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9월 9일, 지호를 만날때 저는 제 자신을 이혼남이라고 소개했습니다.
7년 사귄 여자친구와 결별하면서, 스스로를 이혼남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그만큼 저한테는 '결혼'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크지 않았습니다.
왜 사람들은 사귐의 시작, 동거의 시작, 이런 것 보다 행동의 변화도 없고 서로간의 약속에도 큰 변화가 없으면서 사회적으로만 인정 받는 '결혼'이라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두는지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혼남이라고 얘기를 시작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사랑하며, 이를 변화시키고 싶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면 조금씩 상대방과 교류를 하게 되고 이를 맞추게 되는 과정속에서 자기도, 상대방도, 결국에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를 너무나도 많이 봤습니다. 그 과정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면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둘 다에게 불행으로 가는 경우가 더 많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반에 강하게 제 자신을 어필함으로 인해서 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보통 얘기하는 '어둠의 궁합'이 맞는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https://brunch.co.kr/@lookfar/22 이전에 썼던 어둠의 궁합이라는 글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서 그렇게 저를 소개하면 처음에는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을 하고 잘 만나지만, 그 이후에 제 결혼에 대한 가치관 등을 얘기하면 결국 다 떨어지게 되더군요. 그리고 저는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드렸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지만 제 자신을 죽이면서까지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다 지호를 만났습니다.
지호는 또 그녀 나름의 서사가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저와는 반대로, 자아가 많이 흔들리는 아이였고, 남을 통하여 자아를 형성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안쓰럽기도 하고, 또 우리의 궁합이 의외로 잘 맞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그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리고 그녀도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서로의 자아가 존재하면서 우리라는 새로운 자아도 생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5년이 지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업을 한번 실패하여 보증금 500짜리 옥탑방에 살던 저는 나름의 재기에 성공하여 테슬라 차를 타고 서울은 아니지만 경기도권에 집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의 시너지가 강력하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서로를 해치지 않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보완이 인생을, 마음을, 일을, 편하게 하였습니다.
'결혼'이라는 단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이런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프로포즈를 하였습니다.
프로포즈를 하면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랑'의 가치를 크게 믿지 않습니다. 불타오르는 감정이지만, 불타오르기에 또 그만큼 금방 꺼지는 가치라 생각합니다. '사랑'은 '신뢰', '지속성'과 상관이 없는 가치입니다.
그보다 함께 가는 동반자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행복하고 우리가 행복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이제 45살, 나름의 가정을 꾸려보려고 합니다. 결혼하기 전의 하루와 결혼하기 후의 하루가 다르다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삶의 연속성 속에서 하루가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단 그 연속성이 가르키는 방향이 이 결혼으로 인해서 조금이라도 아름다워지고 풍성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그리고 제가 저로서 존재하고, 지호가 지호로서 존재하며 계속되는 미래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