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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Oct 02. 2017

나홀로 6일 울릉도 여행 - Day 1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지금 몇시지? 겨우 차린 정신을 부여잡고 손을 들어 시계를 본다. 여행을 떠날때만 항상 나와 함께하는 카시오의 저렴하지만 튼튼한 전자시계가 보여서 내가 여행을 떠나왔음을 상기시킨다. 지금 시간은 오전 10시다. 그리고 좌우의 강한 흔들림이 내가 바다 한가운데, 울릉도로 향하는 배 위에 있음을 증명해준다.


오늘 새벽 1시에 집에서 나와서 영등포로 가서 버스에 올라타고, 거기서 밤새 4시간을 달려 묵호항에 도착하고 배에 울릉도행 배에 올라탄 것이 아침 7시반, 그리고 또 2시간 반이 지나는 동안 거의 눈을 못 뜬채로 나름 숙면을 취했다. 울릉도는 우리나라인데 비행기가 없다보니 어째 몽골 가는 것보다 더 힘든 여정이다. 그래도 이제 한시간만 더 가면 드디어 대망의 울릉도에 도착한다.

10일간의 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어디로 여행 갈지에 대해서 고민을 꽤 했었다. 각지 여행을 가거나 처가댁에 가라는 깊은 배려에 우리 집안은 공식적으로 설날만 모이고 추석은 모이지 않는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는 법, 제주도부터 일본까지 여러 곳을 고민했지만 그런 곳은 이미 부지런한 자들이 표를 선점한 상태였다. 그래서 이 기회에, 그동안 항상 오고 싶었던 울릉도로 행선지를 잡았다.

그런데 울릉도에 가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지는 생각도 못했다. 거기에 뭐가 있다고 이리 많은 사람들이 가는거지. 영등포에서의 버스도 무려 3대가 오더니 이 배는 크기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리고 이렇게 큰 배가 이렇게 흔들린다는 사실 또한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멀미하는 사람들은 꽤나 고생할듯한 흔들림이다.



"승객 여러분께 안내 드립니다. 본선은 울릉도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승객 여러분은…."


언제 또 잠들었지? 선내에 울려퍼지는 안내방송과 사람들의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 시계를 보니 11시반이다. 새벽 1시에 집에서 나왔으니 무려 10시간반이 걸린 셈이다. 오는 내내 자면서 와서 그렇지 사실 꽤나 힘든 여정이었다.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잠시 지켜보다가 나도 가방을 들고 천천히 일어난다. 움직임이 느려진 것을 보니 다시 혼자 여행 왔다는 것이 실감된다. 이제 6일 동안 그 누구의 방해도 없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다. 최근에 갔던 몽골에서는 어찌하였던 일행이 있었기에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자유로움이 반갑다.

배에서 내리자 바다 내음이 강하게 엄습한다. 울릉도도 제주도 같은 화산으로 인해 생긴 섬이었나? 바다 뒷편에 자리잡은 돌산이 눈을 확 사로잡는다. 항구에는 분주하게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대부분은 패키지 관광으로 온 사람들인듯 가슴에 '~여행'이라는 뱃지를 달고 있다.

울릉도에서의 첫번째 미션은 버스를 타고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는 것이다. 오기 전에 잠시 검색해보니 울릉도에는 나름 유명한 2개의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강아지를 키우는 '섬' 게스트하우스와 고양이를 키우는 '냥꼬네' 게스트하우스이다. 두 아이의 집사로서 이런 갈래에서의 선택은 너무나도 쉽다. 그런 이유로 이곳에서의 첫번째 행선지는 '냥꼬네 게스트하우스'이다.


네이버 지도로 길찾기가 되려나? 오, 잘된다. 역시 한국은 어디가든 한국이다. 버스 타는 곳, 버스 번호, 내리는 곳, 시간, 금액까지 확실하게 표시된다. 이런 얘기하면 아저씨 같지만 세상 참 좋아졌다. 론리플래닛을 바이블처럼 여기며 찢어질때까지 들고 다니던 시절이 가끔 그립기도 하다. 이런 얘기 이제 하면 늙었다고 하겠지? 삐삐의 낭만을 아냐는 등의 얘기말이다. 근데 진짜 삐삐는 낭만이 있었는데…

버스 타면 한시간 이상 걸린다고 나오길래 항구에서 점심부터 해치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따개비라는 단어가 식당 곳곳에 보이길래 그 중에 적당한 곳에 가서 따개비 칼국수를 주문한다. 칼국수가 9천원에, 공기밥이 2천원… 예상은 했지만 확실히 섬은 여행자에게 가혹한 법이다.

울릉도에서의 첫 식사는 별3개 정도 줄만하다. 따개비라고 하지만 건더기 하나 안보여서 별2개를 줄까 했지만 사장님이 친히 오셔서 육수가 따개비를 간거라고 설명하셔서 하나 추가한다. 나름의 깊은 육수 맛이 묻어나지만 그렇다고 막 맛있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맛이다. 그래도 이름 모를 메뉴를 하나 더 먹었다는 거에 만족한다. 이렇게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식사라는 카테고리에 경험치 +1을 또 추가한다.

제주도에서 여행할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버스의 배선 간격이었다. 한시간 기다리는 것은 예사였다. 여기라고 다를까나. 버스 정거장에서 확인해보니 역시 50분 간격으로 배선이 되어 있다. 그래도 뭐, 나에게 가장 많은 것이 시간이다. 기다리면 되지 그까이꺼. 일상에서의 50분은 허비하기 아까운 시간일지라도 여행에서의 50분은 그냥 적당히 멍때리고 앉아 있으면 지나가는 시간이다.


아는 동생이 울릉도에 잘 도착했냐며 연락이 온다. 그러더니 자기들 부부도 이쪽으로 템플스테이를 온다고 한단다. 부부와 갓난아기와 시부모, 그러면서 나보고도 오라고 초대를 한다. 흠, 땡기는데? 만약 가게 된다면 목요일에 바로 넘어가서 일요일까지 있는거니 여행이 총 8일로 연장된다. 울릉도에서 쌓인 여독을 풀기에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일단 오늘 하루 고민하고 결정해야겠다.


1시 20분에 출발하는 버스라서 10분이 되니 사람들이 잔뜩 들어온다. 울릉도에도 이렇게 사람이 많다는 것이 계속해서 적응이 안된다. 그 어디를 가도 사람 구경하기 힘들던 몽골과 비교되기도 한다. 하긴 여기가 서울역 같은 곳이니 많을 수 밖에 없을거다. 어서 이런 번잡한 곳을 벗어나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버스를 타고 또 한시간을 달린다. 울릉도는 참 가는 길에 사람을 지치게 하는 곳이다. 그래도 이런 이동 또한 여행의 일부분임을 잊지 않고 여유를 가지도록 해보자. 좌측으로 펼쳐지는 웅장한 바다와 돌산의 위엄에 젖어들기도 잠시, 결국 꾸벅꾸벅 머리를 조아리며 잠에 빠져든다. 오는 동안 쌓인 이 피로를 없애려면 어찌해야 할꼬.


여러 항구에서 멈추던 버스는 결국 한시간이 지난 다음에서야 나의 이번 여행 최종 종착지인 현포항에 멈춘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서 울릉도 현포항까지, 이 머니먼 길의 여정이 드디어 끝이 났다. 버스에서 내리며 크게 기지게를 한번 편다. 자, 이제부터 이번 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큰 기대감을 가지고 온 현포항은 사실 기대에 미치지는 못한다. 곳곳에 공사를 하는 흔적도 보이고, 항구라고 하기에는 배도 인파도 너무 없다. 이곳에서 뭐가 있을까? 걱정도 앞서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조용한 곳에서 여행의 또아리를 틀고 싶었다. 울릉도가 멀다지만 어차피 한시간이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 한적한 이곳에서 마음의 정착을 하고 일주일간 원하는 곳으로 짧은 모험을 떠나는 그림이 마음에 든다.

냥꼬네 게스트하우스는 솔직히 내가 다녀본 게스트하우스 중에서 시설이 좋다거나 쾌적하다고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18개월 아들을 안고 설명을 해주는 사장님의 선한 얼굴에서 왜 이곳이 이리 좋은 평을 받는지를 바로 알 것 같다. 손님을 위한 곳이라는 느낌보다는, 젊은 부부가 사는 곳에 여행자들이 얹혀 있는 느낌이다. 이런 자연스러움이 이곳에 매력이 아닌가 싶다.

2층 침대에서 위쪽 구석 자리를 배정받는다. 6명이 잘 수 있는 곳인데 이미 5자리는 다 채워져 있다. 개별 침대가 아니라 공동 침대인 것이 약간 군대 훈련소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이것도 이곳의 매력 중 하나일 거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나를 반기는 3마리의 새하얀 냥이들이다. 오드아이라 이름 붙였다는 오순이, 꼬질꼬질해서 꼬냥이, 그리고 이 집에 마스코트 냥꼬. 신비한 분위기의 오순이는 도도한 매력이 있고, 꼬질꼬질해서 털을 싹 다 밀린 꼬냥이는 우리 애들보다도 심한 개냥이다. 냥꼬는 8살 넘은 아이라 잘 보이지 않고 가끔씩 얼굴을 비춘다. 냥이 3마리에 이렇게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보니 확실히 나도 냥덕이긴 하다.

12시간의 긴 여정을 증명하듯, 온몸이 피곤함에 쩔어 있고 머리도 멍하다. 오늘은 여기까지 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었다. 더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고 일단 자리를 피고 잠시 눕는다. 잠시 쉬어가려 했는데 결국 잠이 들고 두시간의 숙면을 취한다. 그래도 일어나니 멍한 것은 왜일까.


그래도 밥은 먹어야겠기에 힘겨운 몸을 이끌고 일어난다. 주섬주섬 필요한 짐만 챙기고 일단 거실로 나온다. 여기는 거실도 참 아기자기하다. 제주도에 사는 현영이가 게스트하우스를 했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지는 않지만 묘하게 마음의 안정감을 준다. 깨끗함과 정돈됨을 싫어하는 나한테 딱이라고나 할까.


거실로 나와보니 이미 간단한 술자리가 열려 있다. 처음 보는 여성 두분이 탕수육을 앞에 넣고 한잔 하면서 나도 같이 하자고 초대하신다. 어차피 딱히 일정도 없기에 같이 합류하여 주시는 맥주를 손에 든다. 누가 남기고 간 맥주라서 그냥 먹으라는데, 나중에 채워넣겠다고 한다. 이런 문화가 또 게스트하우스만의 매력이다.


서로 통성명도 안하고 그냥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여자분 중 한분은 이 곳의 안주인이고, 다른 한분은 혼자 온 여행자이다. 탕수육은 그 여행자 분이 사오신거다. 처음에 어색하게 얘기를 나누다 또 금방 친숙하게 주제를 바꿔가며 수다를 떤다.


여기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내외는 울릉도 여행을 몇번 왔다가 너무 좋아서 3년 전에 아예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울릉도는 아직 이런 게스트하우스가 많지 않기에 나름 괜찮은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 큰 제주도에서도 육지것들을 향한 텃세가 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울릉도는 괜찮을까? 물어보니 역시 섬은 섬이다. 이곳 역시 초반에 자리 잡을때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텃세는 왜 생길까? 특별하다는 자부심에서 나오는걸까? 사실 본인이 특별하다고 믿는 마음, 자부심, 자존심은 나쁠 것이 전혀 없다. 그런데 그 자부심이 지나쳐서 외인에 대한 배척으로 가면 그건 문제가 된다. 이건 여기 울릉도 사람들에게 하는 얘기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 하는 얘기이기도 한다. 나도 어느새 내 생각이 너무 강해져서 나와 생각이 다르거나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남을 인정하며 자기 자신도 인정해야지, 남에 대한 인정 없이 자기 자신만 있는 인정은 위험하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부분에 대한 자아성찰이다.


좀 앉아 있다 보니 나들이 나갔던 여행객들이 한 둘 복귀한다. 남자 2, 여자 1명의 그룹은 들어오더니 아주 신나게 오늘의 실패담(?)을 늘어놓는다. 독도를 가기 위해 장장 5시간을 썼지만 결국 파토가 심해서 독도를 눈 앞에 두고 정착을 못했다고 한다. 3대가 복을 받아야 밟을 수 있다는 독도땅, 나는 일주일 안에 밟을 수 있을까.


여기도 저녁 8시 가량부터 막걸리 파티를 한다고 한다. 1만원에 막걸리 무제한, 특히 아는 할머니가 직접 담근 호박 막걸리라고 사장님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하신다. 첫날인 오늘, 나는 이들에게는 낯선 사람일거다. 그래도 술 한잔과 함께 내가 일주일을 머물 이곳에 대해 좀 더 알아두는 것도 좋겠다. 그렇다고 일주일 내내 막걸리에 취해 있으면 그건 안되는데… 하긴 안될건 또 뭐 있나.


저녁은 그래도 먹어야겠기에 모두가 일구동성으로 추천한 근처에 짱뽕집을 찾아간다. 울릉도에서 짬뽕이라니, 굳이 그래야 하나 싶었는데 막상 가서 먹어보니 왜 추천했는지를 알겠다. 국물의 깊이가 남다르다. 해산물 재료를 여기서 바로 잡아서 써서 그런걸까. 한그릇을 후딱 먹어치운다.

식사를 하고 밖을 나와 보니 바람이 심상치 않다. 아까 얘기를 들어보니 내일은 하루종일 비가 온다는 듯 싶다. 어차피 오늘 피로가 쌓여서 내일 하루는 쉬엄쉬엄 지내려고 했으니 하루 쉬기에 나쁘지 않아 보인다. 여기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원피스 팬이라 만화책을 모두 갖춰놨으니 그동안 밀린 원피스나 볼까 싶기도 하다. 이런 한량 생활이 원래 여행의 목적 아니겠는가.


숙소로 돌아오니 아까와는 다르게 아주 시끌벅적하다. 모두 다 들어오면 20명 정도라고 했던가? 의도한건지 자연스러운건지 모르겠지만 남녀의 성비도 거의 동일하다. 지금은 개인정비 시간이라 그런지 각자 자기 할일을 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한 친구가 열심히 LOL을 하고 있고, 다른쪽에서는 오늘 찍은 사진을 서로 나눠주고 있다. 게스트하우스에 처음 오는 사람은 이런 분위기가 낯설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응되면 그 누구도 어떤 강요도 안하고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이런 분위기는 강한 중독성이 있다.


예전에는 나도 이런 분위기를 어색해했을때도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뭔가 자연스럽다. 거실로 나가서 새로 본 사람들도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있으니 하나 둘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광란의 밤이 시작된다.


여행 좋아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제주도에는 아프리카라는 악명(?) 높은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밤새 술을 마셔도 그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는 방종을 콘셉트로 잡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이다. 그만큼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소위 말하는 '막걸리 파티'가 보통 존재하는데 이게 밝음과 어두움이 있다. 서로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여행을 즐겁게 하는 양념 같은 문화이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양념이 과해져 누군가에게는 먹을 수 없는 과한 문화가 되기도 한다. 적절하게 놀면 좋지만 과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셈이다. 이곳은 어떠할까?


여기는 딱히 정해진 규칙은 없다. 어차피 근처에 술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이 11시에 문을 닫아서 규제를 안해도 상관없다는 것이 사장님의 논리다. 하긴 술이 대화를 부르고, 대화가 곧 누군가에게는 소음이 될테니 술이 떨어지면 어느정도의 규제는 자연스럽게 생길법도 하다.


오늘은 뒤늦게 오신 2명을 제외한 13명이 앉아서 술을 매개체 삼아 각자의 인생을 엮어본다. 안주는 여기 어린 친구들이 통발로 잡은 문어와 여자 숙박객들이 줏어온 소라를 사장님이 간단하게 숙회로 내놓아주신다. 술은 도동에서 할머니가 직접 담그신다는 호박 막걸리를 사장님이 마음껏 먹으라고 퍼주신다. 물론 만원을 내긴 하지만 장담컨데 그 이상은 먹을거다.

이런 모습은 언제나 흥미롭다. 처음에 딱딱하게 굳어있던 각자의 외피가 햇볕을 맞으며 조금씩 녹아들며 결국에는 모두 하나가 되는 모습 말이다. 어색하게 한 두마디를 나누던 우리는 채 한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형 동생이 되며 각자의 이야기를 테이블에 열심히 풀어놓는다. 결혼했지만 남편 없이 홀로 여행을 떠나온 여인, 국내 여행을 다니다 마음이 맞아서 세번째 같이 여행을 왔다는 3명의 혼성그룹, 구미에서 올라온 모 여배우를 닮은 3명의 젊은 처자들, 절대 나이를 밝히지 않지만 순수함이 뚝뚝 묻어나는 2명의 여인들, 그리고 내 옆에서 아재개그를 받아주느라 고생 중인 잘생긴 총각까지, 어느새 친구가 된다. 물론 서로의 깊이 있는 얘기까지 나누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사실 여느 친구들이라고 다를까. 여행지에서의 하루는 일상에서의 한달이라고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한잔 두잔 마시다 보니 안주가 금새 사라진다. 그걸 보신 사장님이 갑자기 기다리라며 뜰채를 들고 바닷가로 향하신다. 조금 있다 멋짐 폭발하신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소라를 한웅큼 들고 들어오신다. 바다가 제공하는 무한 안주 리필이다. 그렇게 또 뚝딱 다시 우리 상 위에는 소라회가 추가된다.


여행지에서는 과음을 경계하게 된다. 사실 술 자체가 일상처럼 땡기지가 않는다. 아마도 술 말고도 영혼의 허함을 달랠 요소가 많기 때문일거다. 하지만 오늘은 보아하니 좀 달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서로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많고, 다들 술을 좋아해서 자꾸 권한다. 내가 가장 나이가 많지만 그래도 이야기의 안주거리가 되어서 이들의 즐거움에 한 숟가락 더 보탠다.


이런 자리에서는 그래도 말을 조심하게 된다. 불혹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변화가, 똑같은 얘기라도 5년 전에 했을때와 지금 할때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무게가 달라졌다. 사실 억울하기도 하다. 누군가가 얘기했듯이 나이는 자연스레 내 안에 쌓일 뿐인데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니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그런 이유로 이제는 예전처럼 강하게 얘기를 안하게 된다.


사람은 모두 가치관이 있고, 이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더 깊게 발견한 사람일 수록 그 가치관의 색깔은 뚜렷해지고 그러면 의견도 강해지게 된다. 이는 모두 좋은 방향이다. 하지만 색깔이 강한 사람은 색이 없는 사람을 보면 색을 입히고 싶어진다. 오히려 다른 색을 보면 그 색을 인정하지만 무색을 만나면 안타까운 마음에 자꾸 다가서서 자기의 색체를 묻히려는 마음이 생긴다. 이 또한 사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묻은 색은 어차피 그들의 색이 아니다. 자기의 색은 나라는 도화지에 묻어 있을때만 의미가 있는 법이다.


마흔 들어 가장 큰 깨달음이 자기 안의 추스림이다. 다른 얘기로 하면 포용력이다. 어릴때의 포용력은 자기 자아를 흔들기에 위험하지만 지금의 포용력은 나를 지키면서 다른 이를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내가 강하기에 내가 흔들리지 않고도 다른 이를 내 안에 받을 수가 있는 법이다.


12시가 가까워지면서 술이라는 촉진제에 흥분한 애들을 데리고 자리를 1차로 정리하고 바깥으로 향한다. 오늘 밤이 아쉽다고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바람이 새차게 불지만 그깟 바람 따위 즐기면 그만이다. 누군가 가져온 싸이키 등을 켜놓고 바닷가 앞에서 음악을 틀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한두잔 더 마신다.

흥이 오른다. 더 자유롭고 싶다. 내 안에 자아를 폭발시키고 싶다. 서너명을 데리고 맥주 한두캔을 들고 방파제로 향한다. 파도가 강하지 않아서 위험해보이지는 않는다. 바닥에 누워서 하늘을 보며 소리 없는 영혼의 함성을 질러본다. 두근거린다. 구름 때문에 별도 하나 안 보이지만 우리 눈에 안보인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몽골 초원에 누워서 별을 볼때를 떠올리며 그때의 자유로움을 다시 느껴본다.


오늘은 이제 족하다. 더 있고 싶어하는 애들을 데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몇명이 또 라면에 소주를 마시고 있다. 술도 이제 족하다. 적당히 앉아서 얘기를 나누다가 먼저 숙소로 들어간다. 서울에서부터 지금까지 꽤나 피곤한 하루였지만 마음이 평온하다. 이제 이곳에 대한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내일은 진짜 울릉도의 여행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유를 잔뜩 머금은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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