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잘 자라고 있는 게 맞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닌지도 내가 일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혼자 놀기 좋아하던 아이는 이제 놀이터만 가도 처음 보는 또래와 놀고 싶어 할 정도로 사회성이 키워졌고 나 역시 일과 육아를 로봇(?)처럼 해나갈 만큼 이 생활에 적응해 갔다. (전이나 후나 힘든 건 똑같지만 말이다.)
그런데 조금씩 불편함이 생긴 건 그때부터였다.
아이가 30개월이 넘었을 때 즈음.
‘00 엄마, 00는 기저귀 뗐어요?’
‘저희 아이는 26개월쯤 뗐어요’
‘저희 애는 28개월 때 뗀 것 같아요.
‘저희 아이는 조금 늦게 뗐어요. 31개월쯤?
근데 옆반에 한 아이는 20개월인데 기저귀를 뗐데요. 진짜 빠르죠?’
‘다들 정말 빠르네요...’
당시 33개월이었던 아이는 기저귀를 하고 있었다.
사실 배변훈련을 시작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 더 빨리 배변훈련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실패. 아직은 팬티가 어색한 아이, 아직은 기저귀가 좋은 아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하지 못한다는 말에 시작은 20개월쯤 했지만 1년 넘게 그저 기다리기만 했었다.
아이가 하고 싶어 할 때까지. 그저 묵묵히.
그런데 아이반 또래들이 하나 둘 기저귀를 뗐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금씩 커져가는 조바심. 일전에 아이의 영유아 검사 때 의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렸다.
'아이들의 커가는 과정은 아이들의 기지나 발달상황에 따라 조금씩 빠르기도 하고
또 늦어지기도 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서 그저 기다리겠다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준이는 아직도 기저귀 차고 있어?’라는 주위의 말이 들릴 때면 내가 아이를 잘못 케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바심은 더 커져만 갔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말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상황들.
누구는 혼자 옷도 입고, 밥도 먹고 심지어 영어도
하고, 한글도 안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는 왜?
그 조바심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졌다.
‘준아, 친구들은 벌써 팬티 입는다는데 준이도 이제 변기에 쉬해보자.’
‘준아, 이제 네가 혼자 수저로 밥 먹어야지’
‘준아, 오늘은 혼자 바지 입어볼까?’
‘준아, 엄마랑 한글 공부해보자 재미있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그저 해맑게 ‘네’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여전히 발전은 없다.
나의 한숨과 조바심만 늘어갈 뿐.
그날 밤,
아이는 나의 팔을 배고 잠자리에 들더니 말한다.
‘엄마, 잘못했습니다’라고
순간 '이게 뭐지?'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네 살배기 아기가 뭘 안다고.
'내가 뭘 한 거지?'
나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곤히 잠든 아이를 보며 다짐했다. 아이가 스스로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사실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생기는 조바심들이 있다.
'뒤집기 할 때가 됐는데'
'걸을 때가 됐는데'
'말할 때가 됐는데'
'혼자 밥 먹을 때가 됐는데'
'혼자 옷 입을 때가 됐는데'
'기저귀 뗄 때가 됐는데'
이런 과정에서 어떤 아이는 조금 더 빨리 시작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는 조금 늦게 시작하기도 한다.
그런데 유아서적을 보든 통계를 보든 아이의 성장 시기, 발달 시기는 대부분 그 개월 수에 하는 경우가 많고 설령 그 시기보다 늦어진다고 해도 중요한 건 결국 하긴 한다는 것이다. 몇 개월 더 빨리 한다고 해서 몇 개월 더 느리게 한다고 해서 아이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조금 더 빨리 했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에서 만들어 낸 엄마의 발달 시기로 아이를 대한 건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사실 아이는 잘 자라고 있는 게 맞다.
문제는 느린 아이 탓이 아닌 엄마의 욕심일 수도...
때가 되면 다 한다는 말.
그 말을 늘 새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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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기다리고 지켜봐 주니 아이는 36개월에 배변훈련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