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벼리 작가의 동시집<요괴전시회>를 읽고
혀를 내밀어
날름날름
도마뱀 혀는
두 개로 갈라져 있어
남아프리카 사는
박쥐 혀는
제 몸보다 더 길어
하루 종일 흉만 보는 다정이 혓바닥은
가시 선인장
빨간 노을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혀를 내밀어
"메
롱"
사피엔스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떤 단어가 생각이 날까? 난 단연코 '이야기'다. 관계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이야기로 삶을 살아간다. '뭐 먹었어?', '잘 잤어?', '피곤하다.', '등산 가자!', '술 한 잔 할래?' 언어로 표현하고 언어로 이해한다. 간혹 눈빛 만으로 알아듣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언어로 소통한다. 그런 언어를 유독 험담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독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언젠가 그 독이 자신을 해칠거란 생각을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그런 사람에게 메롱이 필요할 것 같다. 메~롱~.
장발산
우리 집 근처에
자주 올라가는 정발산이 있다
수업시간에 정반산을
장발산으로 잘못 받아썼다
분명히
정발산이라 썼는데
손가락이 잽싸게 산등성이를 탔다
나는 거칠게 뻗은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나만 보면
'장발'이라고 짓궂게 놀리던
동구 말이 떠올랐다
나는 잘못 쓴
장발산을
조용히 읽어 보았다
꿈틀꿈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장발산이
기지개를 활짝 켰다
성큼성큼
동구 앞으로 걸어갔다
강벼리 작가의 출간 파티 때 손가락이 산등성이를 타는 것을 봤다. 강벼리 작가가 젊은 시인에게 사인을 해줄 때 그의 이름을 실수로 적었다. 서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장발산이란 시가 떠올라 이야기했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웃으며 상황이 지나갔다. 젊은 시인은 오히려 그 날을 기억할 수 있어 좋다며 수정을 말렸다.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잘못 적었는데 웃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좋은 감정과 여유가 마음에 가득하기 때문은 아닐까. 실용과 효율이 판치는 세상에 우리가 찾아야할 언어는 실수에 대한 비난보다 여유이다.
요괴 전시회
가까이 오지마
요게,
요괴라고 부르지 마
내가 누군지 아직 몰라
내 정체를 드러낼 때가 아냐
그저 조용히 지내고 싶어
내가 달라졌다는 것
아는 척만 하지 말아 줘
수백 년 동안
너무 오래 잠들었던
나를 살포시 알아 가는 중이야
이렇게 남아도는 힘을
어디에 쓸지 모르겠어
그렇다고
도와주려고 하지는 마
의지하고 싶지 않아
다시 약해지는 건 싫으니까
자꾸
너한테 맛있는 냄새가 나
언어는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된다. 동시가 주는 매력은 언어를 놀이와 상상으로 초대한다는 점이다. 요괴 전시회에 실린 동시에서 독특한 상상의 세계를 만나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