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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빌레 Nov 22. 2023

나의 눈물 버튼, 막내딸

40대 중반 늦은 나이에 딸을 입양했다. 남편의 성화가 아닌, 동생 없이 혼자가 외롭다고 시위하는 중학생 아들 성화에.


그렇게 멋도 모르고 가볍게 들였으나, 무거움으로 자리 잡은 우리 가족의 막내딸.


우리의 작은 푸들.


4개월 때 우리에게 온 작은 하얀 솜털은 어느덧 6살 중년 푸들이 되었다.


# 입양하다 


아들에게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강아지를 데려와 키울 수 없다고 했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책임감을 가지고 같이 그리고 평생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강아지를 평생 만져본 적도 없던 나는, 무엇보다 강아지를 싫어하시는 시어머니가 반대하실 것이라 굳게 믿고 한 말이었다.


내가 아들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중딩 아들은 눈여겨보았던 푸들을 입양하기 위해, 극구 반대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강아지 성향, 어떻게 돌볼 지에 대한 조사를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로 만들어 할머니 앞에서 발표(?)를 했다. 그런 손자의 노력이 기특하셨는지 할머니는 못 이기는 척 허락하셨다.  


내가 아들을 너무 믿었다.


아들은 푸들을 매우 예뻐하고 정성스레 케어하였다 가족으로 맞이한 지 딱 2주까지만.


# 책임의 무게를 견디다


여러 사정으로 강아지를 정작 입양하기까지 몇 개월이 흘렀고, 아들은 그사이 중학생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빡세게 늘어난 학교와 학원 수업으로 갑작스레 바빠졌다.

강아지 식사, 산책, 목욕 등 본인이 모두 책임지겠다고 한 아들은 온데간데없고, 강아지에 대한 모든 케어가 어느덧 온전한 내 책임이 돼 버렸다. 접종, 사료 및 간식, 패드 및 각종 강아지 용품 구매, 미용 및 목욕, 배변 처리까지, 가족 중에 동물에 대한 애처로운 마음이 제일 큰 나의 몫이 되었다.

남편은 그다지 관심이 없고, 시어머니는 허락만 하셨고 강아지가 가족의 구성원처럼 대우받는 것에 심히 불편해하셨다. 동물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지 하시는 통에 강아지 케어도 눈치가 보였다.


온 지 1달 만에 신고식도 제대로 치렀다. 아들에게 반갑다고 달려가다 아들의 전봇대 같은 무쇠 다리에 튕겨 넘어지면서 그 얇디얇은 앞다리가 부러졌다. 처절한 외침이 아직도 귓가에 괴롭게 맴돈다. 작은 생명체의 큰 수술 및 회복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공부하랴 일하랴 모두가 바쁜 시기, 누구 하나 강아지와 온전하게, 느긋하게 같이 있어줄 사람이 없었다. 강아지를 키워본 적 없는 미숙함과 싱글맘이 평생 한 살 아기를 키우는 것 같은 버거움에, 사랑해 줄 수 있는 가족이 나타나면 내주고 싶을 정도로 힘든 시기도 있었다. 강아지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루종일 옆에서 잘 케어받을 수 있는 좋은 환경으로 입양 가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우리의 무책임한 욕심으로 힘들게 한 것은 아닌지 미안했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2-3년이 지나니 어느덧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되어 갔고 익숙해져 갔다. 지금은 가족의 모든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우리의 털베이비(fur baby), 막내딸이다.

집 도어록 소리만 들려도 가장 먼저 달려오고 이 세상 제일 반갑다고 온몸을 흔들며 숨을 헐떡이며 격하게 반긴다. 복실한 털과 따뜻한 온기가 내 몸을 휘감을 때의 느낌이 좋다. 강아지 특유의 꿉꿉한 냄새마저 향기롭다.


소형견 수명이 약 10-15년이라 치면 앞으로 우리 강아지와 같이 할 세월이 4-8년도 남지 않는다. 언젠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맺히고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더욱 잘해줘야겠다고 매번 다짐하게 된다.



# 동물 삶에 눈을 뜨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변한 것은, 나와 함께 사는 강아지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삶에도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힘든 일이기도 하다.


동물에 대한 측은지심이 지나치게 커졌다. 유기견, 학대견, 식용견, 갇혀 있는 동물들, 인간 탐욕에 의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 동물은 나의 눈물 버튼이 되었다. 동물 관련 프로그램이나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아졌다.


잔인한 인간에 대한 화도 더 늘었다. 동물을 유기하거나 학대를 가하는 사람들에게 분노가 치밀고, 그런 잔인한 주인도 좋다고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를 보면 마음이 찢어진다. 집 밖에서 평생 짧은 목줄에 묶여 살고 있는 강아지들을 보게 되면 그 불쌍한 모습이 며칠에서 몇 주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괴롭다. 전국 시골집을 누비며 긴 목줄을 사서 갖다 주고 싶은 심정이다.


(우국원 Fido, 2018)


그런 날은, 유독 우리 강아지를 더 껴안아주고 더 어루만져 주게 된다.


우리 강아지의 케어를 넘어 유기견 등 다른 강아지들을 위한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갖게 한다. 유기견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고자 한 적도 있지만, 측은지심이 과도한 나에게는 아직 두려운 일로서 실행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수많은 유기견들을 보게 되면 측은지심으로 인한 죄책감과 속상함이 내 삶을 뒤흔들 것을 알기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는 내 삶을 힘들게 하지 않을 범위 내에서 조금씩 강아지를 위한 활동을 하고 싶다. 나의 인생 후반전의 리스트 중 하나이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아직까지 버겁고 앞으로도 버겁겠지만 (인간 자식은 안 버겁냐만은), 내가 평생 지켜줄 나의 딸! 경이로운 동물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고 동물에 대한 애정을 갖도록 해준 우리 막내딸이 고맙다.



커버 이미지: 우국원 Lunatic Beauty 2022 (일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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