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비가 내리면 접었던 마음이 다시 생각난다.
고3시절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강제전학을 가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들아, 네가 삶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가든 이것을 잊지 마라, 우리 집 문은 너에게 언제나 열려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셨다. 어떤 조건도 단서도 없이 내게 어머니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그 문을 열고 엄마를 보러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 엄마를 통해 배운 사랑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제일 먼저 하는 다짐이 절대로 혼자 울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울고 있다면 언제든 달려가겠다는 것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바쁜 아버지를 대신해서 나는 엄마와 같이 남원에 갔다. 가는 버스 안에서 울고 있는 엄마 옆에 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슬플 때 옆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잘 안다. 그래서 내리는 비를 막아 줄 수는 없어도 같이 맞아주는 것이 사랑이고 위로라고 생각한다.
그 무엇이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비교할 수 있겠냐만은 비슷한 경험이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면 첫사랑일 것이다. 그 시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고 싶을 만큼 소중한 존재였다. 가장 잊히지 않는 존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바꿔준 사람이라고 하는데 사랑 때문에 무모해져 보기도 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단점들을 고치면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10대 시절에 사춘기를 겪지 않는 사람을 반드시 다시 그 사춘기를 겪게 되어있다. 사춘기처럼, 사람에 대한 상처도 사랑에 대한 상처도 다 겪어봐야 어른이 된다고 하는데 너무 늦은 나이에 시작한 사랑에 어설프고 서툰 내 모습을 받아준 그 친구는 내리는 비를 막아 줄 수는 없어도 같이 맞아주면서 인내하고 기다려 주었는지도 모른다.
헤어질 때는 그 감정을 비가 안 오는 날이면 신발장 한켠 어두운 구석에 처박아 놓은 우산처럼 그날에 감정을 접어두고 절제하면서 살았다. 6개월쯤이 지난 후에야 내가 첫사랑에게 준 것들에 비해 받은 것이 없다고 느껴져서 미워졌다. 나를 이용했거나 업신여기지 않고서야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매일 자기 전에 생각했다. 나중에 어떻게 복수해 줄 것이다. 내가 나중에 성공하면 이렇게 대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미운 감정에 빠져 했던 망상은 어린아이가 장우산을 마치 펜싱칼이라고 상상하여 가상의 적을 찌르고 있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그때의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그 친구를 다시 만나도 잘해 줄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잠시 고민했지만 다시 만나도 잘해 줄 것이라고 했다. 설령 그녀가 했던 행동들이 나를 이용하려는 행동이었다고 하더라고 사랑으로 사랑을 알려주고 싶다. 예수가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내어주듯 또다시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그 친구와 함께 비를 맞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에는 그때의 감정이 남아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접었던 우산을 펼치듯 마음이 다시 펼쳐진다. 차인지 얼마 안 되어 “첫눈 온다 우리 만날까”라는 카톡에 나의 무한 긍정과 회복력 그리고 진심을 보았던 그 친구는 나에게서 항상 좋은 점을 보았고 그로 인해 나를 더 성장시켜 준 사람이다. 내가 가진 좋은 면들을 갈고닦게 해 주었으며 같이 비를 맞으며 겪어야 했던 다양한 위기상황을 돌파하면서 나는 더 꾀도 많고 추억도 많은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 내 이상형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30년 전에는 공룡이 살았다는 나의 농담에 웃어주면서 받아주는 사람이다. 그만큼 내 이야기에 잘 웃어주고 결이 맞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살다 보면 더 좋은 인연이 올 수도 있지만 한 문단을 할애하여 하고 싶은 말을 남기자면, 늘 편지에서 썼던 거처럼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힘들 때는 쉬어가자 이다. 부자의 운이라는 책에 쓰였있던 말처럼 항상 긍정적으로 웃자 이다. 절대자도 웃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너는 반드시 잘 될 거라는 것이다. 넌 좋은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느린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무시했다는 비난과 소문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빠져 자책하고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잘 이별하고 놓아주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항상 같이 비를 맞아주지 못함에 미안함이 있지만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해 낼 것이라고 믿고 있다.
삶이 너무 지치고 힘든 날이면 좋은 차는 못 태워 주어도 우산 들고 나올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든든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ps.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 마음에 응어리 져 있는 감정을 내려놓기 위함임.
-2024년 8월 8일 날이 너무 더운 어느 날 짱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