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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천 Apr 28. 2024

서울 장수 막걸리

인공 감미료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 하지만, 글을 쓴다고 해도 공부가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을 글로 배웠어요'라는 유행어가 웃음을 자아내듯이 사랑은 글로 배울 수 없는 극도로 어려운 명제이다. 어렵고 복잡한 사항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싶은 욕구가 존재하는 사람에겐 나름의 분석을 시도한다. 혈액형에 따른 성격을 말하기도 하고 MBTI를 이용해서 인간의 성향을 정의 내리려고 시도한다. 에니어그램이나 주역을 인용해서 자신이 아는 방식으로 대상을 파악하려는 사람도 있다. 혹시 인간에게는 다양하고 복잡스러운 사항을 단순하게 이해하려는 욕구가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글을 쓰기 위해 낯선 공간을 찾아가기도 한다. 글을 쓰는 것도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직장인이 회사에서 일을 하듯, 주부가 집안일을 하듯 그렇게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자신의 루틴을 만들어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 글쓰기 에너지가 충만할 때라면, 장소를 불문하고 글을 쓸 수 있다. 집에서, 카페에서, 심지어 지하철에서도 쓸 수 있다. 가슴속에서 이야기가 터져 나올 때면 어떤 글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장르가 달라도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런 열정의 시간이 지나면 마그마처럼 끓던 에너지도 점점 식어간다. 그런 시기가 지나면 글을 쓰기 위한 새로운 경험이나 공간을 찾게 된다.


유산균의 효용을 생각하며 마시는 막걸리의 경우도 맛을 단순화하려는 욕망과 대량생산의 욕구가 투영이 된 것 같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찾아다니는 막걸리에서도 아스파탐이나 아세설팜칼륨 혹은 사카린 같은 합성감미료를 만날 때 그런 생각이 든다. 쌀, 누룩, 물로만으로도 충분히 빚을 수 있는 막걸리에 인공감미료를 섞어 천편일률적인 맛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보편화 또는 대중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마셔본 막걸리의 종류가 200가지가 넘는다. 합성감미료가 들어간 막걸리는 어떤 지역이든, 역사가 얼마가 되었든 맛이 비슷했다. 서울에서 마셨던 막걸리를 대구나 광주에서 마시는 기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표만 다르지 눈을 감고 마시면 다른 막걸리인 줄 몰랐을 것이다. 합성감미료가 주는 보편 일률적인 맛에 질리면 글을 쓰려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듯 다른 막걸리를 찾게 된다. 안타깝게도 합성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막걸리의 종류가 현저하게 적다. 합성감미료가 들어간 막걸리가 모두 같은 맛을 내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엄청나게 많은 책을 쓴다고 해도 각각 다른 이야기가 담겨있듯 합성감미료를 사용한 막걸리도 맛이 다른 경우가 많다. 아마도 함량의 문제인 듯싶다. 신당동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이종민 원장이 데려간 연남동의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막걸리가 생각난다. 추천으로 마셔본 막걸리엔 합성감미료의 단맛이 느껴지지 않았고 산뜻하고 맑은 맛이 났다. 호기심에 병을 들어 라벨에 찍힌 원재료를 살폈다. 거기엔 분명 합성감미료가 표시되어 있었다.

“인공감미료가 들어갔는데, 이런 맛이 난다고?”

깜짝 놀란 눈으로 감탄하자 그 소리를 듣고 주인장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다른 곳에 판매하는 막걸리에는 합성감미료가 들어가지만, 자신이 주문한 막걸리에는 특별히 합성감미료를 빼고 만들어 보내준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생각하며 주인장의 설명을 들었다.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단 맛이 나는 막걸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였다.


서울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막걸리는 ‘서울 장수 막걸리’다. 서울 막걸리는 서울에서 막걸리를 생산하는 양조장 51개를 통합하여 연합 제조장을 만들었다. 서부, 영등포, 구로, 성동, 도봉, 태릉, 강동 7곳에서 같은 브랜드의 막걸리를 제조하고 있었는데, 최근 영등포 제조장이 문을 닫아 6곳에서 만들고 있다. 제조장마다 맛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차이는 미세하다. 더운 날씨에 유통과정에서 맛이 변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같은 제조장에서 생산된 막걸리라도 맛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 막걸리는 신선하고 차갑게 마셔야 맛이 좋다. 특히 등산이나 탁구를 한 다음 마실 때 청량감이 가장 좋다. 서울에 살다 보니 가장 자주 많이 마시는 막걸리이기도 하다. 막걸리의 유통기한 때문에 대부분의 식당에서 다양한 막걸리를 가져다 놓지 않는 이유도 한몫한다.



서울 장수 막걸리의 경우 최근 디자인으로 이야기하면, 초록색 뚜껑이 수입산 쌀로 만든 서울의 6곳에서 제조하는 막걸리이고 흰색 뚜껑이 국내산 쌀로 만든 진천에서 제조하는 막걸리다. 개인적으로는 진천에서 생산하는 서울 장수 막걸리를 더 좋아한다. 참고로 진천의 제조장은 서울탁주제조협회 산하의 서울장수주식회사라는 법인의 제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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