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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한 귀퉁이에서 흩날리는 머리카락 한 올을 바라본다. 삼십 센티 남짓 되어 보이는 머리카락은 기다란 손잡이에 걸려있다. 이 머리칼의 주인은 누구일까. 나보다 조금 나이가 있는 그녀는 아침 출근길, 지하철 문 한켠에 겨우 자리를 차지한다. 많은 인파 사이에 내쏠리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손잡이를 붙든다. 휴대폰을 만질 손가락의 공간도 얻지 못해 지하철 노선도를 하염없이 쳐다보다, 자신의 도착역에 이르러서야 튕겨져 나가듯 간신히 지하철을 벗어났을 것이다. 자신의 머리칼이 찢기는 줄도 모른 채. 시선이 머무는 곳은 항상 무언가 결함을 지닌다.
손톱이 빠졌던 기억이 있다. 같이 놀던 언니가 벽돌로 손을 내리친 기억이다. 손톱은 툭하고 매가리없이 빠져버렸다. 언니에 대한 서러움보다 민둥성이가 된 손가락에 낯섦이 앞섰다. 손가락의 끝은 단단한 손톱이 아닌 나약한 맨살로 마무리되었다. 가끔, 몸의 끝은 나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나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으로 자라나는 생물처럼 느껴진다. 나의 경계를 이루는 이들은 내가 신경 쓰고 있지 않은 사이에,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쑥 자라난다. 그렇지만 마땅히 있어야 하는 곳을 벗어난 갑작스러운 손톱의 탈락은 나의 경계가 제대로 마감되지 않은 불안을 안긴다.
권여선 단편소설 <손톱>에서 소희의 손톱은 '기괴하게 발딱 뒤집혀' 있다. 일을 하던 도중, '엄마와 상의'를 했다는 동료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윽고, 소희의 손톱은 푹하고 굵은 고정쇠에 꺾이고 말았다. '상의 한마디 없이' 사라진 엄마와 언니는 소희에게 끔찍한 통증과 함께 기괴한 손톱의 모양으로 남는다. 소희는 내뺄 곳이 없다. 도망치고 도망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막다른 곳에 닿은 것이 아니다. 엄마가 내 빼고 나서 같은 패턴으로 '언니도 내빼려는구나.'를 체감한다. 소희는 모두가 내뺀 갯벌에 홀로 남긴다. 아버지가 죽은 곳, '아무리 구해주고 싶어도, 바로 저만치에서, 사람이 가슴까지, 목까지, 코와 이마까지 꼬록꼬록 빨려 들어가는 걸 빤히 보면서도 전혀 손쓸 수 없는 곳'에. 아직도 아물지 않은 손톱을 가지고 침잠한다.
소희는 말 그대로 '무색무취'다. '그렇게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고 무존재 하다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라는 식으로' 그녀를 이해했다는 직원들처럼 그녀에게 취향은 없다. 갯벌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한 달에 얼마씩 갚아야 하는 빚, 그리고 가까스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만큼의 노동 값이다. 달리기를 좋아했지만 그것에 대한 서러움은 없다. 그저 달리기를 했다면 돈을 더 벌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 언니는 내 곁에 남아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짬뽕 곱빼기를 먹고 싶은 마음에 중국집에 들어선다. '맵게'하려면 오백 원을 추가해야 한다는 소리에 제일 값싼 돼지고기와 가격을 비교하곤 싱겁게 가게를 나와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은 '저금이 생명줄'이라고 되새긴다. 그녀에게 중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한낱 취향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곁에 그나마 있던 것이 다시 '내빼지' 않기를 원할 뿐이다.
한편, <소공녀>의 미소는 그 한낱 취향을 위해 일정 부분 생계를 포기한다. 월세가 오만원 오르자 집을 포기하고 예전에 함께한 밴드 멤버들의 집을 전전하기 시작한다. 자신만의 공간을 포기한 그녀가 그토록 지키려고 하는 것은 '담배와 위스키, 그리고 남자 친구 한솔'이다. 담뱃값은 거의 두 배로 뛰어버리고 위스키 값도 오른다. 하지만 미소는 집이 없을지언정, 개중에 가장 싼 담배라도 피워야 하며 술값이 이천 원 올랐다는 소리에 잠시 생각하다 '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친구의 집을 돌아다니며 미소는 그 집에 기거하기 위해 내놓아야 하는 수많은 것들을 마주한다. 그녀가 몸을 눕힐 수 있는 공간과 씻을 수 있는 물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눈치와 타박을 견디거나 한솔의 심기를 상하게 하거나, 혹은 자신이 아닌 여성의 역할로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돈 계산을 하고 가계부를 쓸 때에만 살아'있음을 느끼는 소희가 '그깟 돈 이천오백만 원은 언니가 다 가져도 된다. 다 써버려도 된다. 언니는 올 거니까.'라고 말한다. 치료받던 손톱을 '내가 뭘? 뭘 뭘 뭘'이라는 외침으로 망가뜨리고 곧 '아까는 왜 언니가 다시 안 올 거라고 생각했는지, 욕까지 하고, 왜 오지 말라고 했는지, 소희는 의아하고 미안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좋다'는 표현을 하는 대상은 인적이 드문 지하철에 앉아 햇빛을 마주할 때와 비슷한 처지의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있는 풍경이다. 그나마 좋다고 표현한 문장 조차 앞에 '슬프면서'라는 단서가 붙는다. 게다가 그녀는 그것이 왜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단지 그녀는 '대화가 안된다 매가리가 없다 무나아안하다 생각이 없다, 그런 말 대신 조심해야지, 하고 말해준 사람이 웃는 거.'에 잠시나마 위안을 얻고, '삼겹살 사가지고 갈게, 라면 끓여먹지 말고 기다려.'라는 언니의 메시지가 없던 일이 되지 않도록 지켜낸다. 소희는 자신과 비슷한 이의 옆자리가 슬프면서 좋은 거라고 느낄 뿐이다. 그렇게 '조금만 조금만 하며' 그 곁에 앉는다.
미소는 태연하다. 그녀는 눈치를 주는 사람들에게 반찬을 정성껏 해놓곤 감사인사를 남긴다. 미소는 미련 없이 떠난다. 모진 말을 쏟아내고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라며 정미가 백만 원권의 수표를 꺼내 들었을 때도, 한솔이 전셋값을 벌겠다며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날 때도 의연하다. 미소는 '집'에 기거하기 위해 숙이지 않고, 굴종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이용해 안정감을 누리려는 다른 이들에게 기대지 않는다. 그녀가 지키려던 것은 한낱 '담배와 위스키'라는 취향이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지금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을 잃지 않으려는 한결같은 태도였음을 대변한다. 그토록 좋아하는 위스키를 그윽하게 쳐다보는 미소의 눈빛은 자신이 지켜내려 했던 태도와 품위를 다독이는 것 같아 보인다. 호기로운 그녀도 슬프면서 좋은 거 그게 왜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계를 위해 취향이 없다시피 한 소희와 취향을 위해 생계를 포기한 미소, 그녀들은 나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소희는 어째서 언니를 계속 기다리는 것이며, 미소는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는지. 소희와 미소가 만나는 곳은 포기가 일상일 수는 있지만 단념이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희는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언니를 기다리는 것을 단념하지 않고, 미소는 현재 자신이 원하는 것, 담배와 위스키로 대변되는 자신으로서의 오롯함을 버리지 않는다. 그녀가 떠나는 한솔에게 노트와 펜을 건네주는 것은 지금 원하는 것을 져버리지 말고 나와 같은 곳에 머물러달라는 신호이며, 할머니가 건네는 껌을 받아먹고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 소희는 같은 곳에 나란히 앉아 있는 옆자리의 존재를 인식한다. 줄곧 오늘의 돈벌이와 지출, 차액을 적던 소희와 미소는 그녀들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던 '돈'에 질식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을 포기했느냐보다 무엇을 단념하지 않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어느 순간 내비친다.
미소가 끝내 포기한 것이 하나 있다. 약값, 약을 먹지 않으면 백발이 되는 그녀의 검은 머리칼이다. 한 멤버의 부친상으로 장례식에서 비로소 재회한 밴드 멤버들은 미소의 방문에 대해 각자 읊조린다. '미소는 여전하구나, 반찬을 많이 해주고 갔더라고, 내 힘든 얘기만 너무 많이 했네.' 그들을 뒤로 길을 묵묵히 걷는 흰 머리칼의 미소가 보인다. 백발의 요정이 되기 전에 친구를 한 명씩 방문했다는 동화와 같아 보이는 이 플롯은 아이러니하게 한강둔치에 자리한 조그만 텐트를 보여주곤 막을 내린다.
곱게 빗어 넘겼던 머리 정수리에 듬성듬성 나 있던 흰머리카락이 떠오른다. 그녀는 낮지만 묘한 떨림을 가진 목소리로 말을 건네곤 했다. 깡마른 몸으로 눈이 쌓인 작업실 뒤켠에서 담배를 피웠다. 나는 깡마른 만큼 눈빛에 깡이 배어있던 그녀가 사는 방식이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친구는 그렇게 살고 싶니?라고 되물었다. 그 물음에 나는 아무 답변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쯤 백발이 되었을까.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마녀가 되어야 한다고 손짓으로 큰따옴표를 표현하던 그녀는 지금쯤 백발의 마녀가 되었을까. 지하철의 머리카락과 그녀의 흰 머리칼이 오버랩된다.
<손톱>, 권여선, 2017
<소공녀(Microhabitat)>, 전고운,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