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만들어가는 시간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남기기로 마음 먹은 1일 차의 기록

by 빌리

어렸을 때를 돌아보면 나는 게임에 흥미를 참 붙이지 못했다.

지나친 승부욕 때문인지 누군가와 경쟁을 하는 것부터, 지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 싫었다. 어쩌면 싫증을 잘 내는 것도 한몫을 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하루 이틀 밤새며 하다가 접는 일이 많았다. 그나마 오래오래 하는 게임은 누군가와 경쟁을 하지 않는 게임인 타이쿤과 같은 게임을 즐겨했었다. 미션을 수행하면서, 돈을 벌고, 건물을 짓고, 마을 또는 도시의 규모를 확장하고. 지금 나이를 먹고도 간간히 핸드폰을 열어하는 게임도 이런 게임류다.


게임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아니면 잘 모르고 진학했던 대학교의 도시계획이란 전공 때문인지 여하튼 나는 지금 지방의 작은 도시, 작은 동네에서 마을을 만드는 일을 한다. 마을을 만든다는 일이 가능한 거야?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마을을 '만든다'라는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이미 마을은 구축되어 있으니까. 오히려 기존에 구성되어 있는 마을의 작은 요소들을 지금의 시대에 맞게 조금씩 개선, 발전을 시키고 재구성하는 일에 가깝다. 흔히들 '재생'이라고 불리는 일들이다.


비어진 공간에 새로운 기능을 넣어 공간의 쓸모를 찾고(HW), 사람들을 모이게 하여 협력, 협동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OS), 고령화되어 가는 동네에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고(SW), 동네를 기반으로 돈이 돌아갈 수 있도록 비즈니스를 하는 것(BM). 글로 보면 엄청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 상황과 역할의 경계를 넘나들며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사업인지, 활동인지 모를 일들을 펼쳐가고 있는 곳은 경남 거제도의 장승포라는 작은 바닷가 동네이다. 한때는 인구가 5만에 가까웠던 장승포시(市)에서 장승포동(洞)으로 행정구역이 축소된 이곳. 지금은 약 5천 명이 살아가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어촌식민기지로, 6.25 전쟁 때 흥남철수로 피란민을 포용했던 동네로, 장승포시로 크게 성장했던 곳으로, IMF때는 잘 나가던 조선업의 배후주거지로. 주민들이 돈이 넘쳐흘러 풍요롭고, 화려했던 과거를 잊지 못하는 그런 곳이다. 다들 대충 알겠지만 더 이상 이곳은 과거처럼 풍요롭지 못하다. 비어진 임대 나온 건물들도 많고, 1년 내내 사람이 있는 듯 없는 듯한 한적하다 휴가철이나 반짝하는 그런 곳. 장사가 안돼서 이른 저녁부터 가게 상점들의 문이 닫히는 곳.


이러한 동네에 최근 조선업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 2019년에 우리는 이주해 왔다. 그리고 어느덧 여기에서 7년 차를 맞이한다. 장승포에서의 1년이란 시간은 얼마나 짧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무언가를 했는데, 괄목할만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타이쿤 게임처럼 전체를 조망하며, 변화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에도 아주 천천히 천천히 아주 작은 변화가 이뤄져가고 있다. 이 과정들이 축적되어 간다면 우리가 바라는 '살고 싶은 동네'로 언젠가는 짠! 하고 바뀌어있을 것이라 믿는다.


근데 문제는 외부의 사람들은 이런 변화들이 한순간에 짠! 하고 나타난 것이라고 여긴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그래서 지 금부터 3년 뒤, 우리 팀이 장승포로 온 지 10년째를 기념하기 위한 과정의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10년 가까이 장승포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여하튼.) 어떤 고생을 했는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그럼에도 행복했던 날은 언제였는지, 어떤 일들이 동기부여가 되었는지, 고마운 이들이 누가 있었는지, 그래서 앞으로는 또 무엇을 더 해나가고 싶은 것인지 등등.


앞으로 얼마나 이 마음을 유지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3일에 1번씩 마음을 먹으면서, 남은 3년간 틈틈이 지난 7년과, 앞으로의 3년을 차곡차곡 기록해야겠다.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들어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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