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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제 Sep 10. 2015

후쿠오카 여행기 #3

일본의 평범한 인생을 보다.

오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온천탕에 몸을 맡기니 신선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야외 온천은 처음이었는데 왜 사람들이 온천을 즐기는지 알 것 같았다. 시원한 공기를 맡으며 탁 트인 공간에서 자연과 함께 있으니 나 자체가 자연 속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야외라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지만 사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둘러 볼 수 있었다. 한국어로 쓰여진 많은 주의 문구들을 보며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은 걸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어느 나라나 그런 사람들은 있기 때문에 특별히 창피해하지 않았다. 그저 좋은 인상이라도 이 곳에 남기기 위해 내 몸가짐을 조심할 뿐이었다. 온천 후에 나온 조식도 정갈한 음식들로 가득 채워져 여행길을 든든히 해주었다.

체크아웃 후에 어제 가보지 못했던 샤갈 미술관으로 향했다. 버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발길을 서둘렀다. 일본의 시골길은 한 명이 걸어가기에도 좁은 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발짝만 옆으로 가도 찻길이라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이렇게 천천히 가는데 나는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걸까? 도심의 속도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다. 사실 서두를 이유는 별것 아니었는데.. 버스 시간을 미루기로 하고 천천히 걸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모자를 쓴 귀여운 신호등 표시와 길가에 수 많은 꽃들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이곳에서는 천천히 걸어야겠다.


샤갈 미술관은 생각보다 많이 작았다. 몇 평 되지 않은 투룸에 샤갈의 작품이 30~40점 정도만 있을 뿐이었다. 서커스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 몇몇 작품들은 내 눈길을 끌었다. 샤갈은 러시아에서 태어나 러시아의 신앙적인 요소가 그림에 많이 녹아있다고 하였다. 서커스 작품 중에서 큰 사람의 얼굴 속에 많은 형상들이 들어있는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이 있었다. 그 작품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부처의 얼굴이 생각났다. 종교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어떠한 공통 분모가 있는 것 같았다. 


샤갈 미술관에  다녀온 후 식사를 하고 후쿠오카로 돌아왔다. 호텔에 돌아와서 한 숨 자고 나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정하고 오지 않은 여행이었지만 후쿠오카에서 라면을 먹는 것과 츠타야서점에 가는 일은 정하고 출발했기 때문에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버스에 몸을 실었다. 비 오는 창밖 버스를 바라보다 보니 외국인들이 많이 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일본의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을 보고  싶어졌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Dan  City라는 라이브 클럽을 찾아 그곳에 방문했다. 오늘은 Open Mic(현장에서 사람들이 신청하여 무대에 오르는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비가 세차게 오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있지는 않았지만 공연은 1시간 30 분정도이어 졌다. 그 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 직장인이라고 했다. 비틀스의 커버에서부터 일본의 올드팝과 올드락을 연주하고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노래를 못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수준급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이곳에 한국인이 찾아온 것 아니 외국인이 온 것은 정말 오래간만이라고 하였다. 신기했는지 직원 두 명이 바 앞에 앉은 나에게 자꾸 말을 걸었다. 악기를 연주하는지 무슨 일로 일본에 왔는지 이곳은 어떻게 알고 왔는지를 물어보았고 나는 짧은 일본어로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 직원들은 밴드를 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일본도 경기가 좋지 않아 젊은이들이 많이 꿈을 포기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들 또한 유명한 밴드가 되는 건 포기했다고 한다. 그저 하루하루 즐겁게 지내고 싶은 게 꿈이라고 하였다. 어느 나라의 젊음이나 쉽지 않았다. 혼자 여행 왔다고 하니  이곳저곳 좋은 장소들을 많이 추천해주었다. 이 곳은 내일은 공연이 없어 올드 락을 들을 수 있는 라이브 클럽을 추천해주었고 좋은 악기 상점을 소개해주었다. 일본의 밴드는 예전 밴드밖에 모른다고 요즘 좋은 일본의 아티스트를 소개해달라고 하자 AKB라는 아이돌을 소개해주었다. 나는 질 수 없어서 EXID 하니의 직캠을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여주었다. 두 젊은 직원은 그 날의 대화중에 가장 큰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날 무대에 선 연주자들과도 잠깐씩 이야기를 나눴다. 직장인도 있고 평범한 주부도 있었다. 모두 음악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내일 또 좋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후쿠오카 여행 중에 여행기를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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