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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한보라 Oct 24. 2024

막내의 손가락

나에겐 10살 차이가 나는 동생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태어난 동생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엄청난 어른이 되었었던 경험이 있다. 어른이 되었었다는 말이 과거형인 이유는, 진짜 어른이 된 건 아니고 어른의 탈을 쓴 채 제대로 크지 못한 어린이가 나이만 들었기 때문에. 나는 이제와 뒤늦게 어른이 되고 있는 중이라, 저 문장은 과거형이 맞다.


4살 차이 나는 동생에게도 나는 이미 의젓한 언니로 지내고 있긴 했는데, 10살 차이 나는 동생에게 나는 거의 엄마였다. 그러한 책임감을 갖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엄마는 막내를 낳고 (아마도) 산후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고, 또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일을 하셔서 우리 셋만 집에 있는 날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엄마는 '계속 이렇게 하면 엄마 여기 베란다 창문으로 뛰어내려 죽어버린다'라고 했었고(우리는 12층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엄마가 언젠가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 엄마는 자연스레 내가 되겠지,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아래 동생은 초등학교 입학했으니깐 그래도 먹고 자고 말도 하고, 친구도 있으니깐 어떻게든 살아남겠는데, 막내는 맨날 울거나 놀다가 토하기나 하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니깐 아무래도 더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막내는 정말로 너무나도 귀엽고 예쁜 아기였다. 그래서 나는 자의로 타의로 그 애를 업고, 분유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티비로 만화 틀어주고 같이 보면서 키웠다. 어느 날 과거 앨범을 정리하다가 막내를 업은 채 서서 손에 책을 들고 공부하고 있는 사진을 발견해서 놀랐다. 일상이었나 보다 싶다. 


막내는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3-4살이 되어서도 맨날 손을 물고 빨고 손톱 밑 거스러미를 이빨로 뜯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애도, 뭔가 마음이 허전하고 힘들어 그런 것이었겠지만, 어른인 척하는 어린이인 내가 그런 것을 알리는 없었다. 그저 손은 더럽고 병균이 많아서 빨면 얘는 또 코 흘리는 감기나 걸릴 텐데, 이빨로 뜯은 손톱 밑은 자꾸 상처가 생기니깐 하지 말라 해도 계속하는 걔가 너무 걱정이 됐었다. 어떻게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그냥 손이 입으로 가는 걸 발견할 때마다 손을 입에서 떼내고, 하지 말라고 얼르고 타이르고 혼내곤 했었다. 


그런 막내를 두고 여름에 잠시 동안 고모가 살던 외국으로 바로 아래 동생과 한 달 동안 다녀왔을 때였다. 학구열이 엄청났던 엄마는 영어공부를 하라고 우리 둘을 그곳에 보냈고, 고모 집에서 또래 사촌들과 지내며 즐겁게 어학원을 다녔었다.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잘 놀았던 기억뿐이다. 그 시간 동안 막내가 보고 싶었었나, 아니면 은근히 별로 안 보고 싶었었나 솔직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그 한 달을 보내고 다시 집에 돌아와 공항에 마중 나온 엄마와 막내를 봤던 그 순간만큼은 선명하게 기억이 남는다. 


귀여운 막내는 손을 뻗은 채 조막만 한 다리로 도도도 달려와 "누나~~~"하며 안기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 애를 안기도 전에 부르트고 새빨갛게 수포가 생기고 난리가 난 그 애의 열 손가락이 보였다. 원래는 반갑게 안아주려고 했는데, 멀리서 봤을 때도 너무 반가워서 두 팔 벌려 다가가고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는 웃지도 못하고 심각한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한테 얘 손 왜 이러냐고 물어봤을 때 상처가 심한데 계속 물고 뜯어서 감염이 되어서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했다. 


정보를 전달하는 엄마의 말투가 지금 내가 느끼는 속상함과 안타까움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무미건조한 어투여서 어이가 없었다. 순간 마음속에 화가 치밀어 올라 '엄마는 대체 뭘 하길래 내가 없다고 애 손을 이렇게 만들어놔' 하는 나쁜 마음과 말이 입 끝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동생은 내가 화를 낼 것 같았는지 이미 쫄아 있었기에 화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어린애가 뭘 알겠는가, 이 지경이 되도록 옆에 있어주지 못한 게 미안해서 속상했고, 엄마한테는 화가 났지만 아무 말도 못 한 체 그 애 손이나 계속 요리조리 뒤집어가며 살펴봤다.


엄마보다도 내가 더 이 아이의 엄마 같다고 생각했다. 즐거웠던 여름과 이 작은 손가락들의 끔찍한 상태를 맞교환한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게 그 해 여름, 이전보다 좀 더 표면적으로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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