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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Apr 03. 2020

69. 홈스쿨링, 잔소리의 화살은 나를 향한다

(Week 41) 아빠의 반성문


미국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COVID-19에 대한 공포로 애틀랜타의 모든 학교 수업 역시 홈스쿨링으로 전환되었다. 아직 몇 주 밖에 안되었지만 학기가 종료될 때까지 두 달간 이어질 홈스쿨링에 조바심이 나는 것 같다. '~하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데에는 아직 손에 잡히지 않은 확실한 물증 뒤에 숨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어느 정도 신뢰할만한 증거가 보이는 만큼 좀 더 솔직해지자면 '조바심이 난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증거는 바로 아이에 대한 나의 잔소리다.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의 희로애락도 비례하여, 그리고 안타깝게도 잔소리도 그 결을 함께해 늘어가고 있다.




잔소리의 주제는 주로 아이의 영어다. 한국책 말고 영어책을 읽으라 하고 한국 유튜브를 보는 대신 영어 만화를, 하다못해 유튜브도 영어로 된 컨텐츠를 보라며 아이를 몰아붙였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고, 하기 싫은 일일수록 억지로라도 더 해야 실력이 느는 것이라고. 정 싫으면 지금이라도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자 다그치기도 했다.


학교성적을 받아보면 수업은 곧잘 쫓아가는 듯하고 숙제도 혼자 힘으로 어렵지 않게 해왔지만 몇 주째 집에 덩그러니 갇혀 있으니 갑자기 흐름이 끊긴 듯한 불안함이 밀려왔다. 해석이 안 되면 혼자 사전을 찾아가며 어떻게든 뜻을 이해해 보라며, 힘들어하는 아이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함께 걷지는 못할 망정 왜 뛰지를 못하냐며 채근하는 꼴이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스트레스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말았다. 담임 선생님 및 학급 친구들과 온라인 미팅을 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는 비디오와 오디오를 모두 끈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 모습에 혹시라도 그동안의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이와는 달리 곧잘 얘기하는 다른 한국인 친구를 보자 불안함은 더욱 커졌다. 질문을 해보라,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사라도 해보라 해도 아이는 묵묵부답. 급기야 자신을 부르는 선생님의 말씀을 무시한 채 PC를 끄고는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당황한 나는 쫓아가 뒤늦게 아이를 달래려 해 봤지만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 학교에서 잘 지내지 않았냐고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더 물으면 아이가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도 그랬다. 미국에 처음 도착해 섬머 캠프에서 웅크리고 있던 아이를 보았을 때처럼 마음이 아파왔다.






휴직은 전적으로 나의 결정이었지만 그 중심에는 아이의 교육 문제가 깔려 있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를 희생하여 가족에 헌신하고 그 결과 아이의 영어가 좀 더 유창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 둘의 인과관계가 조금 모호하지만 그런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팬데믹이라는 무시무시한 상황 속에 학교 수업이 일시 중단되더니, 급기야 봄학기 전체를 온라인으로 전환한다는 결정이 내려지고 말았다.


방학을 제외하면 1년 중 약 8개월을 학교에서 보낼 텐데 그중 2개월 이상을 잃어버린 셈이니 잘 따라가던 학교 생활이 중단되어 버려 아이의 영어는 정체 혹은 퇴보해 버리는 게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면 지금 나는 미국에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왜 여기 있는 것일까. 나의 휴직 결정이 헛 일이 아니기를 바라며 조바심을 내었고 그것은 잔소리로 표출된 것이다. 방에 있는 아이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며,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왜 아이의 영어에 목을 매고 있을까. 내가 못해서, 더 잘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영어를 잘하는 친구가 부러워도 나는 그저 부러워만 했다. 몇 차례 해외생활로 영어 실력을 향상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게으른 나는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는 잘해주길 바랬나 보다.


 잘하는 일을 찾아주기보다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라 강요할까. 또다시 내가 못해서, 편한 길로만 걸음을 내딛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무언가 잘하려는 끈기가 부족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역시 여태껏 하기 싫은  억지로 하고 살지는 살았다. 의지가 약한 나는 그렇지 못했지만, 아이는 잘해주길 바랬나 보다.


 아이가 유창 영어로 말하기를 기대했을까. 마찬가지다. 내가 못해서, 벌벌 떠는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남들 앞에서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언제나 발표를  때면, 보고를  때면  목소리는 가늘게 떨려왔다. 소심한 나와는 달리, 아이는 잘해주길 바랬나 보다.


스스로 던진 질문의 끝에는 늘 나의 결핍이 웅크려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나는 나보다 한참이나 작은 내 아이가 그것을 넘어서기를, 내가 못한 일을 아이가 해주기를 바라던 것이다. 나를 닮은 아이에게 내 성격을 물려줘 놓고는 그것을 이겨내라 강요하다니. 스스로의 휴직 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길 바라며, 아이에게 결실을 맺으라 몰아붙인 셈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이는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살짝 내 눈치를 보는 모양새가, 역시나 한국 책을 읽고 있었다. 왜 아이를 주눅 들게, 눈치 보게 만들었을까. 한 번쯤 아이 앞에서 솔직해지고 싶었다.


"아빠가 어렸을 때 영어 잘하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어. 대부분 좋은 학원을 다녔거나, 외국에서 살다 왔더라고. 아빠는 부럽긴 한데, 그렇다고 지루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지는 않아서 매일매일 그냥 놀았어. 사실 아빠는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공부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거든.

또 아빠가 중학교 때는 성당에서 독서라는 것을 했는데, 그게 뭐냐면 단상 위에 올라가서 성서 구절을 읽는 봉사거든. 근데 그때 어땠는지 아니? 너무 떨어서 아빠 친구들이 아빠 그 위에서 우는 줄 알았대. 사실 아빠도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게 너무 힘들거든. 영어로 발표해본 건 대학교 때가 처음인데, 그때도 엄청 버벅대서 아마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을걸?

아빠가 호주에서 교환학생도 하고 미국에서 대학원도 다녀서 어느 정도 더듬더듬 말은 하지만, 사실 아빠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아니었어. 심심할 때는 빈둥거리며 만화책도 보고, 한국 영화도 다운받아서 봤거든. 영어는 잘 늘지를 않아 내팽개치고, 아빠도 그랬어. 영어 공부가 재미없어서.

그러니깐 사실 우리 딸한테 뭐라 잔소리할 자격은 없는 것 같아. 미안해 아빠가. 생각해 보니 아빠가 못한 일들만 죄다 우리 딸한테 잘 해내라고 윽박지른 것 같아서. 미안해 아빠가. 우리 딸이 갑자기 미국에 오고 나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하지 못해서..."


한참을 말하니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가 눈을 마주쳐 주었다. 다행이다.


아이가 방에서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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