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은 출근길 아침, 그러니깐 오전 7시 50분경 9호선 신논현역에서 하차해 첫 번째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가방을 뒤진다. 출근길 루틴을 위한 무선 이어폰. 강남역까지 걸어가는 15분간 노래를 듣기 위해서이다. 강남대로를 걸으면 10분이면 족하지만 일부러 뱅, 하고 돌고 돌아 회사를 향한다. 절반 정도는 운동삼아, 절반 정도는 노래를 한 곡이라도 더 듣고자.
개찰구를 통과해 두 번째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노래를 선곡한다. 마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처럼 누군가 추천 목록 상위 최근 들은 노래들을 띄워놓지만, 지기 싫어 자꾸만 다음 노래, 다음 노래를 넘겨봐도 결국은 맨날 듣는 그 노래들. 에스컬레이터 옆에는 계단이 있지만 걷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나와 같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계단은 한 번에 출구까지 닿지 않는다. 열개 정도 오른 뒤 잠시 숨을 고르라는 듯 평평한 공간이 나타나고, 또다시 열개 정도의 계단이 이어진다. 에스컬레이터에 기댄 채 세상으로 나아가려는데 사람이 없는 그 계단의 중간에 사람의 다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다리의 끝에서 낡은 신발, 그리고 그 끝엔 훤히 드러난 뒤꿈치가 눈에 띈다. 얼마나 오래 신었는지 조금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해진 신발을 뚫고 나와 말 그대로 훤히 드러난 뒤꿈치다. 양말은 신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가 위로 오를수록 점차 그분의 전신이 보일락, 말락 해진다.
취객인가, 노숙자인가, 술 취한 노숙자인가.
쓰러지신 걸까, 119에 전화해야 할까, 모른 체 지나쳐도 될까.
가던 길 마저 갈지, 가서 부축해드리곤 정신이 들도록 말을 건네어야 할지 갈팡질팡 못하던 내 시야로 한 장의 신문지가 눈에 들어왔다. 별거 아니다. 그냥 신문지다. 지하철역 앞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그냥 그런 저런 신문지 한 장. 그분은 신문지를 깔고 엎드러 있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쓰러진 게 아니라, 자신만의 사적 공간에서, 편히 쉬고 있는,
노숙자였다.
걱정이, 초조함이, 측은지심이, 그리고 결국은 뜻 모를 거짓된 선의가, 바닥에 깔린 신문지 한 장에, 안도감으로 돌변해, 마음 편히 가던 길을, 선한 사람들의 전쟁터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는 또 걸어간다.
노래를 흥얼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