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0일, 열다섯 번째 도시
취리히에 도착한 다음 날 방문한 상트 갈렌은 내게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기차역에서 매튜를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었고 같은 기차를 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서로 통하는 게 많았고 금세 편안함을 느꼈다. 다음날 마이엔펠트를 갈 거라는 내 말에, 매튜는 나만 괜찮다면 여행 가이드를 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선뜻 동의했고, 매튜는 마이엔펠트에서 피크닉도 하자며 각자 도시락을 싸오자는 계획까지 세웠다. 그렇게 소중한 인연이 시작되었다.
마이엔펠트는 ‘하이디 마을’이라고도 불리운다. ‘알프스 산의 소녀 하이디’ 동화의 배경이 된 곳인데, 그래서인지 넓은 들판과 염소, 파아란 하늘이 내가 상상해온 모습 그대로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대목이 있다. 할아버지의 집을 방문한 첫날, 하이디는 염소젖과 치즈, 빵을 저녁으로 먹고 짚 베개에 머리를 뉘어 잠을 청한다. 잠들기 전 하이디를 설레게 한 것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었다.
어릴 적 이 장면을 읽으면서 하이디가 느꼈을 설렘을 함께 느꼈다.
매튜 덕분에 나는 이날 유럽에서의 최고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매튜는 나를 위해 많은 것들을 준비했다. 딸기 타르트와 레모네이드를 준비해왔고 하이디 마을의 티켓까지 끊어주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덕분에 스위스의 정치, 종교에 대해 알 수 있었고 매튜와 나는 꽤 잘 통하는 친구가 되었다.
마이엔펠트에서 하이킹을 한 뒤 매튜의 추천에 따라, 유람선을 타고 Rapperswill 이라는 곳을 갔다.
Rapperswill은 유럽 현지인들에게 더 많이 알려진 곳 같았다.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장소였다. 맑은 에메랄드빛 호수에 백조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매튜가 좋았던 이유는, 그가 나를 굉장히 조심스럽게 대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서구권 남성들은 자연스럽게(때로는 흑심을 품으며) 스킨십을 해왔지만, 매튜는 내게 절대 스킨십을 하지 않았다. 조금만 스쳐도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덕분에 나는 매튜와의 시간 그 자체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Rapperswill 에서 취리히까지 가는 유람선을 타는 것으로 완벽한 하루가 완성되었다. 그날의 즐거움과 감사함은 지금도 일기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