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I Aug 09. 2016

서울에서 보내는 여름휴가

얻을 각오를 위한 잃을 각오

인간은 언제나 한정된 자원 속에서 살아간다. 한정된 시간, 한정된 재화, 한정된 체력 그리고 심지어 사랑까지도 어떻게 보면 한정되어 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실상은 이러한 한계 속에 우리는 늘 선택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하나를 얻는다면 필연적으로 다른 어떤 하나, 혹은 그 이상을 잃을 수밖에 없다. 무엇인가를 절실히 원할 때, 나는 선택되는 그 하나가 아닌 희생되는 반대편의 것들에 대한 나의 각오를 돌아본다. 원하는 바를 얻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잃게 되는 것은 보통 각오를 하지 않는다. 이 마음가짐이 없다면 단언컨대 시간이 지난 후에 '후회'라는 놈이 스리슬쩍 찾아오게 된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하고, 일반적으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의 깊은 대화를 통하여 평소에 보지 못했던 스스로의 새로운 면들을 깨닫게 한다. 일상에서는 그렇게나 내 곁에 머물지 않는 여유도 여행에서는 늘 나와 함께 해준다. 특히나 낯선 곳에서,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 느껴지는 자유가 정말 좋다. 그런 의미에서 짧은 패키지여행보다는 최소 일주일 이상의 장기 자유 여행을 즐겨한다.


나는 또한 동물을 사랑한다. 맑은 눈망울에서 우리네와 다른 순수함을 보는 것이 좋고, 오로지 나를 의지하는 애들을 통하여 나 자신의 자의식이 강해지는 것도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만을 바라봐 주는, 그런 맹목적인 따뜻한 마음이 사랑스럽다. 많은 동물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고양이를 좋아한다. 강아지와 달리 시크하면서도 가끔씩 나누는 깊은 교감이 너무 매력적이다.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이 2가지가 병행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홀로 있는 시간을 며칠 정도는 가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일주일 이상을 혼자 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밥과 화장실을 치우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고양이들도 외로움을 느낀다.


우리 애들 중 오곡이는 처음 우리 집에 온 후, 주말이 지나고 내가 출근을 하게 되자 며칠 동안 밥을 안 먹기 시작했다. 간식을 줘도 안 먹으면서 야위어 가더니 급기야 구토까지 하였다. 놀라서 병원에 데려가 보니 스트레스성 위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마도 주말 내내 계속 어루만져주던 내가 없으니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식사를 거부하게 된 것 아닌가 싶다. 평소에도 한상 내 무릎 위에서, 특히 잘 때는 내 팔을 베고 잘 만큼 의존적인 아이라서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이런 애를 두고 일주일 이상 집을 비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회사는 일 년에 두 번 회사 전체가 일주일 간의 휴가를 가진다. 입사 후 이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나를 위한 제도라고 좋아하며 그 정기 휴가에 일주일을 더하여 보름 정도 장기 여행을 가는 원대한 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팀에도 미리 얘기하고, 업무에도 문제 되는 부분이 없도록 최대한 준비하였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곡물이 자매가 내 품 안에 들어왔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 그러하기에 애들을 입양하기 전부터 앞으로 장기 여행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8월 정기 휴가가 다가오면서 그 생각은 더 굳어져갔다. 아직 6개월도 안된 애들을 임시탁묘나 낯선 호텔에서 장기간 방치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번 휴가는 서울에서 보내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가끔 반려견을 들일까, 반려묘를 들일까 하고 고민하며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 나는 항상 같은 얘기를 해준다. 애들을 들이면서 좋아질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애들 때문에 희생되어야 하는 것들을 먼저 생각하고 그 각오가 있을 때만 들이라고 말이다. 한번 우리 인생에 들어온 아이들은 길게는 20년을 우리와 함께 해야 한다. 아이들이 가족으로 합류하면서 생활의 패턴 또한 자연스레 바뀌게 된다. 회식 후 술 취해 들어와서도 애들 밥은 꼭 챙겨줘야 하고, 새벽에 시작하는 고양이들의 '우다다'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심지어 연인을 만날 때도 동물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사람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서 임신, 출산 시에도 애들이 고려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앞으로 내가 장기 여행을 갈 수 있을까? 모르겠다. 동물을 좋아하면서 혼자 여행을 보내줄 천사 같은 배우자를 만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애들이 좀 더 큰 후에 우리 집에 간혹 와서 애들 뒤처리를 해줄 좋은 친구가 생기면 또 가능하려나?


어쨌든 이번 여름휴가는 끝났다. 애들과 함께 보낸 이번 휴가에 미련은 없다. 오히려 생각보다 알차게 보낸 느낌이다. 애들과 함께 에어컨 빵빵 틀어놓고 더위를 피하며 맥주 한잔 즐긴 그런 소박한 휴가였지만 나름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진짜 일상을 여행처럼 다닐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