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겨울방학 때 인턴하던 곳에서 입사를 제안받게 되어 난 대학졸업과 동시에 회사라는 곳에서 일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엄마빠로부터 '용돈' 받는 삶에서 사장님으로부터 '월급' 받는 삶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여느 사회 초년생들과 다를 바 없이, 첫 3개월은 돈이라는 것을 쓸 줄을 모르니 월급이란 것이 꼬박꼬박 쌓였더랬다. 직장인으로서 유일했던 찰. 나. 의 기간이었지만...
100만 원 X 첫 3달 모아서 엄마한테 300만 원을 보내드렸고 엄마는 그 돈으로 신문에 난 여행사 광고를 보고 혼자 서유럽 10박 11일 패키지를 다녀오셨다. 엄마 주변에 월급으로 유럽여행 보내주는 효녀로 급부상했지만 효녀의 명성은 부끄럽지만 딱 그때까지다.
그 이후부터 결혼 전까지 난 "세상 모든 욕구의 화신"으로 쓰고 + 쓰고 + 써대느라 바빴다.
내 물욕 패턴은 '고메; 파인다이닝'으로 시작되었다.
그때 함께 어울렸던 씨스타들은 참으로 트렌드세터이자 미식가였는데 그녀들과 청담동, 압구정, 도산공원 등에 오픈하는 각종 프렌치, 이탈리안, 오마카세 등을 함께 섭렵했다. 셰프님들과 인사하고 서비스받는 사이가 될 정도로 자주 많이 다니다 보니 엥겔지수가 거의 월급과 또이또이 수준이 될 지경이었더랬다.
그다음은 '여행'
미식을 즐기는 그 씨스타들과 함께 우린 서울을 벗어나 글로벌 메트로폴리탄 시티들로 떠났다. 일본, 태국, 싱가포르 등을 거쳐 휴양까지 겸하기 위해 발리, 몰디브까지 놀러 다녔다. 무려 15년 전 몰디브 포시즌스 리조트에 싱글 여자 3명이 가서 놀고 오는 것은 진짜 흔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 스스로는 트렌드세터, 남들이 우릴 보면 돈지랄세상사치녀로 손꾸락질 했지만 높아진 카드값만큼 차곡차곡 높게 쌓인 마일리지로 비즈니스 클래스를 탐을 우리끼리는 현명한 합리적인 소비라고 셀프 칭찬하면서 즐거웠더랬다.
'슈즈 & 백'
신발과 가방이 등장하지 않으면 안 되지. K직장인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한섬의 vip가 되어 타임, 마인, 시스템 등 옷은 K브랜드를 입고 신발은 샤넬, 지미추, 마놀로블로닉, 지안비토로시, 미우미우 등 해외브랜드의 신상구두를 신고, 가방은 거의 5kg에 육박할 것 같은 마크제이콥스 스탐백을 시작으로 각종 명품 브랜드 신상백들을 사재끼고 들었다. 무쟈게 크고 무거운 백이 유행이었는데 어깨와 손목이 아팠지만 개의치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다음은 쥬얼리였고 그다음은 인테리어? 아무튼 당시 금융권에 근무했던 나는 치밀한 무이자 할부 플랜을 세워가며 때 되면 바뀌는 이 신상욕구들을 지속해서 반기며 치열한 소비를 맹렬히 이어나갔더랬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욕구가 어느 날 갑자기 제로에 수렴하게 된 믿을 수 없이 럭키한 시점에의 나를 만난 남편님은 내가 이 세상에 좋아하고,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것이 그닥 없는, 물욕 없는 여자인 줄 알고 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진짜 나도 그런 욕구 없는 여자로 DNA가 바뀌어버린 줄 착각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도 퇴근하는 길에 빤히 내 가여운 사주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지금은 '일'로서 성공해서 '한방의 부자가' 되고 싶은 야욕이 너무나 드글드글 가득 차서 다른 반짝이고 작고 아름다운 것, 여유로운 것들의 욕구들이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조선에서 제일 작살나게 잘 놀았던 싸이가 그랬다. 놀아본 놈이 더 잘 논다고 :)
최근에 책임져야 하는 업무 영역이 더 커져서 내 본업 마케팅이 아닌 업무영역이 더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또 새로운 업무까지 맡아달라는 대표님의 부탁(?)에 "못해요. 안해요. 하기 싫어요."라고 대들고, 심지어 매일매일 업무 스트레스에 악몽을 꾸는 날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신규 업무파악과 인력 및 조직구성을 요리조리 구상하기 시작하는 나를 보고 있자니 지금은 내 모든 욕구가 '일에서의 성공'에 집중되어 있음을 받아들였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신강(神强), 내가 이루고자 하는 힘이 강한 사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그렇지만 아름답고 맛있고 즐거운 그것들을 다시 사랑하고 갈구할 수 있는 그날이 반. 드. 시 올 것임을 나는 믿는다. 왜냐? 내 가여운 사주에도 그런 행복이 없진 않고 좀 뒤늦게... 62살부터 오기는 오는 것 같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