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r Gray May 08. 2020

74. 내가 임원이 될 상인가?

(Week 46) 두 번째 첫 출근


한 때 TV만 틀면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영되던 시절이 있었다. 시즌당 적게는 수만 명, 많게는 수백만 명이 참가하는데도 새로운 시즌이 시작될 때면 어디선가 또 다른 실력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니, 이 좁은 땅덩어리에 재능 있는 사람이 참 많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음악성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이 없는 시청자의 관점에선 과연 그래 보였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생각은 좀 달랐던 것 같다. 어떤 참가자는 어렵지 않아 보이는 몇 구절만 소화하고도 이미 합격의 눈빛을 받은 반면, 어떤 참가자는 난이도가 높아 보이는 고음부까지 무리 없이 소화했지만 불합격 판정을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리고 그런 경우 심사평은 대개 실력은 있지만 개성이 없다, 즉 본인만의 색깔이 없다는 식이었지만 전문가만이 식별할 수 있는 진짜 재능이라는 게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평가 기준에 공감하지 못하다 보니 온전히 즐기기가 어려워졌고, 한 명의 승자보다는 수많은 패자의 표정에 더욱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좌절은 무엇에서 비롯되었을까? 노력이 부족해서였을까, 재능이 부족해서였을까?


세상이 원하는 승자는 재능 없이 그저 노력만 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그런 깨달음이 나를 아프게 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몇 가지 사실에 놀랐는데, 그중 하나는 '세상에 똑똑한 사람이 참 많구나'였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 일을 그렇게까지 열심히는 하지 않는 사람이 참 많구나'였다. 사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서울의 이름 있는 대학을 졸업한, 소위 엘리트라는 호칭을 들으며 살아왔을 터인데 그들 중 일부는 탁월한 능력에 노력까지 더했지만, 그 외의 상당수는 그저 적당한 선까지만 일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스스로 정해놓은 한계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대놓고 놀지는 않더라도(만약 그랬으면 회사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므로) 그저 욕먹지 않을 정도로만 일하고, 출근의 목표가 퇴근인 것처럼 살아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긴 고민 끝에 한 가지 질문이 화두로 떠올랐다.


내가... 임원이 될 상인가?


학창 시절엔 대부분 상위 1%에 속했을 사람들이지만, 그 1%만 추려놓은 집단에서 다시 1%가 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기업의 별이라는 임원. 가장 빛나는 위치지만 모두가 도달할 수 없는 위치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뉘는 것은 아마도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본 데 따른 결과일 것이라 생각했다.


임원이 되신, 혹은 그에 근접하신 분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로열티, 학력,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운 외에도 두 가지 눈에 띄는 자질이 발견되었다. 대체로 비상할 정도로 두뇌 회전이 빠르다거나 혀를 내두를 정도로 사람 관리에 철저한, 즉 일과 사람을 다루는 재능이 있는 분들이었다. 둘 중 하나라도 탁월한 경우 대개 임원의 자리에 오를 후보로 언급되며 만약 둘 다 탁월하다면 고위급 임원의 자리를 향해 승승장구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속한 분들은 마치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듯 회사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 그룹 안에서의 경쟁 또한 매우 치열하기 때문이다. 워라밸(Work Life Balance)의 무게중심이 '워(Work)'에 있는 분들이다.


반면 학창 시절부터 영재 소리를 듣기보다는 그저 노력형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내려놓았거나, 인적 네트워킹 형성은 등한시한 채 마이웨이를 걸어가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대체로 일찌감치 임원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회사에 헌신할 생각이 크게 없어 보이는 분들로, 무게중심은 '라(Life)'에 맞춰져 있다. 나 역시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니 안타깝게도 이 그룹에 속한다는 판단이 섰다. 재능보다는 노력에, 요샛말로 인싸보다는 아싸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 하에 직장생활에 임하는 것이 꼭 나쁘지 만은 않았다. 일단은 몸이 편하다. 죽어라 치열하게 고민하는 대신 적당히 납기만 맞추면 되고, 한발 더 나아가 생각하는 대신 주어진 일을 욕먹지 않을 정도로만 해내면 된다. 몸이 편한 대신 마음이 불편해질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해결방법이 있다. 바로 현재에 충실한다는 카르페디엠 계열의 정신승리법이다. 가능성이 낮은 미래 임원 자리를 향해 이십여 년간 오늘의 삶을 포기하는 대신 오늘의 삶에 충실한다는 마음가짐이다. 회사에 몸 바쳐 내 한 몸 다 바쳤음에도 변변한 기회 한번 받지 못했다는 좌절감에 휩싸일 필요도 없다. 오디션에 참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단지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씁쓸하게 퇴장한 수많은 참가자들처럼 말이다.


임원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승산 있는 확률에 베팅하자 오늘의 삶이 한결 편해졌다. 마법 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는 않던 분들도, 알고 보니 다 생각이 있는 분들이었다.




무척이나 초연해 보이는 이런 삶의 자세로 직장생활을 한 지 어느덧 십 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지난해 고민 끝에 내린 휴직 결정도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막상 휴직 기간 중 지나치게 많아진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회사 생활을 돌이켜보니 생각의 균열과 함께 새로운 고민이 밀려온다. 엄밀히 말하면 걱정거리들이다.


혹시 내 판단이 틀렸을 가능성은 없을까? 알고 보면 재능은 모두 엇비슷하고, 노력의 차이로 결과가 판가름 나는 것이었다면? 나는 그저 편하게, 적당히 살아가기 위한 그럴싸한 이유를 찾은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훗날 회사를 그만두게 될 즈음 지난날들을 후회하진 않을까? 내 동기, 혹은 후배가 먼저 임원이 되는 모습에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을까? 재능의 차이를 인정한 채, 내가 추구했던 삶의 가치를 여전히 높이 평가한 채 내 모습을 낮은 자세로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적당히 살았던 지난날들을, 휴직으로 중단했던 경력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의 방향이 아주 살짝 틀어졌을 뿐인데 그 파급효과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커져만 간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타고난 재능보다는 꾸준한 노력으로 임원의 자리까지 오른 분들. 몇 분 떠오른다. 그분들의 얼굴이 선명해지더니, 얼마 후면 두 번째 첫 출근을 맞이할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실 것만 같다.



오디션에 탈락한 분들...
안타깝긴 한데,
혹시 노력이 부족했던 건 아니었을까?



악마의 유혹이라도 좋다.

끝은 시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73. 소설이 되어버린 에세이를 아시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