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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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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Apr 20. 2024

막걸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 불편한 속


막걸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불편한 속 때문이었다. 이십 대 중반까지는 돈이 없어서 마시는 술 혹은 홍어를 먹을 때 마시는 술로 인식하고 있었다. 사회 초년생 때 선배들이 데려간 홍어찜 집은 잊을 수가 없다. 코를 찌르는 강한 암모니아 향을 지닌 홍어찜은 후배를 놀리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강한 냄새를 풍기는 홍어찜과 함께 마시는 막걸리는 암모니아 냄새를 중화시켜 주는 술 같았다. 온몸에 밴 홍어 냄새와 함께 마신 막걸리로 인하여 트림이라도 나오면 대중교통 이용 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이런 불편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막걸리를 좋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 몸에는 셀 수 없을 만큼의 미생물이 존재한다. 사람마다 미생물의 분포가 다르지 않나 의심해 본다. 어떤 사람은 막걸리를 마시면 설사를 하고, 다른 사람은 맥주를 마시면 설사를 한다. 타고난 유전자, 자라온 환경, 식습관 등에 따라 각자의 몸속 미생물은 저마다의 균형을 이루고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음식의 종류에 따라서 장내 미생물의 균형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있다. 상한 음식을 먹는 경우 배탈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장이 안 좋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 땐 장염에 걸려 처음으로 3일간 결석했다. 찬 음식을 먹는 것이 두려웠고 청량음료를 마시면 방바닥에 떼굴떼굴 구르며 배를 움켜 잡았다. 지사제를 먹지 않으면 설사로 인하여 탈수증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런 현상은 성인이 된 후에도 삼십 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막걸리를 주로 마시기 전엔 술을 마신 다음 날 설사가 정규 코스처럼 따라다녔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변화가 시작되는 것 같다. 스스로 깨달은 후 변화가 시작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을 만나서 변하는 경우에 비하면 극히 드문 것 같다. 설사로 고생하던 내게도 막걸리를 추천해 준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좋지 않은 기억을 추천으로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막걸리에 관한 긍정적인 효능에 관한 기사를 봐도 그런가 보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결국 변화의 시작은 속이 어느 정도 고장 난 이후였다. 병원에서 술을 마시지 말라는 강력한 권고를 들은 후 속을 챙기기 시작했다. 더는 아프지 않을 정도로 치료한 후에 평소 즐기던 다른 술을 멀리하고 막걸리를 찾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막걸리를 마신 이후에는 속이 더는 아프지 않았다. 만성 질환처럼 달고 다니던 설사와도 이별했다.


물론 모든 막걸리가 전부 맞는 것은 아니었다. 자주 가는 동해 바다의 파도를 예로 들면, 어떤 날은 파도가 거칠었고 어떤 날은 호수처럼 잔잔했다. 딱 한번 가본 동해 바다에 파도가 거칠었다면, 동해 바다의 파도는 항상 거칠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잔잔한 동해 바다를 만났다면, 파도가 잔잔한 바다로 기억할 수도 있다. 전국을 다니며 여러 종류의 막걸리를 마셔보며 대부분 속이 불편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 간혹 생소한 막걸리를 마신 경우에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배가 부글거리며 설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도 그 막걸리는 나의 장내 미생물과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말 맛있는 막걸리를 만날 때도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지? 아마도 내가 막걸리에 빠지게 된 가장 큰 이유가 감탄사가 나올 정도의 맛있는 막걸리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막걸리의 오덕을 논하지 않더라도 맛있는 막걸리를 마시는 즐거움은 짧은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다. 200 여종의 막걸리를 접해본 시점에서 인상에 남았던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 망원동에서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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