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서 도토리묵을 쑤어 주셨다. 도토리묵을 즐겨 먹지는 않지만, 집에서 만든 묵은 쫀득하면서도 맛있고, 작은 아이도 제법 잘 먹으니 묵으로 무침을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청포묵무침을 자주 했었고, 아이들이 그 부드러운 식감을 좋아하니 더 자주 만들고, 자주 만들다 보니 꽤 먹을만하게 무쳤던 기억이 있다(데쳐서 말갛게 투명해진 청포묵에 김과 참기름, 간장을 넣고 무친다음 깨만 뿌려도 맛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청포묵이든 도토리묵이든 부드러운 식재료를 굳이 찾아서 사용하지 않았다. 오늘은 묵보다, 묵무침에 추가하는 채소가 좋아서 채소를 있는 대로 넣고 묵을 무쳤다.
묵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집에 무슨 잎채소가 있나 보았더니 다행히 포기양상추가 한 봉지 있었다. 청경채와 양배추, 알배기배추도 있지만, 식감이 가장 부드러운 포기양상추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만일 포기양상추가 없었다면, 알배기배추를 사용했을 것이다. 포기양상추는 물에 잠깐 담가두었다가 헹구어서 물기를 뺀 다음 적당한 크기로 뚝뚝 찢었다(깻잎을 넣으면 향미가 좋은데 이번에는 미처 준비를 못했다). 그리고 마침 냉장고에 있던 양파오이무침도 꺼내고 꽈리고추가 있어서 꽈리고추도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아삭이고추나 풋고추, 청양고추 중에 아무거나 구미에 맞게 사용하면 된다. 재료 준비는 다 되었다. 묵과 양상추, 양파오이무침, 꽈리고추에 간장과 생들기름만 추가해서 무쳤다. 원래는 고춧가루와 설탕도 좀 넣었겠지만 양파오이무침에 양념이 이미 들었으니 간단하게 무쳤다. 위에 통깨를 뿌리면 도토리묵무침 완성이다.
묵무침은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 매우 간단하고 쉬운 음식이지만 채소를 갖가지 손질하고 조심스럽게 무치다 보면 웬만한 고기 요리만큼이나 공이 든다. 그리고 맛도 웬만한 요리 못지않다. 이번 도토리묵무침은 간이 좀 삼삼했지만, 아삭아삭한 채소의 맛이 좋았다.
자연식물식을 편안하게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이제 날짜를 세지는 않지만 지난여름에 시작했으니 거의 1년이 되어간다. 자연식물식 전부터 체질식으로 식이조절을 했으니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식이요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음식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자연식물식에서 벗어난 음식을 마구 먹는 일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자연식물식을 힘들여하지도 않는다. 편안하게 자연식물식 위주의 식단을 유지하되 상황에 따라 놓인 음식을 피하지 않고 맛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