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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Apr 03. 2020

68. 내 안의 송곳 같은 나

(Week 41) 나는 모른다


하루는 뉴스를 틀자 누군가 마스크를 쓴 행인을 향해 바이러스를 옮기지 말라며, 총을 겨누는 위협을 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두려웠다. 보나 마나 동양인에 대한 혐오가 흑인의 소행일 것이라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등장한 자료화면 속 가해자는 백인 남성, 피해자는 흑인 부부로 드러났다. 직감은 틀렸고, 나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내 안의 송곳이 다시 한번 솟아올랐음을 느꼈다. 꼭꼭 감춰둔 그것이 또다시 그 날카로움을 드러내자 연약한 이성의 살갗은 또다시 갈가리 찢겨,


가해자는 두 명이 되었다.






처음 그 송곳을 발견한 것은 15년 전 무작정 떠난 유럽 배낭여행에서였다. 동경해온 멋진 도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꼭 한번 맛보고 싶은 음식이 있었던 것도, 경험해 보고 싶은 축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대학생활을 끝내기 전 남들 다 하는 여행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을 뿐이었다. 때문에 큰돈을 들여 유레일 패스를 구입했지만 딱히 가고 싶은 곳이 떠오르지 않아 그저 한 번 들어본 대도시, 관광명소 위주로 짜인 3주간의 무미건조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두리번거리다 책에서 본 사진의 배경이 등장하면 내 얼굴을 박아 넣는, 전형적인 목적 없이 바쁜 여행이었다. 큰 기대가 없었기에 차라리 그 돈을 아껴 서울에서 맛있는 음식이나 실컷 즐겼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합성으로 대체하고, 아니 그마저도 다시 찾아볼 일 없으니 불필요했을지 모르겠다. 당시 여행을 하던 내내 머릿속을 채운 것은 여행지에 대한 인상이나 감흥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르던 나를 마주하게 해 준 뜻밖의 소감이었다.


'어디를 가나 중국사람 참 많네'

그리고,

'그 사람들 참 더럽게 시끄럽네'


서유럽을 지나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해 이전보다 더욱 바쁘게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닐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저마다의 그룹을 구분하기 위해 가이드가 든 깃발을 쫓아 움직이는 중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큼직한 명품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입고 한 손에는 가방, 다른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든 시끄러운 관광객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 중 하나인 콜로세움에서는 그 정점을 찍었다. 웅장한 콜로세움의 외관을 둘러보고는 안으로 들어가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역시나 형형색색 화려한 옷을 입고는 깔깔거리며 사진을 찍는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었다. 잠시 숨을 돌린 뒤 차분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음에 짜증이 나 눈살을 찌푸렸다. 잠시 후 그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멀리서부터 신경이 쓰이던 유독 시끄러운 분들이었다. 보나 마나 영어가 아닌 중국어로, 사진 한 장 찍어달라 부탁할 것이라 직감하였다. 동양인을 보면 일단 중국어로 말을 붙이고 보는 오만한 사람들이니.


"저기 학생, 한국사람 맞지? 미안한데 우리 사진 한 장만 찍어줄 수 있어?"


화들짝 놀라 얼굴이 닳아 올랐다.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를 쓰고 계셨지만, 어느 무리보다 화려하고 시끄러운 그분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한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 분들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국적을 알 수 없는 다수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이 하얀 그들은 대부분 상기된 기분으로 가족 혹은 친구들과 깔깔대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시선을 돌리자 중국인 무리도 보였다. 일부는 큰 소리로 떠들었고, 일부는 조용히 경치를 감상 중이었다. 나의 구분은 어딘가 잘못되었다.


스물다섯, 첫 배낭여행을 떠난 지 고작 보름 만에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단 나는 되레 편협한 색안경을 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짧은 경험으로 누군가를 모욕했고, 너무도 당당했고, 그럼에도 반성하는 법이 없었다. 말하지 않은 생각도 잘못이 될 수 있음을 나는 몰랐다.


유럽 여행의 첫 소감은 내 안의 모르던 나를,

그런 송곳 같은 나를 마주한 것이었다.




몇 주 전부터 팬데믹의 공포로 메뚜기떼 같은 사재기 열풍이 미국 사회를 뒤덮기 시작하자 내 안의 송곳은 또다시 나를 뚫고 나왔다.


'사재기라니, 잘난 체하던 미국인, 유럽인도 별 수 없구먼. 이건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지. 미개한 사람들 같으니, 한국인을 좀 보라고... 마스크도 안 쓰고, 조심하라는 말도 듣지 않더니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그로부터 얼마 후, 미국 소비의 상징과도 같은 대형 마트들은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문제의 휴지와 손소독제, 마스크는 아직 넉넉지는 않아도 조금 부지런히 움직이면 구하는 게 가능해졌고, 빵과 고기 등 식료품 매대에도 차곡차곡 물건들이 들어섰다.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캠페인 역시 빠른 속도로 자리 잡아 매장 내 사람 수를 제한하는 곳도 생겨났고, 그로 인해 줄을 설 때에도 6피트 원칙을 준수하는 데 질서 정연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반가운 곳은 꽃을 파는 코너다. 몇 주 전 텅 빈 식료품 매대와는 대조적으로 팔리지 않은 꽃들은 빼곡하게 모여앉아 처연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면, 지금은 꽉꽉 채워진 식료품과는 달리 꽃 매대는 곳곳이 비어져 가고 있다. 1차적 욕구의 결핍 가능성이 불러일으킨 대 혼란이 어느 정도 수습되고는 본래의 안정된 삶의 궤도에 재진입한 미국인의 모습은 이동 금지령으로 자가격리 중인 이탈리아인이 발코니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마찬가지로 희망을 보여주기 충분하였다.



'역시 미국인들. 저력이 있어. 이겨낼 거야...'


어느 나라 사람들의 특성이 단 몇 주 만에 극적으로 변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거나, 내 안의 보기 흉한 송곳이 또다시 튀어나왔었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데 요즘 이런 송곳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이 흔히 보인다. 그러면서 동양인 차별 운운하는 건 당연한 자기 방어 본능인지, 혹은 뻔뻔한 모순인지.






미국인이 어쩌고, 중국인이 저쩌고...


아닌 척 해도 어느 순간엔가 내 안의 편견이 송곳 같은 표정을 드러낸다. 그러면 안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도 잊을만하면 살을 찢고 나온다. 반성하는 척하다가도 뉴스에서 범죄 관련 소식을 접할 때면, 도로에서 부주의한 운전자를 지나칠 때면, 마트에서 양보를 모르는 누군가를 마주할 때면 속으로는 또다시 피부색을 지레짐작하지만 맞으면 혀를 차고, 아니면 말고다.


어디선가 묵직한 망치가 날아와 내 안의 송곳 같은 나를 꾹꾹 눌러주고, 그도 안되면 정신 차리라고 머리라도 한 대 후려쳐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해자가 되느니 차라리 피해자로 남고 싶다. 평균을 모르고, 편차를 모른다. 내가 어디 있는지, 그 혹은 그녀는 과연 어디쯤 있는지,


나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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