 엽서에 그려진 그림의 더 큰 버전일 뿐이라는 생각은 대개 완전한 오산이다. 원작은 때로 내가 그동안 이 작품을 오해했다는 것을 곧장 일깨운다.

나는 작은 엽서그림으로 이 까치를 처음 만났다. 그 엽서는 몇년 전부터 우리집 화장실 문에 붙어있다. 오늘 비로소 처음 이 그림 ‘까치’를 본 나는 매우 놀랐다. 그동안 이 그림이 슬프고 우울하다고 생각해왔는데 그 이유가 복제품의 어두운 색 때문이었음을 즉각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찍은 사진으로도 재현되지 않을 배경의 밝고 온화한 피칸 빛에서는 슬픔과 위축, 절망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무의 색 역시 내 엽서에 비하면 훨씬 밝아 은빛으로 보였다. 이제 그 나무에 자리잡은 까치(작가 자신이라고 말하곤 하는)는 엽서와 완전히 다른 의미를 내게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작은 그림을 그리기로 유명한 장욱진 화가의 작품 치고 크기가 매우 컸다(물론 마치 프레스코처럼 주택 벽에 그림을 그리기도 해서, 양주장욱진미술관에는 벽의 일부가 전시되기도 하지만). 57년 작. 비교적 초기작품인 이유도 있는 걸까? 이건 아직 답을 모르는 질문이다.

장욱진 작가의 색에 자주 감탄하곤 한다. 위 그림이 내 눈을 끈 것도 색 때문이다. 산의 핑크빛이 사랑스럽다. 아래 그림은 전통적인 문인화 모티프를 따르고 있다고 하는데 구성과 내용에 앞서 색에 눈이 갔다. 사진에 담기지 않은 형광빛 연두가 힙하기까지 하다. 이 연둣빛 배경은 아마도 강일 것이다.

조형적으로는 나무의 형상이 탁월하다. 비대칭적이지만 중량감에 있어서는 균형이 완벽하다. 특히 위 그림처럼 일필휘지 시원한 굵은 선일 때 장욱진의 나무는 미학적으로 내게 큰 쾌감을 전한다. 자유로움과 질서가 조화를 이루는 희귀하고도 좋은 예시이다.

나무와 나무 위의 집, 아빠-엄마-아이 세 사람의 가족과 개와 소. 사고 싶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림을 소장하고자 했던 유족이 내놓지 않을 정도였다는 ‘가로수’의 구성물들이다. 너무도 납득이 간다. 아름다운 가족과 가정. 이 그림은 인간의 보편적인 이상향 하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 보인다. 그 보편성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을 모르는 새 건드리는 게 아닐까? 대수롭지 않은 듯이.


한번 더 가고 싶었는데 내일이 전시 마지막이라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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