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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빌레 Nov 19. 2023

재택근무는 끝났다.

임원 회의 때 대표님이 재택근무제는 끝났다고 말씀하셨다.


정부가 코로나 19 엔데믹을 선언한 지 반년이 지났으므로 재택근무제가 곧 끝날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택근무제를 끝내는 이유가 회사의 글로벌 방침이라고 말씀하시면 될 것을, 마치 재택근무자들이 일을 안 한해서라는 뉘앙스로 말씀하셔서 놀라웠다.


그렇다면 억울한데. 그동안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의 하이브리드 근무형태를 지속해 왔다. 재택근무하면서도 9 to 6시 사무실에서 일하듯이 근무했다.

숫자로 증명하는 영업부서와는 달리, B2B 기업의 비용으로 취급되는 마케팅 부서인지라, 재택근무 중이지만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보여주려고 했다. 임원도 대표 눈치를 보기는 마찬가지이다.



물론, 요즘 들어 마케팅에서도 다양한 세분화 및 타깃 마케팅 활동을 통한 잠재고객/수요 발굴 (Lead/demand Generation)로 회사 매출의 기여도를 측정하려는 노력들이 있지만, 이것도 비용이 투입되는 디지털 활동, 캠페인 활동을 실행할 때이고, 비용도 캠페인이 기대하는 수준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최소한의 마케팅 비용이 투자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많은 시간과 노력만 투입이 되고 캠페인  효과는 미미하다.



나를 향한 말씀이 아닐지언정,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올해 들어 나 스스로 업무에 대한 동기부여가 안된 것도 사실이다.

올해 친정 엄마가 아프신 것을 비롯한 여러 상황들이 한꺼번에  몰아치고, 지난 몇 년간 나를 괴롭혔던 회사 업무에 대한 의욕 상실과 무기력증이 심화되었다. 결국은, 1달간 휴직을 했고, 복귀 후에도 회복이 잘 안 되고 있다.

번아웃 (Burn-out) 보다 보어아웃 (Bore-out)이 더 맞을까? 업무가 많아서라기보다는, 내가 이 회사에서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업무에 대한 의미 부여가 안되고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회사가 매해 성장하는 만큼 마케팅 부서도 인력 충원이 되고 업무도 확장되어야 하나, 그렇지 못했다. 지난 8년 동안 내 부서의 인력은 여전히 소수이고, 예산은 여전히 쥐꼬리만 하고, 나는 여전히 혼자서 사원부터 임원까지의 다양한 직급을 꺼내 쓰며 마케팅 업무를 기획하고 실행하고 있다. 마케팅 부서장으로서 회사의 규모만큼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업무들과 대표가 기대하는 업무 간의 간격은 여전히 크고 좁혀질 기미는 앞으로도 없어 보인다.


물론 처음 몇 년은 그동안 마케팅 활동이 없었던 회사에서 매체홍보/협업, 고객 행사, 마케팅 및 세일 자료, 홈페이지 등 이것저것 셋업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 이후 몇 년 동안에도, 마케팅이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대표님이셨지만, 나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들, 사업부에 도움이 될 만한 활동들을 고민하며 대표님을 설득하기 위해 애를 썼다.

설득되었는 가 싶다가도 막판에 취소되거나, 처음부터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하거나, 승인을 받아도 마케팅 투자 비용이 턱없이 부족해서 노력과 시간 대비 효과가 미미한 상황들이 계속되다 보니, 어느새 무기력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나의 커뮤니케이션 자질의 부족인가, 나의 능력의 부족인가, 나의 판단이 틀린 것인가 처음에는 의문도 많이 가졌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인다. 회사 대표가 싫다는데, 안 하겠다는데, 지금 수준이 적당하다는데, 부서장 혼자서 더 해보겠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만했고 큰 욕심이다. 일개 직원으로서 대표의 기대치와 지시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커리어 인생… 일이 재미없다고 생각되는 시점이 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이직을 했건만,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이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 지레 포기해 버린다.


‘하- 때려치워!?!?!?’

하다가도,


오늘도 나는 경제적 아쉬움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무대책으로, 편도 40km, 왕복 80km 거리의 회사로 출퇴근을 한다. 늦지 않기 위해 마음 졸이며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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