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41) 아빠의 반성문
미국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COVID-19에 대한 공포로 애틀랜타의 모든 학교 수업 역시 홈스쿨링으로 전환되었다. 아직 몇 주 밖에 안되었지만 학기가 종료될 때까지 두 달간 이어질 홈스쿨링에 조바심이 나는 것 같다. '~하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데에는 아직 손에 잡히지 않은 확실한 물증 뒤에 숨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어느 정도 신뢰할만한 증거가 보이는 만큼 좀 더 솔직해지자면 '조바심이 난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증거는 바로 아이에 대한 나의 잔소리다.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의 희로애락도 비례하여, 그리고 안타깝게도 잔소리도 그 결을 함께해 늘어가고 있다.
잔소리의 주제는 주로 아이의 영어다. 한국책 말고 영어책을 읽으라 하고 한국 유튜브를 보는 대신 영어 만화를, 하다못해 유튜브도 영어로 된 컨텐츠를 보라며 아이를 몰아붙였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고, 하기 싫은 일일수록 억지로라도 더 해야 실력이 느는 것이라고. 정 싫으면 지금이라도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자 다그치기도 했다.
학교성적을 받아보면 수업은 곧잘 쫓아가는 듯하고 숙제도 혼자 힘으로 어렵지 않게 해왔지만 몇 주째 집에 덩그러니 갇혀 있으니 갑자기 흐름이 끊긴 듯한 불안함이 밀려왔다. 해석이 안 되면 혼자 사전을 찾아가며 어떻게든 뜻을 이해해 보라며, 힘들어하는 아이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함께 걷지는 못할 망정 왜 뛰지를 못하냐며 채근하는 꼴이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스트레스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말았다. 담임 선생님 및 학급 친구들과 온라인 미팅을 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는 비디오와 오디오를 모두 끈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 모습에 혹시라도 그동안의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이와는 달리 곧잘 얘기하는 다른 한국인 친구를 보자 불안함은 더욱 커졌다. 질문을 해보라,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사라도 해보라 해도 아이는 묵묵부답. 급기야 자신을 부르는 선생님의 말씀을 무시한 채 PC를 끄고는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당황한 나는 쫓아가 뒤늦게 아이를 달래려 해 봤지만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 학교에서 잘 지내지 않았냐고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더 물으면 아이가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도 그랬다. 미국에 처음 도착해 섬머 캠프에서 웅크리고 있던 아이를 보았을 때처럼 마음이 아파왔다.
휴직은 전적으로 나의 결정이었지만 그 중심에는 아이의 교육 문제가 깔려 있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를 희생하여 가족에 헌신하고 그 결과 아이의 영어가 좀 더 유창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 둘의 인과관계가 조금 모호하지만 그런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팬데믹이라는 무시무시한 상황 속에 학교 수업이 일시 중단되더니, 급기야 봄학기 전체를 온라인으로 전환한다는 결정이 내려지고 말았다.
방학을 제외하면 1년 중 약 8개월을 학교에서 보낼 텐데 그중 2개월 이상을 잃어버린 셈이니 잘 따라가던 학교 생활이 중단되어 버려 아이의 영어는 정체 혹은 퇴보해 버리는 게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면 지금 나는 미국에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왜 여기 있는 것일까. 나의 휴직 결정이 헛 일이 아니기를 바라며 조바심을 내었고 그것은 잔소리로 표출된 것이다. 방에 있는 아이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며,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왜 아이의 영어에 목을 매고 있을까. 내가 못해서, 더 잘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영어를 잘하는 친구가 부러워도 나는 그저 부러워만 했다. 몇 차례 해외생활로 영어 실력을 향상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게으른 나는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는 잘해주길 바랬나 보다.
왜 잘하는 일을 찾아주기보다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라 강요할까. 또다시 내가 못해서, 편한 길로만 걸음을 내딛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는 데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무언가 잘하려는 끈기가 부족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 역시 여태껏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살지는 살았다. 의지가 약한 나는 그렇지 못했지만, 아이는 잘해주길 바랬나 보다.
왜 아이가 유창한 영어로 말하기를 기대했을까. 마찬가지다. 내가 못해서, 벌벌 떠는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남들 앞에서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언제나 발표를 할 때면, 보고를 할 때면 내 목소리는 가늘게 떨려왔다. 소심한 나와는 달리, 아이는 잘해주길 바랬나 보다.
스스로 던진 질문의 끝에는 늘 나의 결핍이 웅크려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나는 나보다 한참이나 작은 내 아이가 그것을 넘어서기를, 내가 못한 일을 아이가 해주기를 바라던 것이다. 나를 닮은 아이에게 내 성격을 물려줘 놓고는 그것을 이겨내라 강요하다니. 스스로의 휴직 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길 바라며, 아이에게 결실을 맺으라 몰아붙인 셈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이는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살짝 내 눈치를 보는 모양새가, 역시나 한국 책을 읽고 있었다. 왜 아이를 주눅 들게, 눈치 보게 만들었을까. 한 번쯤 아이 앞에서 솔직해지고 싶었다.
"아빠가 어렸을 때 영어 잘하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어. 대부분 좋은 학원을 다녔거나, 외국에서 살다 왔더라고. 아빠는 부럽긴 한데, 그렇다고 지루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지는 않아서 매일매일 그냥 놀았어. 사실 아빠는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공부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거든.
또 아빠가 중학교 때는 성당에서 독서라는 것을 했는데, 그게 뭐냐면 단상 위에 올라가서 성서 구절을 읽는 봉사거든. 근데 그때 어땠는지 아니? 너무 떨어서 아빠 친구들이 아빠 그 위에서 우는 줄 알았대. 사실 아빠도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게 너무 힘들거든. 영어로 발표해본 건 대학교 때가 처음인데, 그때도 엄청 버벅대서 아마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을걸?
아빠가 호주에서 교환학생도 하고 미국에서 대학원도 다녀서 어느 정도 더듬더듬 말은 하지만, 사실 아빠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아니었어. 심심할 때는 빈둥거리며 만화책도 보고, 한국 영화도 다운받아서 봤거든. 영어는 잘 늘지를 않아 내팽개치고, 아빠도 그랬어. 영어 공부가 재미없어서.
그러니깐 사실 우리 딸한테 뭐라 잔소리할 자격은 없는 것 같아. 미안해 아빠가. 생각해 보니 아빠가 못한 일들만 죄다 우리 딸한테 잘 해내라고 윽박지른 것 같아서. 미안해 아빠가. 우리 딸이 갑자기 미국에 오고 나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하지 못해서..."
한참을 말하니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가 눈을 마주쳐 주었다. 다행이다.
아이가 방에서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