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무례한 사람은 너무 싫다
한 주가 너무 길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줄 알았더니, 점심시간에 팀장님도 앞에 앉으셔서 '이번 한 주가 왜 이렇게 길지' 하셨다.
때로는 절대적인 일의 양보다 업무를 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조정하는 일이 가장 힘듦을 느낀다. 나의 말투 하나, 표현 하나가 예민하게 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공해처럼 들릴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쪽에서 최선을 다해 전했다면 그것을 잘못 받아들이는 것은 그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며칠 전에는 자료 제출을 요청드리는 말에 자신의 감정을 쏟아붓는 다른 팀장의 얘기를 듣고, 죄송하다고 사과도 드리고 시정하겠다고 하는데도 멈추질 않고 같은 말을 3번 이상 하길래 "다시 한번 그럴 의도가 아니었음을 말씀드리고, 다시 그런 일이 있지 않을 테니 이제 그만 말씀해 주세요" 했다. 나보다 어리거나 나이가 비슷한 친구도 아니고 윗사람에게 정중하게 닥치라고 말한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말한 이후에 후회되거나 떨리지도 않고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게 되지도 않아서 신기했다.
이미 여러 번 여러 명의 사람들과 같은 내용으로 커뮤니케이션한 결과, 나의 전달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못 받아들인 그 팀장이 감정적으로 많이 지쳐있고 힘든 상태고, 어딘가에는 그것을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인 것은 알겠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그건 그의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니고, 그의 기분 때문에 나까지 기분이 나빠질 필요는 없었기에 그만하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대화의 직후 그 팀장은 결국 우리 팀장에게 미팅을 요청했다. 그러나 우리 팀장님이 그 팀장을 만나러 다녀오겠다고 말할 때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 팀장님과 어느 정도의 시간 함께 했기에 내가 크게 무례하지 않았을 것을 팀장님도 아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팀장님께 나는 이러한 자료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요청을 드렸고, 그분은 나에게 이렇게 화를 냈다고 최대한 감정 없이 팩트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화가 나서 잠시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하소연하고 위로받긴 했지만, 그 이후로 내 남은 하루에 큰 영향을 주지도 않았다. 그날 일기에 이 일을 쓰지도 않았다.
상처를 받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상처를 주는 사람은 없고 받는 사람만 있다는 말은 진짜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일까. 물론, 무례한 사람은 너무나도 싫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상처받지 않아 조금은 단단해진 스스로를 본다. 내 업무와 행동에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걸린 시간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 한 주는 피로하게 길었지만, 긴 한 주를 돌아보니 성장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