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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미소리 Jul 03. 2024

쑥의 변신

어머니가 가져다 주신 쑥쌀가루가 냉동실에 지천으로 있다. 이사 계획이 있으니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틈틈이 먹어 치우고, 장을 봐서 냉장고를 가득 채우는 일은 자제하고 있다. 거의 매일 사던 촉촉한 식빵도 이제는 한 달에 한두 봉지나 살까 말까다. 밀가루 음식이 내 몸에 맞지 않다는 것을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게 된 이후로 빵은 최소한으로 사고 있다. 빵 대용품으로 떡은 좀 먹는 편이지만, 냉동실에 쑥쌀가루가 넉넉하다 못해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들어 있으니 떡집이 있어도 그냥 지나치고 만다. 냉동실의 식재료는 늘 그렇듯이 잠깐만 방치하면 금세 잊혀 시간이 지나고 결국 쓰레기통행이다. 그렇다고 식재료를 냉장실에 방치해 두면 보관 기간이 더 짧을 뿐이니, 식재료를 냉장고에 즐비하게 두는 것은 그저 부담스러울 뿐이다. 장 볼 때에만 뿌듯할 뿐, 냉장고에 음식물을 집어넣는 순간, 너무 많이 산 식재료에 후회가 밀려온다. 그러니 아직 기억에 있을 때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냉동실에 가득 찬 쑥쌀가루를 이용한 떡을 자주 만들어 먹고 있다. 어머니가 주신 쑥쌀가루를 큰 봉지에 여섯 개로 나누어 담아 두었는데, 부지런히 먹다 보니 이제 딱 한 봉지가 남았다. 여섯 봉지의 쑥쌀가루가 냉장고 서랍 한 칸을 가득 채웠을 때에는 심란하더니, 막상 한 봉지가 남은 것을 보니 시원섭섭하다. 처음에는 그렇게 굴지 않던 쌀가루가 한 봉지씩 해 먹다 보니 거의 다 소진이 되었다. 처음에는 무조건 개떡을 만들었다. 쑥떡 하면 개떡 아닌가? 사실 개떡 말고는 쑥쌀가루로 만들 줄 아는 떡이 없었다. 그래서 해동한 쑥쌀가루에 물을 소량만 넣고 치대다가 동글 납작하게 빚어서 찜통에 쪘다. 쑥개떡은 맛있다. 쫀득하고 쑥향이 가득한데다 간도 적당하고 참기름 향까지 고소하다. 그런데 쑥개떡은 이름만 개떡이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꽤 오래 치대야 쫀득한 맛이 좋고, 모양을 버리지 않으려면 찜기에 면포를 깔아서 물기가 떡에 떨어지거나 눌린 모양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사용한 면포는 쌀가루 없이 깨끗하게 빨아서 삶고 말려서 보관해야 하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해 보았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아닌가? 해동한 쑥쌀가루를 그냥 찜기에 올렸다. 아무런 모양도 잡지 않고, 심지어 면포도 사용하지 않았다. 20분 정도 센 불에 쪄낸 쑥쌀가루를 한 김 식혀서 참기름을 살짝 발라가며 동글납작하게 빚어서 식혔다. 그랬더니 영락없이 개떡이 되었다. 면포를 올려 찐 것이나, 찜기에 바로 쪄서 모양을 만든 것이나 맛의 차이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 방식으로 개떡을 여러 번 해 먹었다. 손쉬운 방법이라야 자꾸 만들게 되고, 부담스러운 과정이 있으면 아예 손이 안 간다. 몇 번을 찜기에 올려서 쑥쌀가루를 찌다 보니, 쪄낸 쑥쌀가루가 쑥설기로 보였다. 쑥설기를 모르는 게 아닌데도, 쪄낸 쌀가루는 개떡을 만들기 위한 과정 중에 생성된 것이지 쑥설기로는 보이지 않더니 어느 순간 쑥설기로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맛을 보니 영락없는 쑥설기다.



집에 팥빙수팥이 있어서, 쪄낸 쑥쌀가루를 동그랗게 빚어서 속에 단팥을 넣었다. 쑥떡의 쫀득한 맛과 단팥이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 이건 아이들도 잘 먹어서 몇 번을 만들었다.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쑥떡과 단팥의 조합은 콩떡이라, 여느 떡집에서 사 먹었던 떡보다 훨씬 맛있었다. 도리야끼가 생각나는 맛이다. 그리하여 냉동실 서랍 한 칸을 채우던 쑥과 쌀이 반반 섞여서 갈아진 쑥쌀가루는 화려한 변신을 마쳤다. 나는 가본 적도 없는 산속 깊은 곳에 지천으로 나와 있던 쑥이 개떡이 되었다가 쑥설기가 되고, 단팥떡으로까지 변신해서 여러 차례 우리 집 식탁에 올랐다.



쑥설기가 남으면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전자레인지에 일분 이내로 데워먹으면 된다. 물론 이것도 오래되면 버려지니, 쑥떡을 만든 다음 날, 간식을 따로 사지 말고 쑥떡을 꺼내어 먹는 것이 좋다. 몇 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쑥떡인데, 어머니는 하루를 온전히 들여서 산에 가고, 쑥을 캐고, 쑥을 손질하고 씻어서 찐 뒤에, 불린 쌀과 함께 들고 방앗간에 가서 쑥쌀가루를 내어 오셨을 거다. 그리고 나는 그 쑥쌀가루를 냉동실에 쟁여 두었다가 오래되기 전에 떡을 찐다. 쑥쌀가루가 냉동실에 있어서, 다른 간식을 사지 않고, 손수 만든 건강한 간식을 다양하게 먹었다. 그러니 냉동실 한 칸을 차지하고 부담스럽게 앉아 있던 쑥쌀가루는 그 존재만으로 불량한 간식을 사들이지 않고, 청정 쑥으로 만든 간식을 먹게 했는지도 모른다. 따뜻하게 찐 쑥설기를 가지고 어머니에게 간다.



* 표지 사진: UnsplashPyperA F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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