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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제 Apr 15. 2016

우리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걸까요?

관상과 스트레인져 댄 픽션

신분사회가 끝나고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세상에서 살게 된 후로 우리는 '사람의 운명은 사람의 손 안에 있다'는 사르트르의 말을 진리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요?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외모, 가족, 국가와 같은 환경과 조건들이 우리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해 버립니다. 그리고 뜻하지 않는 비극적인 사고나 병으로 인해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는 걸 생각해보면 우리는 '운명'의 주체가 아닌 꼭두각시 일지 모르겠습니다.


운명이 신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면 비극적 운명을 맞게 되는 사람에게는 왜 그런 운명이 주어진 것일까요? 신은 우리를 왜 만들었으며, 우리가 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는 것일까요? 오늘 저는 운명과 관련된 영화 두 편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관상 - 운명을 두려워하다. 

한재림 감독의 2014년 작품인 '관상'에서 주인공인 내경(송강호)은 몰락한 집안의 가장으로 아들 진형과 함께 산속에 칩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관상을 보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고 우연히 그 재주를 보게 된 기생 ‘연홍’의 제안으로 한양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녀의 기방에서 용한 관상쟁이로 한양 바닥에 소문이 돌던 무렵, ‘내경’은 ‘김종서’로부터 사헌부를 도와 인재를 등용하라는 명을 받아 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수양대군’이 역모를 꾀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위태로운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합니다. 


관상에서의 인물들은 모두 '상(정해진 운명)'대로 죽거나 이룬 것으로 보입니다. 내경의 처남인 팽헌은 울대가 튀어나와 있어 성질을 못 이기고 큰 잘못을 저지른다고 하였는데 그 말처럼 한명회의 계략에 넘어가 김종서를 죽게 만들고 수양대군을 승리로 이끌게 됩니다. 내경의 아들인 진형 또한 관직에 오르면 안 된다고 하였지만 관직에 오르게 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수양대군은 역모의 상 대로 왕위를 찬탈하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한명회까지 목이 잘린다는 운명을 부관참시의 형태로 맞이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인물들은 모두 운명에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운명을 두려워하고 운명의 굴레 안에서 한 부분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김종서는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음모에 대해 어린 왕에게 '역모의 상'이라는 말로 읍소 하지만 이는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전략이었습니다. 내경이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인재를 등용하고 주변의 사람을 부리는 데에까지 관상을 믿어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내경 또한 수양대군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수양대군의 이마에 역적의 상을 하나 더 만드는 일을 해내었지만 이 또한 결국 '운명'에만 국한되어 생각한 일일 뿐이었습니다. 


어쩌면 '역적의 상'으로 가장 운명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 '수양대군'이 운명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사람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는 내경으로부터 입을 수 있던 화를 한명회의 계략으로 인해 피하기는 했으나 운명 그 자체를 두려워하지는 않았습니다. 언제나 내경에게 '내가 왕이 될 상인가?'를 물으며 운명을 희롱하듯 했습니다. 관상이라는 영화 속에서 자기 자신 그 자체에 대한 가장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은 바로 수양대군이었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바를 이루었습니다. 



스트레인져 댄 픽션 - 운명을 바라보다 

마크 포스터 감독의 '스트레인저 댄 픽션'은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영화입니다. 국세청 직원인 '해롤드 크릭(윌 퍼렐)'은 전자시계의 알람에 맞춰 규칙적인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남성입니다. 일어나는 시간에서부터 양치질을 하는 횟수까지 모두 동일하게 맞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에게 어느 날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해롤드의 머릿속에서만 들리는 그 목소리 때문에 균형 있던 해롤드의 삶의 리듬은 불규칙한 소음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 목소리는 해롤드가 근 시일 내에 사망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해롤드는 패닉에 빠져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으려 합니다. 


삶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해롤드는 머릿속 목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다 우연히 한 비평가로부터 그 목소리가 작가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작가를 찾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극'인지 '비극'인이 체크해보라는 조언을 듣습니다. 해롤드는 자신의 삶이 '비극'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삶은 가까이서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


우리의 일상은 해롤드의 일상과 마찬가지로 행복보다는 어쩌면 불행하고 우울한 일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어렵고 힘든 일들이 지나고 보면 즐거웠던 추억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술잔을 가득 채우고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에 대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힘들었던 적이 언제였냐는듯이 행복한 표정이 됩니다. 해롤드의 일상도 비극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희극으로 변화됩니다.


하지만 내 삶이 역경을 이겨내고 '희극'이 되었다 해도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가장 행복할 때, 우리는 왜 세상을 떠나야 하는 걸까요? 해롤드는 결국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내게 됩니다. 그녀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모든 작품에서 '주인공을 죽이는' 작가입니다. 해롤드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면서 그녀의 소설 속의 주인공이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찾아와 자신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해롤드의 말에 작가는 패닉에 빠지게 됩니다. 사정하는 해롤드를 옆에서 지켜보던 작가의 조수는 해롤드에게 작품을 읽어보라고 말합니다. 해롤드는 자신이 주인공인 그 작품을 읽게 되고 그 작품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기 위해서는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해롤드는 담담히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려 합니다. 도대체 해롤드는 어째서 자신의 죽음을 그렇게 받아들이게 된 걸까요?



필연적인 운명을 긍정하고 감수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랑할 때
진정으로 완성된 인생을 살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아모르파티라는 말로 운명애(運命愛)라고도 합니다. 니체에 의하면, 운명은 필연적인 것으로 인간에게 닥쳐오지만, 이에 묵묵히 따르는 것만으로는 창조성이 없고, 오히려 이 운명의 필연성을 긍정하고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 본래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해롤드 크릭은 이 운명애라는 말을 자신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음으로써 진정으로 느끼게 됩니다. 


운명을 두려워하더라도 우리는 운명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슬프고 어려운 운명을 맞이했을 때도 우리는 그 운명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떠나가고 언제나 나에게는 비가 내리는 일상뿐일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운명을 우리에게 내린 신을 저주하고 자신을 혐오하기도 합니다. "도대체 왜 나인가요?"라는 말을 취한 목소리로 읊조릴 때면 운명이 너무나 밉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운명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운명이 아니라 내가 주인공인 소설 속의 '내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에서 주변인이 아닌 하나의 독창적이고 유일한 존재입니다. 나의 운명도 유일한 존재인 나의 하나뿐인 운명이며 나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나의 일부분입니다. 


운명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실패하거나 우울한 인생이며 그럴 운명으로 태어났다고 자신을 혐오하지 말고, 니체의 말처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그 안에서 창조성을 발견하는 인생을 살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브런치의 이벤트로 인해 구독자가 3배를 넘었습니다. 150편이 넘는 글을 써오면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많은 분들이 구독해주시는 걸 보고 책임감도 많이 생기고 글을 쓰기가 어려워져 오랜만에 글을 남깁니다. 제 브런치는 직장인으로 살면서 취미로 즐기는 영화와 음악에 대한 글과 '청년들'에 대한 글로 채워져 있습니다. 앞으로 좋은 글을 남기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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