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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피스토 Feb 19. 2021

루카 구아다니노: 욕망하는 인간, 사랑의 본질 (1부)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 감독 탐구






영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Narziss und Goldmund(2020)>


욕망하는 인간, 사랑의 본질을 비추다



인간은 자신과 반대되는 것을 욕망한다.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보라. 감성을 대변하는 나르치스와 이성을 상징하는 골드문트가 서로에게 끌리듯이, 인간의 욕망은 자신과 다른 것을 향한다. 골드문트는 자유로운 몽상가 나르치스를 만난 뒤 현실 경험을 넓히며 성숙해진다. 골드문트는 나르치스를 통해 사랑과 성의 쾌락이 삶을 진실로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며, 가슴을 채워줄 유일한 것이었다고 회상한다. 나르치스에 대한 우정과 사랑은 골드문트에게 예술적 동경을 심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현실 경험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들은 서로가 정반대였지만, 서로의 스승이 되어주었다.




영화 <아이 엠 러브(I am love)>  엠마(오른쪽)와 안토니오(왼쪽)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엘리오(왼쪽)와 올리버(오른쪽)


대립적인 힘, 사랑으로 빨려 들어가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아이 엠 러브(I am love)> 속 연인관계의 주인공들은 그 어떤 형용할 수 없는 대립적인 힘에 의해 서로에게 빨려 든다. 그들은 단순히 사랑에 빠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학문적 시심을 공유한다. 이와 같은 시간들은 그들의 삶을 더없이 아름답고 풍요롭게 채워준다.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는 데 있어 사회적 위치는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도 잊게 만들 정도로 설렘과 벅참이 차오르는 장면들은 오로지 인간 대 인간의 매력으로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아이 엠 러브>와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인간의 욕망을 햇빛에 반짝이는 호수의 물결 위로 꺼내 펼쳐 놓아 보여준다. 영화는 사랑이 비견할 수 없이 아름답고도 이상적인 가치라는 것을 섬세하고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는다. 그들의 사랑은 욕망과 결핍, 지성과 감성, 방황과 동경과 같은 상반되는 성질이 만나 한층 풍요로워지는데, 헤세의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 나온 독백을 통해서 두 영화에 드러난 사랑의 정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의 목표는 상대방의 세계로 넘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는 거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존중해야 한단 말이야. 
  그렇게 해서 서로가 대립하면서도 보완하는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2002), 임홍배 역, 민음사, 99쪽




스피노자는 욕망이 인간의 본질이라 말했다. 욕망은 또한 인간 존재의 핵심에 있으며, 본질적으로 결핍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완벽한 인간상을 상징하지 않는다. 서로의 내면적 갈등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면서, 이성과 감성 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루카 구아다니노는 자신의 영화 속의 우정 어린 관계를 통해 연인들을 등장시킨다. 서로의 결핍을 채워나가며, 서로를 욕망하는 것이다.




하나가 되려는 욕망, 사랑에 관한 담론 

 


인간은 어째서 필연적으로 자신과 반대되는 세계에 있는 사람에게 끌릴 수밖에 없는가? 두 영화의 주인공인 엠마와 안토니오, 올리버와 엘리오가 서로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던 이유는 플라톤의 <향연>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사랑이란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과 하나가 되어 완전해지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하나가 되려는 욕망이라는 것은, 이 욕망을 충족시켜줄 다른 반쪽은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사랑은 다른 사람의 성품이나 소양과 대비되는 고유한 개별성에 대한 반응이다.


이 유일무이한 것과 하나가 되려는 욕망은, 곧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가 함께하는 삶을 열망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들이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려 하지 않고, 함께 있으면서 서로에게서 무엇을 얻기 바라는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서로 하나가 되려는 욕망은 사랑받는 자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주는 본질적인 즐거움과 직접 연결된다. 사랑받는 자의 유일함과 사랑받는 자와 함께 있음의 즐거움은 타자에 대한 욕망인 에로스가 성교 행위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는 것을 뜻한다. 에로스는 이성애든 동성애든 모두 상실한 본성의 온전함을 회복하도록 이끌어 가는 것이다. 엠마와 안토니오의 만남,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은 사회 속에서 결핍된 자신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각각의 사람은 하나였다가 둘로 나뉜 반 편의 존재이기에 다른 반편을 끊임없이 찾게 된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가능한 한 서로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욕망과 노력을 사랑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인간은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간에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만났을 때 사랑의 결속이 가장 강해서 서로 떨어지려 하지 않고 평생을 같이 살아간다. 이것은 단순한 성적인 결합의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신의 본성을 되찾아 온전해지려는 갈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간들 간의 사랑의 본질은 결국 인간의 본성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서로 이끌리는 대립되는 본성을 결합시켜 둘을 하나로 만듦으로써, 완성적 인간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랑의 기원에 관련한 고대 알레고리 벽화




*다음 글은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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