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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런 Aug 21. 2020

K좀비, 서비를 만나다 2

코로나 속 병원진료기

코로나 속 병원 진료기

숱한 의사를 만나왔다.

천천히 환자의 말을 듣는 의사, 질문에도 버럭 하는 권위적인 의사, 희망적인 대안을 말하는 의사, 극단의 예후까지 말해주는 의사, 걱정해 주고 공감해 주는 의사, 약만 처방해 주는 의사,  쉬운 말로 설명해 주는 의사, 그냥 복잡하니 결과만 알고 계시라는 의사..

그러다 보니 나도 의사의 유형을 분류하여 대하게 된다. 질문을 더하거나 접는 식의 대응이 대부분이긴 하나,  그 속에서 나도 의사의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빼앗지 않으려 하거나 우호적인 반응으로 기운을 북돋을 수 있도록 나름의 노력을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런 선별을 하지 않기로 했다.

땡볕에 걷느라 피곤했고, 진료거부를 한번 당하고 나니 너그러워졌다. 서비의 스승, 어의 이승희를 뵙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어기적어기적 진료실 문을 열었다.


근데 이 분은 인기척을 못 느끼나 보다.

초진이라 진료기록이 없을 텐데도 컴퓨터만 쳐다본다.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진료실을 찾아온 손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사람은 봐야 하지 않냐는 불만이 울컥 올라왔으나 워워~~ 나이브 한 좀비가 되기로 하지 않았나!


최대한 간결하게 증상을 브리핑했다.


[3월 말~4월 초]

오른쪽 뒤통수 아래. 단발성 통증 1회, 1초 경미함

[4월 24일]

동일 부위 단발성 통증 1회, 1초

[5월 27일]

동일 부위 단발성 통증 1회, 1초. 작은 망치로 친 느낌

[7월 1~7월 2일 진료 전]

동일 부위 통증 횟수 minimum 10회 이상

통증의 지속시간(1초~2,3분 이내)과 강도가 매번 상이함. 강한 통증이 다수.

수면 중에는 통증 없음. 낮과 저녁까지, 주로 활동 시간 중에 통증 강함.


목의 통증이나 뻐근함은 없냐고 했다.  고통에 둔한 편이긴 하나 목이 불편하지는 않다고 했다.

의사가 머리를 왼쪽 45도 오른쪽 45도 방향으로 돌려본다. 희한하게 지금까지 못 느꼈던 고통이 오른쪽 목 뒷덜미에서 느껴진다. 엑스레이와 CT를 찍어 보자고 했다.


간호사의 호명에 바로 불려 갔다. 귀걸이와 모자 기타 장신구들을 모두 빼라고 했다. 땀에 절었을 모자마저 벗으니 흉측하다.

서너 가지 각도로 몇 컷 찍어내고 나니 커다란 도넛 같은 기계 앞에 있는 침대에 누우라고 했다. 조금 오래 찍을 테니 움직이지 말란다.  CT를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어 '조금 오래'라는 것이 몇십 분은 되는 줄 알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다음 잘 준비를 했다. 좀비가 아니라 관 속에 누운 뱀파이어 같았으리라.  눈까지 감고 나니 스스로 레드썬이 가능하다. 빠져든다 빠져든다~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뭐 하냐고, 일어나란다. 5분 아니 3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5분 뒤 다시 만난 의사는 3,4번과 4,5번 오른쪽 목뼈 사이에 디스크가 있으나 경미하여 수술 같은 처치가 필요하지 않다,  신경 주사를 맞아보고 효과가 있으면 처방약과 물리치료를 병행할 것이라고 했다. 효과 없이 후두신경통이 계속되면 뇌 쪽의 정밀한 검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예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안 아프게만 해주십쇼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신경 주사를 맞으러 간호사를 따라갔다.


상의 탈의 후 가운을 하나 입고 엎드렸다. 목덜미에 뭔가 차가운 물질을 쭉쭉 바른다. 간호사가 아닌 담당 의사가 직접 놓을 것이니 이 상태로 잠시 대기하라고 한다. 주사라면 언니~ 안 아프게 놔주세요 하고 벌벌 떨다 보면 이미 다 끝나는 그런 종류를 생각했는데 심상치 않다.


수 분 뒤 들어온 의사는 조금 아플 수 있다더니 오른쪽 목덜미에 뭔가 묵직한 침을 세 방 후비듯 찔러 넣었다. 이곳은 신경외과인가 한의원인가...

한의원 침은 귀엽게 따끔따끔한데 여기는 대못을 쑤셔 박는 느낌이었다. 국소마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랫입술 꽉 깨문 나의 입안에서는 짐승의 것과 다름없는 소리가 육중하게 울려 퍼졌다. 치료실이 점차 도살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예수의 고통이 이런 것인가. 감히 숭고하다 받들어지는 자의 고통까지 운운할 정도니 내 정신이 아득해지긴 했나 보다.


간호사가 어지러울 수 있으니 조심조심 내려오라고 한다. 빨리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 벌떡 일어나 신발을 신으려는 나를 부축까지 해주신다.

'괜찮아요, ' 말하려던 찰나 시야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산발한 머리채를 흔들며 몸을 꺾는 나를  그녀는 능숙하게 잡아채 곧 다른 침대로 눕히고는 손가락에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끼워 주었다.

'"주사제가 퍼지면서 어지러울 수 있어요. 여기서 1시간 정도 푹 쉬셨다 나가세요. 상의는 여기 접. 어. 둘. 께. 요."


 오.. 서비....

그대가 여기 또 있었구려....


 


나의 진단명은 M501(경추간판 장애),  G442(긴장성 두통)이었다.



20여 분간 안정을 취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비는 만류하였으나 곧 해는 지고 있었고, 나의 본격 밤 타임을 준비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 사이 볕의 살기가 누그러지고 선선한 바람도 조금 불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방향을 내다보니 역시나 아득하다. 만보기를 확인해보니 12000보가 넘는다. 5 천보를 넘기면 뿌듯해하고, 7 천보를 넘기면 기특해하던 내가 이 정도면 실크로드 횡단 수준 아닌가.. 그것도 아파 죽~~~ 욱~겠는 날을 골라서 넘기고야 말다니... 더 걸었다간 곤죽이 될 것 같아 택시를 찾아보았다.


전방 10m 한 대 포착. 목표물을 향해 어기적어기적 최선을 다해 걸어갔다.

중간쯤 가까워졌으려나.. 한 사내가 냉큼 올라타더니 슝~ 떠나 버린다.

한국 땅에서 스웨덴 좀비같이 굴었다고 취급 안 해주는가- 허탈감에 포효하려던 순간 다른 택시 한 대가 그 자리에 안착한다. 눈빛을 번뜩이고 과호흡으로 입을 쫙 벌리며  스브스브 맹렬히 뛰어갔다. 목덜미도 잡았으니 팔도 적당히 꺾였을 것이다.  머리부터 들이밀고 뿅뿅 아파트요! 괴성을 질렀다.

친절한 기사님은 횃불을 던지지 않고 곧바로 안락한 나의 서식지로 데려다주었다.




p.s

신경 주사를 맞은 오른쪽 목 뒷덜미가 묵직하게 아려왔지만 후두 통은 없었다.

사실 호기롭게 맥주 두 잔 마신 1시간 후 두 번의 찌릿한 통증이 올라왔으나 이후엔 말끔히 사라졌다.

(의사 말 안 들은 죗값인 걸로)

다음 날 다시 진료를 보고 호전된 것을 확인하고 물리치료를 받았으며 이후 꾸준히 약을 먹고 있다.

1주일 후 재진료를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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