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창에 “로또”를 검색한다. 이번 주 1등은 4명, 역대급의 당첨금이 1등을 기다린다. 매우 부럽고 부럽지만, 나의 목표는 아니므로 속으로 축하의 마음을 건넨다. 나의 목표는 아주 소박한 3등! 어제 등산을 하며 쌓여 있는 돌탑에 간절한 마음을 담은 돌 하나를 놓고 왔고, 이번 주 월요일에 그럴싸한 꿈도 꾸었으니 이번 주엔 내가 주인공이 아닐까?
그랬지만, 결과는 역시나 아니었다. 1,3, 30…. 참으로 어려운 숫자들이 6개가 뽑혔는데, 나의 번호엔 그 숫자들이 한 개밖에 없다. 난 정말이지 건방지지 않고 소박하게 3등을 원했는데, 그 마저도 나보다는 더 급한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싶다. 하긴, 6개의 숫자 중에 5개가 우연의 일치로 맞는 건 소박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나는 건방진 마음가짐으로 이 게임에 임했고, 행운의 여신에게 이런 마음가짐이 꽤 괘씸했나 보다. 어쨌든, 결과는 다음 기회에 이다. 지금까지의 당첨금을 보니 3등의 당첨금은 약 10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 3등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아이패드 때문이었다. 물론 카드 할부나 모아 놓은 여유자금을 조금 보태서 살 수는 있지만, 일을 쉬고 있는 지금에선 그 마저도 선뜻 쓰려하니 마음이 잔뜩 쫄려온다. 3등에 당첨되면 이 물건을 꼭 사야겠단 생각만으로 몇 주째 버텨왔는데 이젠 그냥 내가 사야지 싶다. 이럴 거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진작 사 버릴 걸. 후회가 밀려온다.
5장 정도 샀는데.............. 1장에만 당첨숫자가 1개 ...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스운 상황이다. 로또에 당첨이 되면 아이패드를 사겠다니. 이렇게나 불확실한 확률에 의지하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첫 번째는 당장 아이패드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겠구나 였고, 두 번째는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이다. 첫 번째 이유보다는 두 번째 이유가 분명 압도적이었다. 나도 사실 어느 정도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걸 은연중에 알고는 있었다.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로또 당첨이라는 일어나기 희박한 행운을 방패 삼아 합리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는 모든 가능성을 멈추게 하는 무서운 말 일 것이다. 살아오면서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로 망설인 적이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었지만 취업준비를 하며 이럴 때가 아니라며 마음을 접었던 26살, 빨리 운전연수도 해야 하는데 아이패드와 같은 이유로 미루고 있는 차 구입을 망설이는 34살, 이렇게 늘어져서 잠잘 때가 아니라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뭐라도 하러 나갔던 주말 등 선택의 순간에 나름 미래를 생각한다며 미루었던 현재의 즐거움이나 가치 있는 일들이 떠오른다. 왜 그렇게 생각한 걸까?
지금이 아니라 훗날을 생각해야 한다는 태도는 좋게 말하면 미래지향적인 태도, 나쁘게 말하면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힌 변명 정도가 맞을 수 있겠다.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며 지금의 행동을 망설이는 일들을 얼마나 많이 했었을까. 이럴 때 가 아니라 하더라도 굳세게 밀어붙였다면 어떤 결과가 생겼을까. 취업준비를 하는 동안 많은 시간을 활용해 여러 곳을 여행 다녔다면 여행지에서 얻은 힐링이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주었겠고, 진즉 차를 샀다면 넓어진 행동반경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취업시장에서 좀 더 유리했을까. 직장인 시절 주말 아침 늘어져 있었다면 다음날인 월요일에 보다 회복된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 같다. 비록 통장잔고는 조금 비워지고, 그 순간은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을지언정 필시 그랬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라는 생각은 왜 자꾸 하게 되는 것일까? 그러면 도대체 “내가 지금 이럴 때 지.”는 언제 오는 것이고 누가 정해주는 것일까?
이럴 때는 언제 올까?
“이럴 때”라는 적합한 순간이 딱 맞춰 나타나는 것은 사실 로또 당첨만큼이나 불확실한 것 같다. TV에 나오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지인들의 말을 들어보아도 적합한 때가 도달해서 그때 행동했단 말보다는, A와 B의 순간이 왔을 때 지금이 바로 그럴 때라고 스스로의 굳은 믿음 아래 판단했거나, 그럴 때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선택이 어떤 나비 효과를 가져올지 모르니 긍정의 가능성을 보고 지금 행했다는 말들을 더 많이 들었다. 사람은 적정한 때를 예측할 수 있는 초능력이 없기에 누구나 A와 B의 순간에서 스스로 이럴 때(행동할 때)를 결정하고, 그 결과가 긍정을 불러오리라는 기대감을 어느 정도 갖는다는 것. 나에게 필요한 것도 지금을 “이럴 때(행동할 때)”로 믿을 수 있는 자신의 생각에 대한 믿음과 긍정적인 결과 룰 기대하는 마음, 혹 부정적인 결과가 있다 한들 그것 조차 나의 성장 경험으로 삼을 수 있는 지혜. 그것이다.
아이패드를 사면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계획하는 몇 가지 플랜들을 위해 필요할 수 있는 물건이고, 좀 비게 될 통장잔고보다는 분명 상위에 있는 가치이다. 통장잔고는 조금 비워지게 될 테지만 하고 싶었던 일들을 조금 더 빨리 경험할 수 있고, 내 마음도 훨씬 즐거워질 것 같다. 지금이 바로 아이패드를 살 “내가 지금 그럴 때”이다. 더 미룰 수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