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하게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한 회를 시청하고는 이게 언제 적 드라마더라, 궁금해 찾아보니 2002년이란다.
2002년.
월드컵, 군대. 꽤나 생생한데 20년 전 일이다. 가끔 오래된 영상 속 2002년 월드컵 당시의 장면들, 포효하는 홍명보 선수와 해설하는 신문선 씨의 목소리가 들리면 더더욱 생생해진다. 그때의 나, 당시 세상의 질감이.
금기어인 라떼를 교묘히 피하고자, 저때 아빠가 군대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아이에게 말하면 호기심 어린 듯, 들어준다. 옛이야기 재미없는 듯, 더 깊은 질문은 하지 않는다. 난 더 말해줄 거리가 많은데.
초등학생 5학년인 딸아이의 나이로 돌아간다 치면 1992년이다. 딱 30살 차이. 그때의 나에게 누군가 20년 전 얘기를 해준다면, 1972년도의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하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호기심 어린 듯, 들어주다가도 옛이야기 재미없는 듯, 더 깊은 질문은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1972년. 저때 무슨 일이 있었더라.
나와 딱 30살 차이 나는 엄마도 종종 옛이야기를 신나게 해 주신다. 전에 해주셨던 이야기와 중복될 때가 꽤나 많지만, 늘 처음인 것처럼 신이 나게 해주신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에게는 내가 5학년 때 어떤 아이였는지 이야기해 주시고, 얼마 전 송도 신도시에 놀러 갔을 때에는 지금과는 딴판인 엄마의 기억 속 송도, 매립 전 송도유원지 시절을 이야기해 주신다. 너무도 생생해서 듣는 나는 그게 꼭 엊그제 일인 것 같지만, 둘러보면 유원지는 없고 대신 매립지 위로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다.
30년 뒤 내가 느낄 시간의 질감 또한 지금은 사라진 송도유원지와 같지 않을까. 아무튼 흐르고는 있는 것 같은 시간, 어딘가 숨어 있다가는 종종 나를 놀라게 해 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