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45) 작가의 사정
그러니깐 제 말은, 고작 후라이팬 하나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딱히 다른 무언가를 얘기하기도 그렇고 해서 자꾸 후라이팬, 후라이팬 하는 거지요. 무슨 말이고 하니, 아시다시피 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집에서도 쓰고, 밖에서도 쓰고, 종이에다가도 쓰고, 컴퓨터에다가도 쓰고. 쓰긴 쓰지만 잘 지우진 않습니다. 지우고 싶은 글도 결국 제가 쓴 글이니, 나중에라도 보게 되면 저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거든요. 아무튼 이것저것 씁니다.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로 씁니다.
전 글을 쓰는 사람이라 시간이 많은 편이죠. 글을 쓰려면 항상 뭔가 생각을 해야 하고, 그러면 시간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어떨 때는 글을 쓰지 않고 있기도 하니깐, 보기에 따라선 시간이 많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요, 시간이 많다 칩시다. 그래서 제가 집안일이나 애 뒷바라지를 도맡아 하고 있는 거고요. 다 하는 건 아니고 거의 다 합니다. 말하자면, 독박육아라나. 뭐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나쁜 뜻은 없습니다. 다들 그렇게 말하고들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깐 시간이 많고, 그래서 애를 보고 아침에 도시락을 싼다 이 말입니다. 눈을 뜨면 커튼을 걷어 내고 찬 공기를 맡으며 새소리에 취해 에스프레소를 한잔 땡기는게 아니라, 아니 작가는 왠지 그럴 것 같잖아요? 하지만 실상은 눈을 뜨자마자 정신없이 도시락을 싸야 한다 이 말입니다. 명색이 작가라는 사람이 하루를 서재에서도, 발코니에서도 아니고 주방에서 시작한단 말이죠. 아, 집에 서재는 없습니다. 작가라면 으레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얘기한 겁니다, 중요한 건 아니고요. 어쨌든 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그게 싫다는 건 아니고, 그냥 제 하루가 그렇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한 말 중에 가장 중요한 말이 뭔고 하니, 그래서 주방이 중요하다는 거지요. 주방이 더러우면 기분이 더러워지고, 기분이 더러워지면 생각도 더러워지고, 그러면 글도 더러워지지 않겠어요?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글이 곧 세계잖아요. 그래서 어떤 작가에게는 주방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이 말이고, 그래서 후라이팬 얘기가 나오지요, 드디어. 그놈의 후라이팬이.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고는 해도 저녁 설거지는 유일하게 제가 하지 않습니다. 저녁밥을 하거든요 제가. 같이 모일 시간이 저녁뿐이니 저녁은 최대한 성의껏 합니다. 찌개도 끓이고 고기나 생선도 굽죠. 그렇게 밥을 했으면 설거지는 좀 쉬어야 하지 않겠어요? 어디 쓰여 있진 않지만, 신성한 협약이자 불문율이죠, 말하자면. 그런데 그 사람이 설거지를 했다고 해서 보면, 꼭 후라이팬을 닦지 않는 겁니다. 후라이팬은 쓰고 안 닦으면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잖아요. 나중에 닦으려면 잔뜩 굳어서 잘 닦이지도 않고. 그래서 짜증을 좀 냈죠. 후라이팬 좀 닦으라고. 찜찜하더라고요, 기껏 수고한 사람한테 짜증을 내다니, 미안했죠. 그래서 처음엔 사과했습니다. 짜증을 내고, 사과하고. 사과를 하고 나니 또 찜찜하더라고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과를 한 것 같고. 그런데 짜증을 냈으니깐 사과는 해야죠. 그래서 짜증은 내면 안 돼요. 사과해야 하니깐요. 작가는 늘 글을 쓰는 사람이고, 그러니깐 늘 생각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별일 아닌데도 이랬다가 저랬다가 혼자 머릿속에서 궁시렁궁시렁 하는 게 바로 그 작가라는 작자들의 일입니다. 웃기는 건 저 혼자 흥분을 해대다가, 어느 순간 정점을 찍고 나면 사그라든다 이겁니다. 그러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별일 없이 또 잘 지냅니다. 생각해보면 작가라는 사람들, 다중인격자에요, 제 얼굴에 침 뱉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래 보인다는 겁니다.
아무튼 그러다가 또 어떤 날, 후라이팬이 가스레인지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겁니다. 보나 마나 더럽겠지요. 음식 만들 때 사용한 거라 더럽다고 하긴 좀 그렇지만, 가만 놔두면 곧 더러워진다는 뜻입니다, 제 말은. 그런데 제가 또 짜증을 내면 또다시 사과해야 할까 봐, 좋게 말했습니다. 후라이팬 그대로 있다고. 그랬더니 덜컥 짜증을 내는 겁니다. 그놈의 후라이팬 타령 도대체 몇 번 째냐고. 누가 봐도 두 번째인데, 그걸 모르고 물어보는 거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같이 짜증을 내면 싸움 날 거 같고, 그래서 가만히 있었죠. 사실 작가는 겁이 많습니다. 혼자 머릿속으로 오만 생각 다 하다 보면 가끔 무시무시한 생각도 하거든요. 생각하는 거 다 말하고 살면 완전 또라이 취급받을 거예요. 그래서 가만히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다 보니 뭔가 억울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좋게 얘기했지요. 후라이팬 좀 닦아 두라고. 그걸 해야 일이 끝난다고 말이죠. 그걸 안 하면 끝이라고. 우리나라 사람들 제일 큰 문제가 뭔지 아세요? 좋게 말하면 만만히 본다는 겁니다. 노가다판에서도 가만 보면 좋게 할 말도 욕을 섞어서 지랄 지랄하잖아요. 그게 좋게 말하면 도무지 들어 먹지를 않으니, 어쩔 수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누가. 결국 어떻게 되었겠어요? 또 짜증을 냈지요. 어쩔 수 없어요. 짜증 내면 싸움 나고, 싸움 나면 그 종 모양 그래프 한 바퀴 타고 또 혼자 이랬다 저랬다 하다가, 언젠가는 가라앉겠죠. 작가니깐 생각이 많잖아요. 이유야 어쨌든 간에 짜증내면 찜찜하고, 뭔가 잘못한 것 같고 그러다가 또 사그라들고. 그런데 두 번째는 주기가 좀 짧아지더라고요. 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내성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또 그렇게 어물쩍 넘어가게 되더랍니다. 그런데 이게 또 한 번 반복되니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한 바퀴 돌 때마다 조금씩 저의 세계가 파괴된다는 것을. 주기가 짧아진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 사실은 파괴되고 있었던 겁니다, 저라는 사람이.
세 번째 후라이팬을 봤을 때 전 완전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처음엔 짜증을 냈고, 두 번째 좋게 고분고분 말했지만 세 번째 아예 부탁을 해버렸습니다. 제발 후라이팬 좀 정리해 달라고, 제 세계가 무너질지 모른다고요. 그깟 후라이팬 하나에 무슨 소리냐고 콧방귀를 뀌길래 저는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지, 후라이팬 하나 때문에 사정사정했는데 그마저도 막혀버리니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심정이었습니다. 어디 가서 말할 수도 없는 거죠. 자존심이 상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은 없으니깐요. 세계가 무너지고, 자존심도 잃어버린 작가를 상상해 보셨나요? 그에게서 어떤 한 줄의 글이라도 나올 수 있을까요?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은 오히려 저인데 사과를 받기는커녕 파괴되었죠. 그렇다고 사과를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그만큼 굴욕적인 일은 없거든요. 그건 완전히 무너졌다는 증거예요. 그래서 저는 더는 글을 쓸 수가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말로 떠벌리고 다닐 뿐이죠. 그런데 무슨 말을 할까 하니 딱히 할 말도 없고 해서, 이렇게 후라이팬 얘기나 하게 된 겁니다. 안 그래도 작가는 상상력이 풍부하다, 망상 속에 사는 사람이다 소리를 듣는데 후라이팬이 제 세계를 파괴하고, 심지어 자존심마저 건드린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겠습니까?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하겠죠. 그래서 생각해 낸 말이란 게, 고작 이런 겁니다.
이거 사실, 소설이에요 소설
이렇게 말하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지더라고요. 따지고 보면 소설이라는 게 허구라고는 해도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게 어디 있겠습니까. 다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 아니면 자신이 겪은 일에 약간의 상상력을 보태 포장하는 거겠죠. 그러다보면 소설이 되는 게 아니겠어요? 반쯤 돌아버릴 지경이었는데, 막상 소설이라 선언해 버리니 그나마 좀 살겠더라고요. 아무튼 그래서, 그날부로 전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근데 막상 소설가가 되고 나니 무슨 얘기를 또 해야 하나, 생각해보니 그게 또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자꾸 후라이팬 얘기를 하는 겁니다. 결국 눈앞에 남아있는 건 후라이팬이니 그걸 들고 거울이나 보는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