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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iii Apr 02. 2018

양면 색종이로 접은 디즈니랜드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네모 반듯한 종이 한 장은 손을 거쳐 꽃이 되었다가 개구리가 된다. 납작하게 접었다가 입김을 불어넣으면 부풀어올라 공이 되기도 한다. 색종이를 바르게 접으면 샛노랗던 빛깔은 빨간 직사각형 뒤로 재빠르게 몸을 숨긴다. 하지만 곧, 한 겹을 내려 접으면 금세 노란빛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색종이 놀이를 하려면 양면 두 색상의 몸짓에 손을 맡겨야 한다. 색종이가 무언가의 형상이 되기까지는 수도 없는 두 색의 교차가 필요하다.



   어렸을 적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은 <미녀와 야수>였다. 비디오를 빌려다가 수도 없이 돌려보았다. 소파 위에서 텔레비전 화면 위로 흘러가는 화려한 색감과 신나는 노래를 말똥히 눈과 입으로 쫓았다. 장미 꽃잎 하나하나가 떨어질 때의 초조함에 '불행한 야수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야수의 마법이 풀어지게 해주세요.'라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외쳤다. 그리고 야수가 왕자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벨이 야수를 정말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뒤를 이었다. 이야기의 말미에 가서야 미녀가 야수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황홀함과 야수를 왕자로 변하게 하는 사랑의 힘에 감탄하면서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들의 러브스토리에 열광하던 나는 훌쩍 커버렸다.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야수를 사랑한 벨은 야수가 왕자로 돌아가고 나서 마냥 기뻤을까. 야수가 사라져 슬프지 않았을까.     


  십 수년이 흘러 <셰이프 오브 워터>를 보았다. 야수는 인어와 비슷하게 생긴 크리처로 대변되어 있었고 미녀는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어공주였다. 이 이야기가 로맨스로 와 닿지 않았다. 그들은 야수와 벨처럼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고, 벨이 야수에게 책을 읽어준 것처럼 음악과 '달걀'이라는 손짓을 공유했다. 하지만 말미에 크리처와 엘라이자가 한 쌍의 인어로 돌아가버린 것은 결국 그들이 동족이었다는 실망감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최근 <미녀와 야수>에게 갖게 된 의문의 이유와 비슷하다. 나는 나와 다른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사랑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이 이야기는 종을 뛰어넘는 경이로운 사랑이야기가 아닌 '소수자의 연대'에 관한 동화다.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


/ 단면 하나: 기품 있는 동화 _ 'Human agian'


  <미녀와 야수>에는 야수뿐만 아니라 성 안의 모든 하인들도 마법에 걸려있다. 그들은 촛대나 시계, 주전자처럼 그들이 가진 직업을 표현하는 사물들로 분한다. 그들이 벨을 반기며 부르는 'Human again'이라는 노래는 인간에 대한 찬미이자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일, 자기 자신이 되는 일'에 대한 염원이다. 왕자를 사모하는 마음에 자신의 목소리조차 버리고 인간이 되길 원했던 인어공주는 왕자를 지켜만 보다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 슬픈 이야기를 위로라도 하듯, <셰이프 오브 워터>는 엘라이자에게 아가미를 선사한다. 본래 아가미 자국을 가지고 있던 엘라이자는 크리쳐를 만나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간다.


  '소수자의 무기는 언어와 윤리이다.'라는 말을 두 동화는 충실히 이행한다. 벨은 책에 파묻혀 지내는 독특한 아가씨로 규정되며, 벨의 아버지는 미치광이 발명가라고 불린다. 언어로 인한 '상상력'은 벨이 야수의 성에 기거하며 그와 소통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야수가 벨에게 도서관을 선물하거나 그들이 난롯불을 쬐며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엘라이자는 농아이며, 친구 자일스는 시대에 뒤쳐지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 그리고 젤다는 흑인 여성이다. 게다가 엘라이자와 사랑에 빠지는 크리쳐는 인간이라는 종을 뛰어넘는 철저한 소수자이다. 크리쳐를 구하기 위한 그들의 연대는 소수자들이 갖는 연합의 힘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소수자를 구해야 한다는 윤리의식에서 출발한다. '동화에서 '힘' 자체가 살아남기에 적합한 수단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보다는 힘없는 이들이 연합하여 성공을 이룰 때가 많은데, 이는 종종 서로에 대한 친절한 행위에서 비롯된다.'라는 솔닛의 말처럼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분한 이 동화는 언어와 윤리에 기반을 둔 소수자의 연대와 사랑에 경의를 표한다. 끝내 소수자의 무기로 '인간성'까지 획득한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한 편의 기품 있는 동화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The Florida Project)>


/ 단면 둘: 동화가 사라진 아이들의 세상 _ '넌 내 가장 친한 친구인데 이제 너를 못 만나게 될지도 몰라.'


  디즈니랜드 뒤편, '매직 캐슬'에 불행을 야기하는 저주라든가 마법이 풀리길 기다리는 야수나 백조는 없다. 마법의 성에 기거하는 이들은 그 이름과는 다르게 마법에 걸려 'Human agin'을 노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의 삶과 가장 가까운 날 것의 형태로 존재한다. 동화가 사라진 아이들의 세상에서 장애물이란 더 이상 마법과도 같은 자신의 정체가 아니다. 그것은 다른 곳으로 입성하지 못하는 상황에 둘러싸여 있는 것, 그리고 자신의 행방과 거처를 규제하려는 아동보호국과 같이 지극히 현실적이다.


  무니와 헬리, 그리고 젠시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거리 변에서 보낸다. 인도가 없는 차도와 자연의 경계를 걷는 그들에게 공간은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닌 경계선을 긋느라 어쩔 수 없이 생겨버린 주변부, 변두리, 언저리와 같은 이름이다. 무니가 매직 캐슬 외의 다른 곳으로 입성한 것이라고는 그들이 불태워버린 폐허 직전의 모텔과 디즈니랜드의 입구, 그리고 줄곧 뒷문으로 팬케이크를 받아먹었던 가게와 곯은 배를 채우기 위해 내가 아닌 체하며 들어간 리조트 안의 식당뿐이다. 영화에서 눈에 띄는 연보라 빛과 민트 그리고 오렌지 빛의 건물들은 한없이 얇은 단면 색종이로 만든 종이건물 같아 보인다. 툭치면 쓰러져버릴 것 같은 이 연보라색의 모텔에 기거하는 그들은 수리할 돈은 없지만 겉면을 다시 보랏빛으로 물들이기에 여념 없는 바비가 떨어뜨리는 페인트와 같이 아슬아슬하다. '다른 사람들은 내게 힘을 행사하지만 정작 나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는 그 시기에 집중'하는 것이 동화라면 무니와 헬리에게 '그 시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시기는 죽 이어져 있다. 그래서 그들은 윤리를 무기로 삼지 않는다. 거침없음의 태도만이 있을 뿐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The Florida Project)>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연대는 고난과 역경, 혹은 마법과도 같은 장애물을 딛고 넘어서지 못한다. 그 대신 '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데 이제 못 만날 수도 있어.'라는 울먹임과 그런 고백에 손을 잡고 머무름을 달려 나감으로 바꾸는 헐떡거림이 있을 뿐이다. 션 베이커가 말하는 소수자의 연대란 이렇다. <탠저린>의 신디가 공격적인 면모를 보이다가도 금세 다이나에게 립스틱을 발라주는 것, 혹은 자신의 가발을 신디에게 선뜻 벗어주는 알렉산드라와 같은 것이다. 커다랗게 솟은 건물을 전면에 내세우고 옆으로 걸어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과 마지막, 디즈니랜드를 향하여 뛰어나가는 무니와 젠시의 뒷모습을 잡은 쇼트의 대비는 수평적이었던 그들의 행방을 수직적으로 뒤바꾼다. 영화가 그들에게 쥐어주는 단 하나의 희망이란 거리가 '길'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이것이 디즈니랜드의 뒤편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알록달록한 타일로 바닥을 꾸민 베란다 한 켠 책장에는 색종이로 접은 공, 백합과 개구리를 가득 모아 둔 상자가 있었다. 나는 온통 노란색의 꽃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지만 항상 한 구석에는 빨간색이 고개를 수줍게 들곤 했다. 노란색으로 색칠하다 순간 크레파스에 묻어있던 빨간색이 스케치북을 파고든 것처럼 밉다. 나는 크레파스에 살짝 묻어있던 빨간색이 미웠다. 어느 날, 노란색 위로 자신을 드러낸 빨간색은 말한다. 네가 나를 싫어하는 걸 알지만 나는 여기 존재해 라고. 이 양면의 이야기가 같이 존재하는 세상을, 한 가지의 이야기만으로는 서술되지 않는 이 삶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숨을 고르자. 자, 이제 양면 색종이로 접은 디즈니랜드 안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미녀와 야수>, 게리 트러스데일, 커크 와이즈, 1992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기예르모 델 토로, 2017

<플로리다 프로젝트>, 션 베이커, 2017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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