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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제 Mar 01. 2016

우리는 진정 자유로운 걸까요?

브레이브 하트와 트루먼쇼

하루는 24시간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자유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이 24시간의 하루 중 과연 몇 시간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있을까요? 6시 30분에 일어나 1시간의 출근 준비시간을 거치고 7시 반에 집을 나와 1시간 걸리는 회사까지 지옥철을 타고 이동합니다. 정식 출근 시간은 9시지만 '업무 준비시간'이라는 명목 하에 8시 반까지 회사에 나와 업무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면 어느덧 6시. 퇴근시간이 되었지만 아무도 집에 가지 않고 9시, 10시가 넘도록 회사에서 야근을 합니다. 그리고 또 1시간의 퇴근시간 후에 집에 돌아오면 10~11시, 씻고 나면 나에게 남은 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남짓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자유인이라 말합니다. 자유롭게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투표도 원하는 사람에게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중세시대에는 감히 꿈꿀 수 없었던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정 자유로운 걸까요?


자유에 대한 소망

멜 깁슨 주연의 1995년 작품인 '브레이브 하트'를 보면 중세시대 사람들의 치열한 자유에 대한 투쟁을 볼 수 있습니다. 13세기 중엽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대립 속에서 스코틀랜드의 왕이 후계자 없이 죽자 잉글랜드는 왕권을 요구하며 폭정의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그 과정에서 잉글랜드의 왕은 탁월한 정치력과 군사적 힘을 바탕으로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을 회유하게 되고 스코틀랜드의 평민들은 이로 인해 잉글랜드의 폭정을 견뎌야 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잉글랜드의 왕은 스코틀랜드를 보다 더 잘 통치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씨를 없애야 한다는 이유로 스코틀랜드의 영지의 영주들은 관할 지역에서 결혼하는 처녀의 첫날밤을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얻을 수 있도록 합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인 월레스는 이에 저항하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게 됩니다.

월레스의 용맹함을 보고 많은 스코틀랜드 인들은 월레스의 휘하로 들어가 잉글랜드의 폭정에 저항하게 되고 스코틀랜드 정벌의 발판인 요크 성까지 함락하게 됩니다. 이후 스코틀랜드 귀족들은 월레스에게 기사의 작위를 내리지만 내부의 정치싸움으로 인해 제대로 월레스를 돕지 못합니다.  그중 최고의 귀족인 브루스는 월레스를 돕고 싶어 하지만 생존이 최우선이라는 부친 때문에 쉽게 월레스를 돕지 못합니다.

귀족의 비위를 맞춰야 거사를 성공할 수 있다는 브루스의 조언에 월레스는 "당신들은 성과 땅을 지키기 위해 살지만 우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운다"라고 말하며 그의 조언을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회유하러 온 잉글랜드의 왕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 작은 보상 때문에 우리는 노예가 되는 것이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보상들 때문에 평생 후회할 삶을 사느니 자유인으로 살다 죽겠다는 월레스의 신념에 감화한 브루스는 이후 잉글랜드와 정면으로 맞서게 되고  수많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평민들의 거친 투쟁으로 그들은 자유를 얻게 됩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이렇듯 유구한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유를 얻기 위해 싸웠고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그 자유를 쟁취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내를 영주에게 바칠 필요도 없고, 전쟁터에 자신의 의지 없이 끌려나가지도 않습니다.(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많은 곳에서 소년들까지 징집되는 것도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렵게 자유를 쟁취한 사람들이 현대 사회에서는 그 자유로부터 도피하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을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근대에 들어서 전통적 권위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개인'이 되었지만 동시에 고립되고 무력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고독은 견대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근대인은 ① “자유의 짐으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의존과 종속을 바라거나” ② “인간의 독자성과 개성에 기초한 적극적인 자유의 실현으로 나아가거나”의 양자택일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인 이상은 ②와 같은 자유의 실현이겠지만 그 실현을 위해서는 경제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현대사회는 개인의 경제적 책임을 개인의 노력의 여부로 평가하기 때문에 쉽게 적극적인 자유를 선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의존을 바라게 됩니다. 혼자 선택해서 인생을 개척해야 할 때 생기는 실패라는 불안감과 고독을 도저히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종교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파시즘과 같은 형태의 극단적인 전체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인들은 어렵게 얻은 자유를 다시 버리고 나치를 지지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독재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은 교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들

피터 위어 감독, 짐 캐리 주연의 '트루먼쇼'는 21세기 최고의 명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철학적 사유와 매스미디어에 대한 비판을 담은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 최고의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주인공인 트루먼 버뱅크는 어렸을 때 방송국으로 입양되어 30년이 넘도록 그의 삶을 대중들에게 공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본인 스스로만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던 도중 우연한 사고들로 인해 트루먼은 자기 삶을 둘러싼 세계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트루먼쇼를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이 작품을 보면 우리가 왜 진정한 자유를 꿈꾸지 못하는지, 우리가 진짜 좋아한다고 믿었던 가치들이 실제로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닌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트루먼은 피지섬으로 가는 것을 꿈꾸지만 어릴 적 사고에 대한 기억으로 쉽게 물 위를 건너지 못합니다. (이 사고는 방송사의 조작입니다) 트루먼 부인의 바보 같은 PPL 광고나 지나가는 행인들이 카메라에 트루먼을 잡아놓고 광고를 보여주는 장면들은 우리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매스미디어의 주입식 교육 때문에 그렇게 생각되어지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려 할 때마다 가족과 직장은 그 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트루먼의 가장 친한 친구는 트루먼이 빠져나가려 할 때마다 트루먼을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고 그의 부인 또한 경제적 이유를 들며 트루먼이 진실을 발견하려 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우리 삶에서 우리가 자유를 추구하려 하는 것들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과 너무도 똑같이 닮아 있습니다. 현실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트루먼에게 트루먼의 친구는 "나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라고 대답합니다. 우리는 이 '나도 그렇다'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소속감과 안정을 느끼게 됩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형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진정한 자유를 찾는 법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그의 저서인 '나는 길들지 않는다'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로는 가족, 두 번째로는 직장, 세 번째로는 지배자들입니다. 부모님의 과도한 애정과 자녀에 대한 기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못하게 만들고 안정적인 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선택한 직장에서는 우리는 9-11시의 살인적인 근무시간의 늪에 옭아 메고 월급이라는 목줄을 얽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그 순간 우리의 자유를 꿈꿀 수 없는 중세시대의 노예와 같은 삶으로 끌어내려집니다. 우리는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가 선택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없습니다. 부서이동을 하는 것도, 휴가를 쓰는 것도 심지어 언제 그만두는지도 우리의 선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지배자들에 대한 저항입니다. 우리를 자유인으로 있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적은 지배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고한 지배계급의 벽을 쳐 놓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만들며, 그들의 부와 권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시스템을 공고히 해나갑니다. 우리는 그 시스템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고 일부만을 바라보며 그것을 얻기 위해 소극적으로 소리치지만 그들에게는 전혀 큰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에 저항한다는 것은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혼자 살아간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용기를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자유는 인류가 생겨나고 사회 시스템을 만든 이후로부터 얻기 가장 어려운 가치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이 자유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지 못하도록 많은 방어막으로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3.1절인 오늘 브레이브 하트와 트루먼쇼를 보며 우리의 자유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따라 이상하게 윌리엄 월레스의 '자유'라는 외침이 더 간절하게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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