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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제 Sep 10. 2015

후쿠오카 여행기 #4

세상 어디에서나 사랑은 아프다

아침이 되니 흠뻑 내리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치고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 쬐었다. 어제산 새 옷을 입고 길을 나서니 이 곳에 오래 살았던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일정도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바다가 보고 싶어 바다가 예쁘다는 모모치 해변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어제 바에서 만난 직원이 알려준 일본의 'ONE OK ROCK'이라는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흥겨운 음악이 내 몸도 가볍게 했다.

모모치 해변 중심에 아름다운 건물이 있었다. 들어가보려고 하였는데 알고 보니 이곳은 결혼식장이었다. 이런 곳에서 결혼을 맹세하고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낸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일본은 결혼식을 우리나라처럼 하지 않고 정말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몇 시간이나 식을 진행한다고 한다. 나는 지금 우리나라의 방식보다는 이런 방식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정말 축하해줄 사람만 모시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결혼식.


뒤쪽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원이 일본말로 주문을 도우려고 했다. 나는 영어 메뉴를 요청했고 일본 직원은 내가 일본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다. 너무 편해 보여서였을까? 호텔을 나서며 했던 생각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음식은 한마디로 말해 정말 맛이 없었다. 피자는 하나도 굳어있지 않았고 사이드 부분은 조금 타 버렸다. 도저히 손으로 들고 먹을 수 없어 포크로 조금씩 잘라 먹었다. 그래도 멋진 풍경 속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괜찮았다.


모모치해변에서 만난 사람 

그리고 다시 해변으로 나와 해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왼편으로 한 여성이 웨딩홀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한 삼십 분쯤 지났을까? 다시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때까지도 그 여성은 계속 바다와 웨딩홀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조금 궁금해졌다. 저 사람은 왜 혼자 이 해변에 앉아 있을까?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그녀는 10분 정도 더 앉아있다 방파제로 자리를 옮겼다. 나도 방파제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잠시 여기에 앉아도 될까요?


그녀는 잠시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헌팅을 하려고 온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내 외모로는 헌팅이 불가능하다라고 말을 했다. 생각지도 못한 농담에 그녀가 밝게 웃었다. 그 뒤로는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온 평범한 직장인이고 취미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삶의 이야기들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설명하고 왜 이곳에 혼자 앉아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웃으며 친구가 이곳에 있어서 여행 왔다고 했다. 친구가 일하는 중이라 잠시 시간이 비는 동안 혼자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다고 했다. 웨딩홀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슬픔을 느꼈던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물었다. 


혹시 지금 기다리는 사람이 남자친구인가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웃으며 내게 말했다. 

제 비밀을 물어보시네요


사실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은 남자친구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바다를 바라보다 입술을 움직여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부인'이 있다고 했다. 그녀와 그가 만난 건 4년 전 그녀가 잠시 고향에 돌아가 있을 때 친구와 술자리에서 아는 지인을 부른다고하여 만났다고 했다. 당시에는 그에게 애인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만나게 되었고 그와 깊은 사이가 되었을  때쯤 그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그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고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우연히 다시 그를 만났다고 했다. 그녀는 그를 보는 순간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날 함께 시간을 보내고 다시 그와 만난다고 했다. 그와는 그가 출장을 갈 때만 만난다고 했다. 출장지에서 시간을 맞춰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전부일뿐 평소에는 연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정말 친한 친구 이외에는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도 되냐고 물었고 그녀는 알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떤 결말을 원하시나요?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다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도 더 묻지 않았다.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도 되냐고 물었다. 그녀는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말했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서나 아프다. 아픈 사랑이 많은 세상이 슬프게도 느껴지지만 그래도 사랑이 있어 사람들은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아픈 사랑을 끝내고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고 상처받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나의 마음을 그저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라는 말로 전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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