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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iii Aug 27. 2018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 <서치(Searching)>는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틴더에서 만난 게 잘될 리 없지."라고 그녀가 말했다. 휴대폰 너머 그녀의 목소리는 담배연기와 섞여 탁하고 낮았다. "틴더가 뭐야?" "데이팅 앱." 데이팅 앱 경험이 없는 나는 달리 해줄 말이 없다. 약 3년 전인가 채팅으로 만난 인터넷 친구가 있긴 했다. 카톡을 몇 주 동안 주고받다 만나자고 하길래 덜컥 겁부터 집어먹었다. 그렇게 흐지부지되었다. 하지만 그 몇 주 동안 그가 보내는 카톡에 위로를 받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고 싶지 않은 마음은 나를 인터넷으로 데려다 놓았다.



Q1. にせもの : 가짜, 위조품의 

 :가짜이고 싶지 않은 마음


  '맞선 사이트에서 남친을 발견했다. 인터넷으로 쇼핑을 하듯이 너무나 쉽게 손에 넣었다.' 영화 <립 반 윙클의 신부>의 나나미가 SNS 플래닛에 올린 글귀다. 그녀는 인터넷으로 얻은 남자와 반지를 나눠 끼우곤 곧 헤어진다. 헤어진 다기보다 일방적으로 통보받는다. 그녀가 가짜라는 이유로, 그녀의 진짜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모르는 사람들을 친척으로 고용해 결혼식을 채웠으므로, 다른 남자와 놀아난 것 같으니까. 의사소통은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객관적이면서 동시에 주관적인 기계의 시선은 믿음직하다. 증거물로 기능하는 영상이나 사진은 대화를 대신해 관계를 주도한다. 말은 믿음직하지 못 하니까.    

 

  결혼을 준비하며 일어나는 작은 방해물들이 나나미를 우울하게 만든다. 그러나 남편에게 속마음을 말할 수 없다. 그녀가 유일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상은 SNS: 플래닛이다. 그마저도 남편에게 읽히고 이런 글을 쓰는 사람과는 당장 이혼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진실은 그녀를 파경으로 몰고 갈 것이다. 남편과의 어색한 대화 순간, 그녀는 ‘미안’이라는 말밖에 뱉지 못한다. 손끝으로는 여전히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린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갈 곳 없이 휘적이다가 겨우 다다른 모텔 침대에 풀썩 몸을 눕히고 재차 반지를 돌려본다. 이 물리적 물건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관계는 이미 끝났는데.      


 "인터넷에서 만났지만 우린 행복해지자."라는 이 허망한 말은 '가짜로 만났지만'이라는 전제를 가진다. '가짜'라고 상징되는 공간, 정상이 아니라고 치부되는 만남. 이제 이 정체모를 공간을 헤집고 다니는 인간들도 마찬가지 문제에 부딪쳤다. 나나미는 내가 손쉽게 남자 친구를 가졌던 것처럼 자신 또한 손쉽게 얻은 여자일까 봐 불안하다. "혹시 그에게도 나는 손쉽게 넣은 여자인 걸까?" '나도 역시 가짜가 아닐까.'하는 의구심은 온종일 얕고 깊숙하게 떠나질 않는다.      

<립 반 윙클의 신부(A Bride for Rip Van Winkle)>, 이와이 슌지, 2016



Q2. エーテル: 에테르

: 진짜를 찾는 게임


  딸 마고의 실종 이후, 아빠는 딸의 노트북을 뒤지기 시작한다. 영화 <서치>는 끝없이 이어지는 컴퓨터 화면과 CCTV 화면 등, 디지털 매체를 두 겹으로 덧씌워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모든 서사를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각종 자료와 그가 웹브라우저를 그야말로 '서치'하는 행위를 스크린 위에 온전히 내세워 단단한 컨셉을 형성한다. 이와 같은 표현방식은 온라인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동시에 온라인의 모든 행적이 족적이 되고 거대한 파편의 모음 같아 보이게 만든다. 딸의 각종 SNS에는 딸과 관계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누구보다 딸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아빠는 무엇이 도움이 되는 '진짜' 단서인지 헤매기 시작한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딸의 친구들 중에 ‘친구’는 없는 것만 같다. 저마다의 욕망으로 뒤덮인 프렌더미들 사이에서 프렌드와 에너미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고, 온라인을 통한 서로의 욕망은 제각각 거대한 생태계를 형성한다.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 호시노 일당은 종이 쪼가리 따위를 불태우고 현물을 훔친다. 그들은 실질적인 것을 원한다. 그들은 진짜가 없기 때문에 진짜를 원한다. 유이치와 호시노는 릴리의 에테르를 동경해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필리어'와 '파란 고양이'라는 아이디로 커뮤니티에 접속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릴리의 에테르로 위안받아 모인 세계에서도 '가짜 팬', 혹은 '에테르를 오염시키는 자' 등으로 진위여부를 가른다. 여전히 다른 이를 가짜로 만든다. 하여 자신이 진짜임을 증명하려 하는 세계. 캄캄한 공간에서 화면의 불빛만으로 타이핑을 치는 세계.     

<릴리 슈슈의 모든 것(All About Lily Chou Chou)>,  이와이 슌지, 2001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름 모를 낯선 이들이 가득 찬 이 정글 같은 세계는 그들이 유일하게 위로받는 공간이기도 하다. 마고가 유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았던 대상은 ‘fish_and_chips'이다. 그가 설령 신상을 속이고 다른 의도로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의 대상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유이치와 호시노 또한 마찬가지다. 호시노의 괴롭힘과 따돌림을 피해 에테르의 세계에 침잠했던 유이치에게 유일한 대화 상대는 '파란 고양이'라는 이름의 호시노이며, 나나미는 플래닛에서 사귀게 된 마시로와 같이 죽을 수 있는 마음을 나눈다. 설령 그들이 상대를 우연히 위험에 빠뜨리거나, 의도적으로 죽이거나 혹은 그것이 같이 죽어달라는 요청이었던 것처럼 잘못된 만남이었다고 할지라도.

<립 반 윙클의 신부(A Bride for Rip Van Winkle)>, 이와이 슌지, 2016



Q3.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 정체된 정체


<서치(Searching)>, 아니쉬 차간티, 2017
<릴리슈슈의 모든 것(All About Lily Chou Chou)>, 2001


  항상 살을 부비고 사는 이들은 막상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없다. 모든 감정과 생각을 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는 없으며, 나의 정체를 알게 되면 안녕을 고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정체를 부유하게 만들고 그 자리에 역할만을 남긴다. 너는 그저 친구로 남아주길, 너는 엄마로, 너는 상사로, 너는 연인으로. 그들에게 두 가지의 역할을 주지 말자고, 주지 않기로 한다. 용도가 섞이면 나의 역할을 알 수 없기에 그럼 나는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기에. '단순하고 싶다. 지리하지 않고 깔끔하고 싶다.'는 바람은 결과적으로 뚱뚱하거나 비쩍 마른 관계만을 남겼다. 선을 넘지 못하는 관계 안에서 그들은 각각 그 자리에서 외롭다. 정체를 내비칠 수 없는 사람들은 모두 인터넷으로 달아났고, 그곳에서만 접할 수 있는 자아를 생성했다. 이제 오프라인에서의 행적들은 당신을 파악하는 일정 부분의 정보량만 제공할 뿐이다. 내밀한 속내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풀어헤쳐놓은 한 토막의 글이나 사진, 그림 등으로 표출된다.         


  페이스북 태깅 메시지가 항상 묻는 것을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았다. 나의 옆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나도 좀처럼 나의 마음에 대해 묻지 않는다. 기다림을 보유한 시간의 줄어듦이라고 느끼는 이들은 기다리는 손해를 입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무도 누구도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그 자리를 인터넷이 비집고 들어간다. 커서를 깜박이며 가만히 그들을 기다리는 존재로. 그리고 아무도 묻지 않지만, 답하고 싶은 질문을 한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립 반 윙클의 신부(A Bride for Rip Van Winkle)>, 이와이 슌지, 2016

<릴리 슈슈의 모든 것(All About Lily Chou Chou)>,  이와이 슌지, 2001

<서치(Searching)>, 아니쉬 차간티,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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