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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Mar 24. 2018

휴학 일기 (1)

동화는 없어_happy ever after

나는 현재 휴학 중이다.

휴학을 하게 된 이유는 정말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몇가지만 이야기 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먼저, 나는 무척이나 지쳐있었다.

모든 대학교가 다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다니는 대학교는 무진장 바쁘다. 과제가 잠깐 한눈 팔아도 우수수 쏟아지고, 시험에 퀴즈에 정신없이 보내야 한다. 그러한 학교에서 나는 매 학기 최소 20 학점을 들어왔다. 아니 그뿐만인가, 대학생활은 공부만 하며 보내는 것은 아니기에 친구들과 놀기도 해야하고, 동아리 활동도 해야하고, 대외활동도 알차게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진심으로 학교 다니면서 하루에 두 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다. 정말 열심히 학교를 다닌 것이다.

그 뿐인가, 열정적인 나 자신은 방학때도 내 몸을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방학때마다 교류 대학교들에서 계절학기 수업을 듣고, 인턴을 하고, 토플을 따고, 학교에서 멘토링 캠프를 할때면 언제나 멘토로 참여해서 캠프를 진행하고, 연구실에서 연구참여도 했다! 정말이지 입학 후에 집에서 단 2주도 연속해서 있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도 바쁘게 사는 와중에 알바도 하고, 학교에서 멘토링으로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돈을 모아서 나는 저번 학기 미국 캘리포니아의 UC Berkeley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미국에 고작 한 학기 살면서, 나는 정말이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겪었다. 이 일도 나중에 정리를 해보고 싶은데, 지금은 아주 눈물 쏙 뺄만큼 다사다난 했다고만 적어두자.

아무튼 미국에 다녀오고 처음으로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한 달을 살아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에게는 지금 휴식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래서 휴학했다.


둘째로, 사실 원래 휴학을 한다면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것들을 해보며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뭘 하고 싶은지를 찾고 싶었다.

말이 길었다. 진로 탐색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 이다.

또 짧게 말하자면, 나는 나름 정말 유명한 대학의 공대 4학년이다.(휴학을 안했다면 4학년 1학기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학교는 대게, 학부생 졸업 후 석사와 박사를 많이 하는 편이다. 나는 이렇게 많은 이들이 가는 길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볼까 생각하다가, 브레이크를 걸어보았다.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걸 해보고 싶어서, 그리고 내가 해보고 싶었는데 못했던 것이 있다면 지금 이 시기에 해보고 싶어서이다.


사실 이걸 치열하게 고민해보는 시기로 이 휴학 생활을 보내고 싶었는데, 지금은 우선 그냥 쉬고만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쉬다보니 내가 얼마나 쉼이 필요했는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한 학기를 쉬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잘 알고, 내가 아는 나는 나 자신을 발전시키고 싶어하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지금은 방전된 나를 충전시키는 소중한 시간이다. 날아오르기 위해 도약하는 시간이다.


약간 부끄럽긴 하지만, 요즘 거의 신생아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음을 적어본다.

나는 자고, 일어나서, 책읽고, 텔레비전을 보고, 산책하고, 친구를 만나고, 여가 생활을 즐긴다.

공부 빼고 모든 일을 다 하는 것 같긴한데, 계획 없이 하고싶은대로 살아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항상 시간을 쪼개고 쪼개며 바쁘게만 살아온 것 같다. 그렇게 살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 세상은 말해왔고, 나도 그 이야기에 적극 동감하고 동참했다.


요즘 쉬면서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는 드라마를 다시 보고 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88년생, 서울대 국문과를 나와서 드라마 보조작가로 일하다 그만두게 되고, 집도 없이 돌아다니다가 집주인인 남자와 계약 결혼을 하게 된다.

소재 자체도 신선해서 재미가 있어 보는 것도 있지만 이 드라마의 별미는 이 주인공의 나레이션,이라고 생각한다.

88둥이들이 88만원 세대로 세상에 살아가면서 느끼는 생각, 가치관 들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드라마에 녹아들어 있다.


이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88만원 세대는 실은 나와 별 다를 것이 없어보인다. 거의 10년 가까이 차이가 나지만, 이 시대의 젊은이라는 점은 같기에, 고민하는 점도 비슷한 것 같다.

어른들은 우리들의 걱정이 풍요로운 사치라고들 한다. 현재 기성세대 어른들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80-90년대의 눈부신 경제발전, IMF위기까지 모두 겪어내신 단단한 분들이다. 그런 분들에게 우리들의 고민은 실로 사치로운 것으로 보일수도 있을 것이다. 공감한다.

그러나 그렇게 대단한 세대의 다음 세대로 우리의 고민은 사치라고 일컬어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속 시원하게 고민한번 이야기 제대로 해본적은 없다. 그래서 속으로 곪아가는 것 같다.

세상은 다원화 되고 있고, 경제성장! 내집마련! 이런 식의 단순한 구호보다는 무언가 다채로운 구호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 있다


라는 드라마 속 대사처럼, 이런 세상에 행복한 결말이 있기를, 불안한 우리들이 단단해지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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