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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Apr 17. 2024

길을 잃었다.


아침마다 엄마는 화투 점을 쳤다. 오늘의 운세가 어떤 지 아는 것은 엄마에게 꽤 중요한 일이었다. 그것은 오늘 일이 생길지, 조심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가늠하는 지표가 됐다. 엄마는 일정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학교를 가려고 집을 나서던 나를 불러 세웠다.


“우산 가지고 가!”

“일기예보에 비 온다고 했어?”

“일기예보는 믿을 게 못 돼.


‘우연히 맞았겠지’, 이런 날들이 늘어나면서 그것이 우연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올 것 같지 않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져 비가 오거나, 엄마 말을 무시하다 낭패를 당한 경험이 자꾸 생길수록 엄마 말에 대한 의심이 줄어들고 나도 모르게 그것을 믿지 않으면 불안해졌다.


엄마는 보살집도 다니고 점집에도 다녔다.  그녀는 과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나 눈에 보이는 일반적 현상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나 현실성에 더 관심이 많았고,  비과학적이라 여겨지는 미신이나  금기에 더 집착하고 믿는 듯했다.


엄마가 절 비슷한 곳을 다니기 시작한 때는 아버지가 밖으로 도신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엄마는 중매로 만났다고 했다. 부잣집 외동아들로 귀하게 자랐던 아버지의 준수한 외모와 세련된 매너에 반한 엄마는 단번에 결혼승낙했다.


아버지는 중국에서 물건을 수입해서 국내에 판매하는 무역업을 했는데 점포 몇 개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 경제 불으로 인해 아버지 사업도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매출이 급감했고 빚을 갚지 못해  결국 마지막 점포까지 정리했다. 살고 있던 집까지 경매에 넘어갔지만 어찌어찌해서 겨우 작은 집 하나 지게 됐다. 내가 막 중학교 입학할 때였다.


사업 실패로 실의에 빠지고 자존심이 무너진 아버지는 연락 없이 몇 날 며칠 집을 비웠다. 어쩌다 돌아오면 밤새도록 엄마와 다투었다. 그런 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예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


엄마가 보살 집을 드나들던 것도 그즈음이었다. 방과 후 돌아오면 오빠가 라면을 끓여주거나 내가 밥을 차려먹어야 했다. 엄마는 저녁 무렵 돌아왔는데 떡이나 과일 같은 거를 갖고 와서 우리에게 먹였다.


“이거 먹을 때 기도하고 먹어.”

“뭐라고 기도해?”

엄마는 오빠를 향해 말했다.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해!”


엄마가 창고에 넣어둔 아빠의 오래된 구두 한 짝을 현관 구석지에 놓아둔 것을 보았을 때 잠깐 이상하다 싶었지만 그대로 지나쳤다.  화장실 천장에 이상한 모양이 새겨진 플라스틱이 노끈 매달려 있는 걸 발견했을 때 예삿일이 아님을 눈치챘고,  침대 정리를 하다 배게 카버 밑에 삐져나온 부적을 봤을 땐 확실히 짚이는 게 있었다.


아버지가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붉은 천이 나부끼는 보살 집에서 알려준 대로 아버지의 구두를 현관 구석에 놓아두었고, 내가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팔이 부러진 이후로 화장실에 부적을 붙이거나 작은 통에 넣어 매달아 두었다. 오빠한테는 지갑 속에 종이 부적을 늘 넣고 다니게 했고, 베갯속에는 머리가 좋아진다는 부적을 넣어두었다.


엄마가 이모의 식당을 대신 맡아하게 된 뒤로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좋은 콩으로 메주를 쒀 만든 엄마의 맛깔난 된장찌개의 맛을 잊지 못해 오는 단골들이 많아졌고, 입소문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엄마는 하는 일이 잘 돼 수입이 많아진 것도, 오빠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 것도, 다 붉은 집 부적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나의 삶이 꼬였다 생각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힘들 때마다 엄마의 세고 투박한 손이 나를 이끌어주었다. 아팠을 때는 정성을 다해 간호해 주었고, 시험 때마다 몸에 좋다는 보약을 달여주었고, 비나 눈이 올 때 우산을 받쳐주었고, 길을 잃었을 땐 이정표 같은 엄마의 표식이 길을 인도했다.


고등학교 내내 가방 속에는 엄마가 준비한 다양한 부적들로 채워졌다. 성적이 모자랐던 나로서는 그나마 믿고 싶은 구석이었다. 결과적으로 좋은 대학은 못 갔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은 갈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부적의 효험은 증명된 셈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부터 엄마가 주는 부적은 제대로 듣질 않았다. 대학 내내 하는 일마다 헤맸고 대학을 졸업하자 어찌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했다. 취직도 시험도 떨어지기만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붉은 천이  있는 그곳에 직접 가보라 했다.


마을버스는 동네 입구에서 멈추었다. 언덕길은 차가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가파르고 좁았다. 동네는 눅눅한 기운이 감돌았다. 버스에서 내린 몇 명의 사람들이 언덕을 힘들게 오르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긴 회색 벽에 낮은 지붕이 얹힌, 작은 마당이 달린 집이었다. 벽돌담에 붙은 좁은 세로의 철문은 녹슬어 있었다. 문 옆 귀퉁이에 꽂힌 막대에는 붉은 천이 매달려 나부끼고 있었다.


엄마가 알려준 대로 찾아오긴 했지만, 붉은 천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멍해졌다. 여기가 어딘지, 나는 누구인지,  정신 차리려 애쓸수록 의식은 묵직한 자루가 돼 바닥모를 구렁으로 가라앉았다.


돌아서 길을 바라보았다. 내리막길은 좁고도 길게 펼쳐져 있었다. 구토가 날  정도로 어지러웠다.  쓸쓸하고 황량한 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허기가 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도저히 혼자서는 내려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까마득한 그 길은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다. 


길은 휘지고 구불구불하게 바뀌어 있었다. 심지어 길은 작고 어두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여러 길을 만들었다. 한없이 늘어나는 길은 거대한 미로의 숲으로 ,  나는 그곳에서 들어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한 채 우두커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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